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기술이 경쟁력의 원천… R&D부문이나 공장도 우리 손이 닿는 곳에 둬야” 캐논 우치다 쓰네지 사장 첫 단독인터뷰
창업자 조카인 現 회장이 평사원일땐 있는지도 몰랐다 캐논에서 중요한 건 ‘실력’ Url 복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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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선우정 기자 su@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 블룸버그 “전 숨겨놓은 자식이 아닙니다.”
폭소가 터졌다. “창업주의 후손이 아니냐?”는 질문에 대한 우치다 쓰네지(內田恒二·67) 캐논(Canon) 본사 사장의 대답이었다.
세계 1위의 디지털 카메라 제조업체인 일본 캐논은 1937년 의사 출신 미타라이 다케시(御手洗毅)와 기술자였던 우치다 사부로(內田三郞) 등이 공동으로 설립한 회사다. 미타라이 후지오(�士夫·73) 현 회장이 창업자 미타라이의 조카이므로, 우치다 사장 역시 공동 창업자인 우치다의 후손이려니 생각하고 물은 것이다. 과거 LG그룹의 구씨와 허씨 가문 동업(同業)과 비슷한 관계인 줄 알았다.
“제가 캐논에 입사했을 때 창업자 우치다 사부로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같은 ‘우치다’ 씨(氏)라서 오해를 종종 받았습니다만, 저는 (창업 가문과) 전혀 관계가 없지요. 숨겨놓은 자식도 아닙니다.”
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질문은 뒤로 미루고, ‘아날로그 강자’에서 ‘디지털 강자’로 극적인 변신을 이룬 캐논의 성공 신화 비결을 물었다.
아날로그의 세계에서 비슷한 위치에 있던 독일의 필름 회사 아그파는 문을 닫았고, 캐논과 함께 일본의 3대 광학 카메라 메이커로 꼽히던 미놀타는 소니에 인수됐다. 세계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를 개발한 미국 코닥조차 주력 사업이던 필름 분야가 축소될 것을 우려해 사업 전환을 미루다 고전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캐논은 현재 디지털 카메라 분야의 세계 1위 기업이다.
“어떤 기업이든 자신의 가장 강한 분야, 가장 잘 나가는 분야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할 때 결단을 내리는 것이 매우 힘들지요. 우리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카메라로 변신할 때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타이밍을 잘 잡았습니다.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늦지도 않게.
처음 디지털 카메라가 나왔을 때는 저화소(低�素)였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카메라로 인정할 수 없는 수준이었지요. 당시 미타라이 사장의 지도력으로 우리의 카메라 기술과 디지털 기술을 총결집시키는 노력을 했습니다. 고객의 기대에 최소한으로 부응할 수 있는 카메라를 내놓은 것이 2000년 ‘익시(IXY·캐논 디지털카메라의 소형 기종으로 한국 모델명은 IXUS)’였지요. 디지털 카메라 붐(boom)이 형성되기 직전보다 1년 앞서도 안 됐고, 1년 늦으면 더 안 됐을 테고. 아슬아슬한 타이밍, 하지만 최적의 타이밍이었지요. 우리는 시대의 물결에 아주 부드럽게 올라탔습니다.”
▲ 캐논 제공 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우치다 사장의 견해는 완고했다. ‘창업 가문의 회장이 있는데 이럴 수 있나’ 싶을 정도였다.
―미타라이 회장은 창업자의 조카입니다. 그래서 한국에선 캐논을 ‘동족(同族)회사(가족이 대를 이어 경영하는 기업을 뜻하는 일본 용어)’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완벽한 난센스입니다. 제가 평사원일 때는 미타라이 회장이 회사에 있다는 것조차 몰랐습니다. 1986년 미국에 갔을 때 (미타라이 회장이 당시 미국 법인의) 사장을 하고 있어 처음 만났습니다만, 그 때도 그가 창업주의 친척이란 사실을 몰랐습니다. 우리 회사엔 누가 누구의 친척이고 누가 누구의 아들이라는 이야기도 돌지 않습니다. 전혀. 중요한 건 실력이지요.”
―나쁜 의미로 말씀 드린 것은 아닙니다. 일본의 경우 동족회사의 수익성이 전문 경영인이 지배한 회사보다 높다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다른 회사의 사례를 보면, 동족회사를 좋은 이미지로 떠올리기 힘들지요. 기업 통치가 견고하다는 장점도 있지만, (동족 경영이) 오랜 기간 이어지면 아무래도 좋은 점보다 나쁜 점이 더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일본 상장기업과 일류기업 중에도 3대, 4대 이어진 기업은 드뭅니다. 마쓰시타도 (기업을) 상속해서 잘된 것이 아닙니다. 창업자의 의지가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창업자 혈족이 경영권을 잇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철학과 이념을 얼마나 확고히 가져가는가가 미래를 결정할 뿐이지요.”
