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도 낭만도 잠시 잊어라, 10년 뒤 보장한다`
원대연 SADI 학장, 조현정 비트교육센터 회장이 이끄는 100% 취업 현장 가뜩이나 취업난이 심각한 가운데 미국발 금융위기까지 닥쳐 취업문은 더 좁아지고 있다.
대졸 미취업자가 130만 명을 넘어섰고, 비정규직까지 포함하면 청년 실업자가 200만 명이 넘을 것이란 우울한 분석이 나온다. 이런 가운데 취업 걱정을 모르는 ‘인재사관학교’가 있다.
삼성이 만든 디자인 전문학원인 ‘삼성아트앤디자인인스티튜트(SADI·사디)’와 비트컴퓨터가 운영하는 정보기술(IT) 교육기관 비트교육센터다.
두 곳 모두 학위를 주는 정식 교육기관은 아니다. 역사도 짧아 이제 설립 10년을 넘겼을 뿐이다. 그렇지만 대학도 부러워하는 명성을 쌓았다. 두 곳 모두 많을 때는 기업체의 채용 의뢰 건수가 수료생의 10배에 이르기도 한다.
가려서 뽑는다
지난달 30일 오후 6시 서울 논현동의 보전빌딩 1층. SADI 제품디자인과 3학년생의 졸업전시회를 보러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16명의 졸업생 출품작 중 하얗고 깜찍한 모양의 미니 청소기가 눈길을 끌었다. 독일 iF 디자인 공모전에서 ‘베스트 프라이즈’를 받은 작품이란다. 출품자인 박진수(29)씨는 서울대 경제학부 출신이다. 대학을 졸업한 뒤 2006년 SADI에 입학했다는 그는 “365일 가운데 330일은 학교에 나와 밤샘작업을 하던 ‘평범한 학생’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SADI에는 박씨처럼 ‘디자인 늦바람’이 든 학생이 수두룩하다. 대기업 연구원, 건축회사 설계사부터 의대·한의대 졸업생도 끼어 있다. 이곳에서 만난 SADI 입학생의 목적은 뚜렷했다. 올해 입학한 연채임씨는 “30대 엄마 세대를 위한 패션잡지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연씨와 동기인 황라열씨는 “영상 관련 일을 하면서 디자인 기초가 부족해 지원했다”고 했다.
2002년부터 SADI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원대연(62) 학장은 “오로지 디자인에 인생을 걸겠다는 목표의식이 분명한 사람만 가려서 뽑는다”고 강조했다. “입학 설명회 때 ‘낭만은 집에 두고 와라. 어영부영 다닐 요량이면 아예 원서도 내지 마라’고 엄포를 놓습니다. 그러면 학생들 표정이 진지해지고 학부모들은 박수를 치지요.”
SADI 졸업전시회가 열리던 이 무렵 서울 서초동의 비트교육센터. 조현정(51) 비트컴퓨터 회장은 수강 지원자 면접을 보고 있었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40분까지 그는 110명의 지원자에게 일일이 질문을 던졌다. 조 회장은 “오늘 명문대 공대를 9년, 대학원을 3년 만에 졸업했다는 학생을 떨어뜨렸다”며 “휴학이 길었다는 얘긴데 시간 통제 능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탈락자에게 이유 없는 휴학은 자기 경력을 깎아먹는 위험한 행동이라고 조언해 줬다. 면접이라기보다 ‘까칠한’ 인생 상담이다.
이날 면접에서 제 돈 내고 수업을 받겠다는 90명의 지원자가 빈손으로 돌아갔다. 이제껏 비트센터는 수강생 선발에서 정원(학과당 40명)을 채운 적이 거의 없다. 조 회장은 “실력 있는 학생을 뽑아서 ‘창의의 두뇌’를 깨운다는 설립 목적을 단 한 번도 어기지 않았다”며 “교육센터를 열던 90년부터 지켜온 원칙”이라고 말했다. “‘테트리스’ 프로그램 정도는 짤 줄 아는 실력과 인생을 얼마나 짜임새 있게 살았나 하는 인성을 평가합니다. 면접 자리에서 합격·불합격도 알려줍니다. 절대평가를 하다 보니 가능한 것이지요.”
