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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청 여자컬링팀 ‘우리 빗자루질 하는 거 아니거든요?’
작성자
경기도체육회
작성일
2013/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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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청 여자컬링팀 ‘우리 빗자루질 하는 거 아니거든요?’



손잡이가 달린 19.9kg의 둥글고 납작한 화강암이 ‘스륵 스르륵’소리를 내며 매끄럽게 얼음 위를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긴 머리를 고무줄로 질끈 묶고 스톤을 마주보고 나란히 선 앳된 얼굴의 스위퍼 두 명이 브러시를 쥔 손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얼음 위를 닦아 내려간다. 움직이는 스톤을 노려보는 네명의 시선은 눈빛 하나 흔들림 없이 매섭다.


미끄러지던 스톤이 목표지점에 근처에서 속도가 더뎌지면 빗자루질은 돌과 닿을듯 말듯 아슬아슬한 거리를 두고 더욱 바빠진다. 그러자 멈추기 직전의 스톤이 조금씩 더 미끄러지고 스위퍼는 출발점에선 선수에게 연신 “셋~ 셋! 여덟~”이라고 목청높여 신호를 보낸다. 스톤을 던졌던 스킵(주장) 김지선 선수가 출발점에서 고개를 끄덕인다. 상황에 따른 전략을 세우고 빙판 상태를 점검하는 스킵은 다음 작전을 준비한다.


지난해 3월 캐나다에서 열린 2012년 세계여자컬링선수권대회에서 4강 신화를 달성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경기도청 여자컬링팀. 신미성(34), 엄민지(21), 김지선(25), 이슬비(24), 김은지(22) 선수의 훈련 모습이다.


빙판 버전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신화를 쓴 그녀들을 지난달 26일 서울 태릉선수촌 빙상장에서 만났다.



▶컬링? 그거 얼음 판 위에 빗자루질 하는 거?



확실히 달라졌다. 주변에서 보는 시선과 선수들이 느끼는 위상도. 주변에서는 ‘믿기지 않는 성과다’, ‘캐나다와 스웨덴 등 비교자체가 불가능한 전통의 세계강호들과 겨뤄 이뤄낸 대단한 업적이다’ 라고 추켜세웠지만 분명 그건 그녀들이 겪었던 남모를 고충과 속내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사흘동안 씻지 않아도 꽃 향기가 난다는’ 풋풋한 이십대 초중반의 아리따운 청춘들의 이야기는 스키점프를 다뤘던 영화 ‘국가대표’나 핸드볼을 주제로 했던 ‘우생순’ 보다도 더 가슴저릿한 한편의 영화와 같았다.


‘컬링’은 각각 4명으로 구성된 두 팀이 빙판에서 둥글고 납작한 돌(스톤)을 빙판에 미끄러뜨려 표적(하우스) 안에 넣어 득점을 겨루는 경기다. 스코틀랜드에서 시작돼 1998년 제18회 동계올림픽경기대회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팀의 버팀목이자 한국여자컬링선수 가운데 가장 오랜 경력을 지닌 신미성 선수는 성신여대 재학시절 나가노 동계올림픽을 보고 컬링 동아리를 찾아갔다. 올해로 컬링과 인연을 맺은지 15년째다. 팀의 막내인 엄민지 선수는 초등학교때 컬링을 투포환인줄 알고 찾았다 시작하게 됐다. 잘못 찾아왔다 넋넣고 구경하는 엄민지 선수에게 선생님이 쥐어준건 컬링 브러시 였다.


주장 김지선 선수와 김은지 선수는 중학교때 까지 스피드스케이트 선수였지만 고등학교때 부터 컬링으로 종목을 전환했다.


이슬비 선수는 탁월한 운동신경으로 중학교때 체육선생님에게 발탁돼 컬링을 시작하게 됐다.


이들이 처음 만난건 지난 2009년. 정영섭(55)감독이 손에서 컬링을 놓은 이들을 다시 불러모았다.


당시 현실적인 문제로 선수들은 뿔뿔이 흩어져 있었다. 모두 손에서 컬링을 놓은 상태였지만 다시모이는데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시 모인 태극낭자들의 돌풍은 거셌다. 2010년 퍼시픽아시아 컬링대회 1위, 2011년 뉴질랜드 환태평양 윈터게임 1위, 2012년 세계여자컬링선수권대회 4위를 일궈내며 승승장구 행진을 이어갔다.


하지만 한국 컬링의 현실에서 이런 선전은 말그대로 기적이다. 전용 경기장도 태릉과 경북의성훈련장 단 2곳 뿐이고, 등록선수 숫자도 600여명으로 컬링을 국기로 삼는 캐나다 등록선수 200만명과 비교하면 0.0003%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비교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이정도면 인프라 부족이라는 용어조차 입에 올리기 민망한 수준이다.


이래서 “컬링선수에요” 라고 말하면 “아. 그거 로봇청소기(?)같은 돌덩어리 굴려서 빗자루질 하는거? 라는 대답이 돌아오기 일쑤였다고 말했나 보다.




▶‘국가대표 운동선수’ 지만, 괜찮아


‘빙판 위의 체스’라고도 불리는 컬링은 한 게임에 평균 2시간 30분이 소요된다. 짧은 시간에 집중적으로 체력을 쏟아붓는 스포츠는 아니지만 빙판에서 경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상당한 지구력과 끈기, 집중력이 관건이다.


