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행군의 아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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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훈련소에서 늘 부르는 게 군가(軍歌)다.
고생스러운 훈련 과정에서 반복해 불렀던 노래라 뒤에 이를 떠올리며 추억에 젖는 사람이 많다. 요즘 군대에서는 간혹 불리는 정도지만 한국전쟁 이후 1980년대까지 군대를 다녀갔던 사람들에게는 잊히지 않는 노래가 하나 있다.
그 노래 ‘행군의 아침’은 이렇게 시작한다. “동이 트는 새벽꿈에 고향을 본 후/ 외투 입고 투구 쓰면 맘이 새로워….” 이 노래는 1952년께 지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유명 작곡가 김동진 선생이 곡을 만들고 김영삼이라는 분이 노랫말을 달았다.
노래는 엄격히 말하자면 ‘진중(陣中) 가요’다. 군대에서 유행하는 노래라는 얘기다. 요즘의 정의로 따지자면 군가는 ‘국방부가 직접 제정하고 배포한 노래’다. ‘행군의 아침’은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만들어 배포한 노래가 아니라서 군가라는 이름을 달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 노래는 군심(軍心)에 호응해 유행한 것으로 보인다. 고향의 부모와 자식을 생각하며 전장으로 나서는 군인의 마음이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장중한 곡조에 실려 잘 표현되고 있다. 전쟁이 닥칠 새벽의 결연함과 함께.
유달리 전쟁이 잦았던 중국에서도 ‘새벽과 전쟁’이라는 주제로 만들어진 성어가 있다. 창을 베고 새벽을 기다린다는 뜻의 ‘침과대단(枕戈待旦)’이다. 서진(西晋) 시기의 조적()과 유곤(劉琨)이라는 두 인물 얘기다.
전쟁에 대비해 이른 아침이면 늘 무예를 닦던 두 사람 중 유곤이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글을 적었다. “창을 베고 새벽을 기다리며…(친구) 조적에 비해 한 걸음 늦을까 늘 두려웠다”는 내용. 전장에 나서는 긴박함, 위기를 대비하는 긴장감이 잘 드러난 내용의 고사다.
기축(己丑)년 새벽을 맞는 느낌이 꼭 그렇다. 한국이 맞는 상황이 예사롭지 않다. 경제적인 한파는 쓰나미처럼 한국 앞에 다가설 기세다. 깊은 불경기가 예고되면서 각 가정도 구조조정과 실업의 파고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전장으로 향하는 싸울아비의 마음이 떠올려지는 신새벽이다. 이제는 싸움터로 나아가는 자의 결연함이 필요하다. 구두끈과 허리띠를 더 졸라매자. ‘행군의 아침’ 끝 소절은 “물도 맑고 산도 고운 이 강산 위에/ 서광을 비추고자 행군이라네”다.
유광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