우치다 사장은 정통 기술자 출신이다. 일본의 명문 국립대인 교토(京都)대 정밀공학과 졸업 후 캐논에 입사해, 간부가 될 때까지 카메라 사업본부에 몸을 담았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세계에서 연이은 ‘캐논 신화’를 현장에서 창조한 인물이다. ‘경영의 귀재’로서 캐논을 중흥시킨 미타라이 회장에 이어 2006년 5월 사장을 맡았다. 일본의 대기업 경영은 사장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우치다 사장이 매스컴과의 단독 인터뷰에 응한 것은 일본 언론을 포함해 조선일보가 처음이었다. 도쿄에 있는 캐논 본사에서 그를 만났다.
■깊이를 키우면서 지평(地平)을 넓힌다
―일본 언론은 미타라이 시대를 ‘집중의 시대’, 우치다 시대는 ‘확대의 시대’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동의하십니까?
“새 사장이 나왔다고 갑자기 전혀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는 없겠지요. 지금까지 우리는 내부 합리화를 진행해왔습니다. 사업은 분야별로 잘 진행해왔지만 각각의 사업 내용을 보면 아직 할 일이 가득하지요. 사업을 나름대로 발전시키면, 상당한 수준까지 가면 확대가 필요합니다. 물론 ‘건전한 확대’겠지요.”
―지금이 확대가 필요한 시기입니까?
“지금까지를 (캐논 역사의) 전반(前半)이라고 본다면, 전반의 일은 ‘우리 영역’에서 기초를 완벽하게 다지는 것이었지요. 앞으로 목표는 기업의 영속적인 발전입니다. 캐논은 지금이 건전한 확대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건전한 확대를 통한 영속적인 발전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지요.”
―확대의 방향도 말씀하신 ‘우리 영역’의 연장 선상인 듯합니다. 캐논은 발전 전략으로 ‘크로스 미디어 이미징(cross media imaging)’이란 개념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는 그래프를 보여주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캐논의 기업 이념, 캐논의 비전, 그 이념과 비전을 실현하는 캐논의 사업 내용이지요. 그런데 개발, 생산, 판매 모두 ‘이미징(화상화·畵像化)’과 관련이 있습니다. 여기엔 안 나와 있지만 반도체 노광(露光)장치(실리콘 웨이퍼 위에 회로를 그려 넣는 장치로, 캐논이 세계시장의 32%를 차지하고 있다.)도 이미징 장치입니다. 캐논은 창립부터 (이미징의 기본 장치인) 카메라를 확대하면서 발전한 회사지요. 현재 캐논 영상기기의 기술을 가일층 연계(連繫)하면서 보다 고차원의 제품을 제공해 마음을 풍요하게 하고 생활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것. 세계 기업 중에 캐논이 이 목표에 가장 근접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캐논이 지향하는 확대란, 결국 기존 사업의 ‘심화(深化)’인 듯합니다.
“각 사업이 각 분야에서 ‘세계 최고’를 향해 매진하는 것이 우리가 지향하는 확대겠지요. 하지만 세상은 달리 변해가니까 지평을 넓혀야 합니다. 그 중 하나가 ‘의료 이미징’ 분야입니다. 더욱 연구 개발을 해야 하는 분야이지요. 의료 이미징이란 수술을 한다든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앞 단계에서 (병을) 예방하는 것입니다. (캐논은 X-선 촬영기, 안과 기기처럼 인체를 촬영해 병을 발견하거나 예방하는 제품도 생산 판매하고 있다.) 건강과 안전(安全)이란 영역에 캐논의 새로운 확대 여지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왜 내제화(內製化)인가?
―지난해 캐논은 히타치, 마쓰시타와 함께 액정디스플레이(LCD) 투자를 발표했습니다. 수많은 기업이 이미 하고 있는 분야입니다.
“진출한 목적이 전혀 다르다고 할까요. 소형 LCD는 캐논의 거의 모든 제품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장기적인 측면에서 제품의 고기능화를 위해선 LCD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히타치의 기술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캐논에게 필요한 최고의 기술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가 추진하고 있는 ‘내제화(內製化·안에서 만든다는 뜻)’의 일환으로 우리가 못 가진 기술을 보유한 다른 회사와 협력을 하는 것입니다.”
우치다 사장이 말한 ‘내제화’는 지금 캐논의 전략을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이다. 핵심 기술을 스스로 가져야 한다는 의미로, 캐논의 활발한 일본 국내 투자(카메라 공장 신설과 LCD패널 공동 진출)로 연결되고 있다.
우치다 사장은 현 시점을 “핵심 기술의 시대”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디지털 제품의 핵심 기술은 일본에서 개발돼 일본 국내에 있기 때문에 해외에 투자해 거점을 만든다는 것은 메리트가 없다”고 단정했다. 기술 수준의 평준화로 투자가 해외로 나가던 1990년대와 달리, 지금은 국가의 배타적 기술력이 기업을 발전시키는 시대란 뜻이다. 1970~80년대 일본에선 이를 ‘기술 민족주의’라고 표현했다.