한국여자 컬링은 2000년대 중반까지도 아시아 벽도 넘기 힘들었다. 때문에 국내에서도 찬밥신세였다. 메달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로 태릉선수촌에 들어가지 못해 선수촌 근처 모텔과 식당을 오가며 훈련해야 했다. 국가대표 였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지원금이 부족한 건 뻔한 사실. 훈련은 최대한 짜게 해야했다. 경기장 대관도 힘들어 전국에서 몰려드는 컬링팀들 속에서 틈날 때마다 빌려 훈련했다. 전용 연습장이 부족해 스케이트장에서 스케이트 선수들의 눈칫밥을 먹으며 따가운 눈길에 얼굴만 두꺼워져갔다.


전지훈련을 가면 상황은 더 열악했다. 스톤의 속도를 조절하는 브러시는 한 경기가 끝나면 헤드만 교체해서 써야한다. 부드러운 천 재질이 물에 젖거나 이물질에 의해 손상되기 때문에 뽀송뽀송한 새 것이 아니면 제 기능을 못하기 때문이다.


“보통 한 경기를 쓰고 나면 버리지만 그건 지원 빵빵한 다른나라 얘기죠. 빨아서 쓰거나 뒤집어 꿰매 쓰기도 하고 외국선수들이 버린거 주워와서 쓰기도 했죠”라고 말하는 선수들의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터져나온다.


국가대표 운동선수지만 조리사가 칼로리에 맞춰 짠 식단 같은건 애초부터 기대하기 힘들었다. 캐나다선수권 대회를 앞두고 훈련할 때는 훈련비가 부족해 현지 교민의 집에서 홈스테이로 민박을 하고 사비로 장을 봐 밥을 해먹으며 운동했다. 선수들인 이때를 고단하고 힘들었지만 행복한 추억이었노라고 회상했다.


선수들이 기억하는 서로가 만들어준 최고의 식사는 무엇이었을까? 이슬비 선수의 퓨전요리솜씨가 수준급이라는 평가다. 등갈비찜과 김치갈비찜을 선수들은 최고로 꼽았다. 이밖에도 김지선 선수의 닭볶음탕과 제육볶음, 신미성 선수의 들깨수제비, 김은지 선수의 계란찜이 베스트 메뉴에 선정됐다.


자칫 자존심 상할 수도 있는 비인기 종목의 서러운 대우를 그녀들은 자신들의 팀웍으로 승화시켰다. 그런 경험이 서로를 단단한 끈으로 묶을 수 있게 됐고 신뢰와 믿음을 바탕으로 끈끈한 결속력이 생겼다. 서로의 얼굴만 봐도 척 아는.



▶한국 동계 스포츠의 새로운 역사를 쓰는 태극낭자들.


캐나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사상 첫 플레이오프에 올랐던 한국 여자컬링팀. 메달을 노려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지만 심신이 너무나 지친 상태였다. 마지막 순간 홈팀이었던 캐나다에 점수를 내주며 4위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기적을 달성한 그들에게 찬사가 쏟아졌고 이들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한국으로 돌아왔다. 달라진 분위기와 환대보다 가장 반가웠던건 미녀 컬링팀을 향한 카메라 플래시도 싸인공세도 아닌 같은 운동선수들의 따뜻한 격려였다.


“다른종목 운동선수들이지만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 같아 보기 안쓰러웠다’,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지 짐작이 간다. 항상 응원하겠다’는 말에 얼마나 큰 위로를 받았는지 몰라요” 신미성 선수의 눈가가 촉촉해진다. ‘같은’ 국가대표선수면서도 ‘다른’ 대우를 받아야 했던 대표선수들은 같은 운동선수들에게 그동안 흘린 땀방울과 눈물을 인정받았다는 것이 가장 큰 힐링이었으리라.


선수들은 앞으로 컬링장 증설과 생활스포츠로의 저변확대가 가장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외국에서 남녀노소 즐기는 운동이지만 국내에서는 아직도 생소하기 그지없어요. 할머니 할아버지가 컬링하는 모습이 캐나다에선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죠”라고 김지선 선수가 설명이 끝나자,


최민석(35)코치가 “컬링팀이 4강이라는 높은 성적을 냈지만 아직도 ‘컬링’이란 단어조차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입니다. 우리가 메달을 따면 사람들이 더욱 많이 관심을 가지겠죠”라고 덧붙인다.


비인기 종목에 대한 관심 부족과 열악한 여건을 딛고 뜨거운 열정과 끈기로 시작된 그녀들의 노력은 한국 동계스포츠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고 꿈을 현실로 이뤄내기 까지는 믿음과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절실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절망하고 포기하는 이유가 자신을 둘러싼 상황과 현실때문이라고 둘러대고 그저 그런 결과에 만족하고 말았던 경험이 있다면 여기 선 그녀들을 보라. 노력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불변의 진리를 일깨워준 그녀들이 오는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과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전해올 활약상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컬링(Curling)은?


‘빙판 위의 체스’ 라고 불리는 컬링은 작전과 기술에 의해 승패가 갈린다. 한 팀당 8개의 스톤을 상대팀과 번갈아가며 4명의 선수가 2번씩 미끄러뜨려 4.8m 하우스 안에 얼마나 많은 스톤이 표적판의 중심에 더 가까이 있는지를 점수로 매긴다. 컬링의 한 게임은 10엔드로 구성되고 경기 시간은 2시간 40분 정도 소요된다.


브러시로 빙판위를 빗질하면 스톤의 속도가 빨라지고 더 멀리 갈 수 있다.

(중부일보)

★스토리 팁


‘나에게 컬링이란?’


―신미성 “내 인생의 동반자이자 꿈을 이루고 싶게 하는 원동력”


―엄민지 “오래된 친구”


―김지선 “올림픽 금메달을 꿈꾸게 하는 목표”


―이슬비 “또다른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김은지 “내가 건 인생의 목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