무섭게 가르친다
31일 낮 12시30분 보전빌딩 6층. SADI 패션디자인과의 강의실과 실습실이 있는 곳이다. 점심시간이지만 이곳은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606호 실습실에선 사과를 한 입 베어 문 학생이 말없는 마네킹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뭐라고 말을 붙이기 민망해 603호 강의실로 옮겼더니 여기에선 논쟁이 한창이다. 같은 과 2학년 ‘컨셉트 디벨로프먼트’ 수업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임은혁 교수를 둘러싸고 대여섯 명이 토론을 벌이고 있다. 학교 관계자는 “토론 수업 시간에는 가끔 울고 나가는 학생도 있다”고 귀띔했다. 원 학장은 “학교에서 밤샘 작업을 하는 학생이 많다 보니 ‘최대 민원’이 샤워실을 설치해 달라는 거였다”며 “당연히 해결해 줄 것”이라며 웃었다.
원 학장은 그러나 공부에 대해선 단호하다. “학점 미달, 결석 등이 잦으면 어쩔 수 없습니다(학칙대로 유급이나 제적을 시킨다는 말이다). 학업을 중도 포기하는 경우도 36%나 됩니다. 성적 미달로 친구 딸이 제적당한 적도 있습니다. 제 자식인 것처럼 가슴 아팠지요. 다행히 다른 학교로 옮겨 우등생이 됐지만요(웃음).”
‘깐깐한 학사관리’는 교수라고 예외는 아니다. 원 학장은 취임 때부터 “학생 등록금이 교수 월급이다. 교수는 휴강할 권한이 없다”고 선언했다. 그는 교수 강의평가서를 직접 챙긴다. 학생 평가가 좋지 않으면 두 차례 경고를 보내고 그래도 개선되지 않으면 해고하겠다고 공표했단다. 재탕, 삼탕 하는 커리큘럼도 없다. 원 학장은 “묵은 교재를 가지고 ‘통조림 교육’을 하면 학생이 손해를 보는데, 이것은 기업이 고객에게 손해를 끼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학생에게 매섭기는 비트도 막상막하. 조 회장은 개강 첫날 “여친(여자친구)도, 남친(남자친구)도 잊어라. 교회도 빠져라. 좋은 직장 잡고 회개하면 주님도 용서해 주실 것이다. 공부하다 죽으면 조의금 1억원을 내겠다”는 말을 첫 인사로 한다. 통학 시간이 1시30분 넘게 걸리는 수강생에겐 “아예 학원 근처 고시원에서 머물라”고 권유한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정규수업, 팀별 과제 수행을 포함해 ‘1800시간 학습’이 이어지는데 드라마 보고, 애인 만날 틈이 어디 있냐는 얘기다.
이 센터의 엘리베이터 여닫힘 버튼엔 ‘빨리 문 닫고 꿈을 키우러 갑시다’고 적혀 있다.
비트의 교재는 매월 바뀐다. 조 회장은 “지난달 교재가 ‘어제의 기술’이 되는 세상이다. 내일 각광받을 기술을 담고 있어야 한다”며 120명의 교수진을 독려한다. 수강생들은 6개월 정규과정을 마치면 영어로 팀 프로젝트 발표회를 연다. 발표회에서 나온 내용을 『비트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책을 펴내는데 지금까지 117권에 이른다. 조 회장은 “세계 최초, 한국 최초의 기술 소스만 책에 싣는다. 여기서 나온 소프트웨어(SW)로 벤처기업을 차린 사례도 있다”고 자랑했다. 그러나 팀 발표회에서 탈락하면 최장 3개월간 ‘나머지 공부’를 해야 한다. 비트에는 특별한 ‘애프터서비스’도 있다. 조 회장은 “비트 출신이 ‘실력 소진’으로 단순 업무 위주인 기업 전산실에서 일하고 있으면 무료로 재교육해 개발 분야로 복귀시킨다”고 말했다.
교육이 힘든 대신 성적표는 화려하다. 최근 3년간 SADI의 평균 취업률은 92%. SADI 관계자는 “유학 예정자를 빼면 사실상 100%”라고 말했다. 디자인상도 석권하고 있다. 레드닷(독일), IDEA(미국), iF(독일) 등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디자인 공모전에서 SADI는 올해에만 14개의 수상작을 냈다. 국내 대학에서는 사상 유례 없는 성과다. 비트 역시 100% 취업률을 자랑한다. 지금까지 여기서 배출한 IT 프로그래머는 7879명. 이 가운데 64명은 벤처기업을 창업했다.