―내제화는 제조 거점의 국내 U턴과 연결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내제화는 첫째 핵심 기술을 확립하는 것, 둘째 내제화를 통해 공장의 자동화를 추진하는 것, 셋째 자동화를 통해 일본 국내의 단순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것, 넷째 설비를 가일층 합리화하는 목적입니다.
그렇다고 내제화가 곧 ‘국내 회귀’는 아닙니다. 세계적인 관점에서 타이밍에 따라 해외로 진출해야 하는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역시 핵심 기술이 경쟁력의 원천인 시대이지요. 캐논의 모든 제품에 들어가는 부품은 역시 우리의 손이 닿는 곳에서, 우리가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에서 만드는 것이 좋지 않나 하고 다시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제조 부문을 (국내에 있는) 개발 부문 가까이에 두는 것입니다.”
―지난달 발표한 규슈 지역의 나가사키(長崎) 신공장 건설 계획도 같은 맥락이군요.
“그렇습니다. 나가사키를 수요가 늘고 있는 일안(一眼·single-lens reflex) 카메라의 제조 거점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노베이션도, 기업 문화도 출발은 ‘대화(對話)’
―캐논이 대표적이지만, 일본은 유난히 현장 기술이 강한 듯합니다.
“일본인들은 동질성이 강하지요. 기업에 대한 귀속 의식, 새로운 목적을 향해갈 때의 단결력, 나카마(仲間·동료, 패거리) 의식이 아주 강합니다. 나쁜 측면도 있지만, 이런 의식이 (기업 현장에서) 모두 평등한 입장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문화를 형성했지요. 캐논도 마찬가지입니다. 작은 ‘마치코바(町工場·동네 공장)’에서 70년 동안 이런저런 시대를 거쳐왔지만, 기술 노하우의 전승(傳承)만큼은 확실히 했어요. 인사, 교육, 채용 등 여러 제도를 일본의 풍토에 가장 맞는 형태로 확립해 기업 문화를 만들었지요. 캐논의 현장에는 가족주의, 건강제일주의와 같은 인간성에 기초한 기업 풍토가 있습니다. 창업자가 의사라서 종업원의 건강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지요. 이런 문화가 환영 받는 것은 일본만이 아닙니다. 캐논 해외 공장도 (그 나라에서) 똑같이 환영 받고 있지요. 내 경험으로도, 캐논엔 심술이 고약한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웃음)”
―캐논 현장의 ‘셀(cell) 방식’ 〈관련 기사 참조〉도 인간 존중의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그렇습니다.”
―캐논은 가족주의와 실력주의를 양립시킨 회사로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어떻게 가능했습니까?
“지금 일본 기업 가운데 연두(年頭) 방침(한 해의 경영계획)을 사장이 모든 사업장을 돌면서 설명하는 기업이 얼마나 될까요? 모든 거점을 도는 데 1개월이 걸립니다. 경영자의 비전과 전략을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현장의 사원과 공유하는 것이지요. 캐논은 오랜 기간 이런 노력을 해왔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부장급이 본사에 모여 회의를 열고 기업의 현황을 얘기합니다. 그리고 각자 현장에 가서 이날 회의의 이야기를 사원들에게 전하지요. 끊임없이 대화를 하면 이노베이션도, 새로운 기업 문화도 가능하지요.”
■”소니와 마쓰시타, 지금은 경쟁 상대 아니다”
―디지털 시장에서 소니, 마쓰시타와 같은 전자업체가 경쟁자로 부상하고 있지요.
“일안(一眼)은 고객들의 ‘고다와리(특정한 것에 대한 마니아적 집착을 나타내는 일본어)’가 아주 강한 분야입니다. 특히 렌즈는 역사가 없으면 따라잡기가 힘든 법이지요.”
―경쟁 상대로 보지 않으시는군요?
“마쓰시타가 일안 분야에 진입함으로써 아주 재미있는 싸움이 전개될 듯합니다. 마쓰시타는 원래 카메라에 큰 흥미를 가진 기업이었어요. 스트로보(카메라 플래시)를 만들던 웨스트전기(파나소닉 포토라이팅으로 사명 변경)도 마쓰시타의 자회사였지요. 세상에서 이곳 한 곳밖에 없을 정도였습니다. 마쓰시타가 정말로 진지하게 싸움을 시작하면 미래엔 강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소니는?
“원래 미놀타였지요.(소니는 2006년 코니카미놀타가 포기한 카메라 사업을 인수했다.) 미놀타는 캐논, 니콘과 함께 일안 카메라의 3형제로 불렸습니다. 미놀타의 장점과 소니의 기술이 접목되면 미래엔 만만치 않은 존재가 될 지 모르지요.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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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09.06 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