리더십이 힘이다
서울 논현동에 있는 SADI 실습실(위). 자유로운 분위기이지만 좋은 작품을 내놓아야 한다는 생각에 학생들 사이에선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비트교육센터의 프로젝트 발표회(아래). 수료생들은 긴소매 셔츠에 정장을 입고 영어로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한다.
삼성물산 생활문화부문 대표, 제일모직 사장을 지내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패션 CEO’로 유명한 원 학장은 지금의 SADI가 있게 한 일등공신이다. 삼성이 SADI를 만든 것은 90년대 초 이건희 전 회장이 ‘디자인 경영’을 선포하면서부터. 이즈음 그룹 차원에서 의욕적으로 SADI를 출범시켰으나 정규대학 학위 문제로 홍역을 치러야 했다. 수도권에 대학 신설을 금지하는 법 규제에 묶이면서 정체성 혼란을 겪은 것. 2002년 취임한 원 학장은 “학위가 없는 대신 순발력은 우리가 정규대학을 앞선다. 2010년 국내 최고, 2025년 세계 최고의 디자인 명문으로 성장한다”는 비전을 제시하면서 조직 구성원을 설득했다.
한편으론 제일모직 소속이던 SADI를 자금 여유가 있던 삼성전자 쪽으로 보냈다. 이를테면 ‘부잣집’에 시집을 보내 안정적인 살림을 꾸릴 기반을 마련해 준 것이다. ‘비주력 부서’라는 인식을 거두기 위해 SADI 행정직원은 승진 불이익이 없어야 한다는 요청도 잊지 않았다. 시간강사에 대해서도 ‘시간교수’로 명칭을 바꾸고 강의 실력에 따라 처우를 높여주는 등 시스템을 정비했다.
조 회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벤처기업 1호’. 스물여섯의 나이에 의료 SW 사업에 뛰어든 그는 89년 ‘조현정식 사회공헌’으로 여윳돈 1억원을 가지고 비트교육센터를 만들었다. “목적이 분명했습니다. 바로 ‘C언어 전도사’를 만들자는 거였지요. 당시 KAIST 박사과정에 있던 손덕진씨에게 C언어를 소개받았는데, 네트워크나 보안·모바일 등에 활용이 무궁무진하더군요. 안타깝게도 그때 C언어 전문가는 국내에 100여 명에 불과했어요. SW 산업이 강물을 이루려면 전문가 집단부터 만들어야 했지요.”
서초동에 자체 사옥을 지은 것도 수강생들에게 편하게 공부할 자리를 마련해 주기 위해서였다. 임대건물에서는 밤 12시 이후 출입이 불편해서다. 비트센터가 셔터 문을 내리는 날은 신정과 설날·추석·석탄절·성탄절뿐이다. 당연히(?) 비트컴퓨터에서 비트센터는 ‘적자 사업부’다. 지난 18년간 5년만 빼고 적자였다. 돈을 번 시기는 역설적이게도 외환위기 당시 IT 수강생이 넘쳐나던 98년부터 5년간이다.
수강생 사이에서 비트센터는 ‘비트예절센터’로 불린다. 이곳에서는 반바지를 입어서도, 슬리퍼를 신어서도 안 된다. 한 번은 무좀에 걸린 학생이 슬리퍼 차림으로 강의를 듣자 조 회장이 “치료하고 겨울에 다시 오라”며 쫓아낸 적도 있다. 프로젝트 발표회 때는 긴소매 와이셔츠에 정장 차림이어야 한다. 조 회장은 “소프트웨어는 보이지 않는 상품이다. 제값 받고 팔려면 자신의 이미지 메이킹도 해야 한다”며 “기초훈련부터 제대로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이 부러워하는 인재 양성소를 일궈낸 두 사람의 목소리는 ‘초점을 고객에게 맞춰야 한다’는 시각에서 일치한다.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다고 하소연합니다. 그런데 기업은 쓸 사람이 없다고 해요. 기업에서 대졸 신입사원을 인재로 만드는데 4000만원이 든다고 해요. 심각한 미스매치입니다. ‘고객 마인드’가 부족해서 그래요. 학생과 기업을 ‘고객’으로 모시면 무엇을 해야 할지 보입니다. 그런 다음 ‘낭만은 잠시 잊어 달라’고 요청해야 고객도 수긍하지요.” 원 학장은 자신의 교육 방침을 앞으로도 계속 밀고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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