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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의욕과 패기
작성자
손길승
작성일
2009/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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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없음

“내 첫 월급은 9000원…작은 곳에 가서 크게 키웠죠”

서울대 초빙교수로 첫 강의한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 논쟁중인 댓글 (0)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방금 소개받은 SK 손길승입니다.”

14일 서울대 SK경영관의 한 강의실. SK텔레콤 손길승(68·사진) 명예회장이 대학생 100여 명 앞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수강생은 경영대 윤계섭 교수의 ‘경영학원론’을 듣는 저학년생들이었다. 손 회장은 2003년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에 휘말려 이듬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가 지난해 사면·복권됐다. 지난해 말 SK텔레콤 명예회장으로 복귀했지만 그룹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고 있다. 오랜만에 공개석상에 나선 손 회장의 강연 제목은 ‘기업 경영과 사람’이었다. 서울대 상대 출신인 그는 모교 초빙교수를 맡아 중소기업에서 시작해 거대 그룹으로 기업을 일군 자신의 인생 경험을 전수할 예정이다. 이날이 ‘교수 손길승’으로선 첫 강의였다.

‘손 교수’의 강의는 경영인 손길승만큼 공격적이었다. “저는 우리나라가 앞으로 유엔 상임이사국에 들어갈 정도의 국부나 영향력을 가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런 미래를 원치 않는 사람은 지금 강의실을 나가도 좋습니다.”

손 회장은 1963년 서울대 상대를 졸업하고 학군장교(ROTC) 1기로 군 복무를 마친 뒤 65년 선경직물에 입사했다. 선경직물은 SK그룹의 모태지만 당시는 직기 200대를 두고 양복 안감을 만들던 중소기업에 불과했다.

그가 중소기업을 선택한 이유는 뭘까. “당시는 취직할 만한 곳이 많지 않았습니다.

제일 잘나가는 직장이 한국은행이었고, 기업은 삼성물산·천우사 등 몇 군데뿐이었죠. 군대를 마치고 대학 동기들과 함께 당시 최문환 상대 학장을 찾아가 ‘갈 데가 별로 없다’며 진로 문제를 상의했더니, ‘작은 곳에 가서 키우라’고 하셨습니다.

앞으로 한국 경제가 발전할 것이고, 그러려면 기업이 발전해야 한다고 하셨지요.”

서울 상대 59학번 동기 CEO 180여 명

그렇게 해서 손 회장은 졸업 동기와 선경직물의 문을 두드렸다. 막상 월급을 정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고 했다. 대졸 신입사원이 입사하는 경우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첫 월급은 9000원으로 정해졌다. 당시 한국은행 월급은 1만8000원이었다. 그는 “매출 몇 억원의 중소기업이 지난해 기준 매출 100조원이 넘는 그룹으로 성장했고, 나도 월급 9000원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상당액수’를 받고 있다”고 했다. 학생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실제로 서울대 총장을 지낸 고(故) 최문환 교수의 조언에 서울 상대 59학번인 손 회장의 동기들은 대거 중소기업으로 뛰어들었다고 한다. 그는 “많을 때는 동기 중에 최고경영자(CEO)가 180여 명에 달했다”고 했다.

직물공장에서 시작한 SK그룹은 70~80년대를 거치면서 원사공장과 정유·석유화학공장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직물-원사-석유화학으로 이어지는 사업의 수직적 통합에 성공한 모델로 꼽힌다. 그 후 이동통신사업에 진출해 성장동력을 추가했다. 손 회장이 이런 성공의 핵심요소로 꼽은 것은 SK그룹의 ‘경영 헌장’인 ‘SK경영체계(SKMS)’였다. 73년 고(故) 최종현 회장이 형(故 최종건)의 뒤를 이어 회사 경영을 이끌게 되면서 새로운 시대에 맞는 경영기법이 필요하게 됐다. 그는 “여러분도 성공하고 싶으면 SKMS를 통해 경영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영은 돈벌이…‘적당한 이익’ 안 돼
그는 솔직하고 간결하게 SKMS를 설명했다.

“기업 경영은 ‘돈벌이’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안정과 성장을 지속적으로 이뤄내는 것이죠. 안정을 위해선 망하지 않고 이익을 내야 합니다. 또 성장하려면 매출이 늘어나야 합니다.

기업이 사회공헌에 나서는 것도 결국 매출을 올리고 이익을 내는 데 저항이 없도록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최고경영자부터 말단사원까지 경영에 대해 이렇게 똑같은 정의를 내려야 합니다.

신입사원 교육과정에서 ‘왜 기업은 폭리를 취하는가’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이익을 ‘적당히’ 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틀린 생각입니다.

치열하게 시장에서 경쟁하는 전사(戰士)의 사고방식이 이래서는 곤란합니다.”

예를 들어 SKMS의 ‘기획’은 이익·매출액이 늘어나도록 설계서를 만드는 것이다. 설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설계서대로 일이 진행되는지 점검까지 해야 한단다. ‘마케팅’은 소비자 니즈(needs)를 파악해 남보다 값을 비싸게 받으면서 많이 파는 것이다.

손 회장은 강의 중간 중간에 경영학 교과서에 대한 비판을 날렸다. 아무리 읽어봐도 무슨 소리인지 모를 때가 많을뿐더러 ‘의욕’이나 ‘패기’처럼 정작 중요한 건 빠져 있다는 것이다. SKMS를 움직이는 것은 결국 ‘사람’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여기엔 어떤 요인이 중요할까.

첫째, 의욕이다. 의욕이 있고 없고가 큰 차이를 만든다.

둘째, 흔히 ‘그릇’이라고 표현되는 일처리 능력이다.

셋째, 부서 간의 협력(coordination)이다.

넷째, 의사소통(communication)이다. 반대하는 사람을 이해시키고 동의하게 만드는 것이다. 나아가 행동까지 같이하게 만들어야 한다.

다섯째, 패기다. ‘할 수 있다’는 적극적 사고를 바탕으로 빈틈없고 야무지게 일을 처리하는 것이다.

‘패기’를 강조하면서 자신이 겪은 서울대 출신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신입사원을 받아보면 서울대 출신은 머리는 좋지만 진취적 사고가 부족해요. 반면 연세대 출신은 인간관계를 잘하고, 고려대 출신은 ‘몸으로 때운다’고 할 정도로 성실합니다.” 책임을 회피하려는 성향 탓에 서울대 출신이 정작 중요한 업무에서 배제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했다.

패기와 함께 건강 관리와 화목한 가정의 중요성도 언급했다. “몸과 마음이 함께 건강해야 합니다. 부부관계도 좋아야 합니다. 집안에 걱정이 있으면 회사 일이 제대로 될 턱이 없지요.”

SK그룹 성장에는 인수합병(M&A)이 큰 역할을 했다.

손 회장이 인수전을 진두지휘했던 유공(현 SK에너지)·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이 현재 그룹의 양대 주력사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손 회장은 “없는 것을 조달해 내는 게 우리 일이었고, 그렇게 하려면 모든 것을 다 걸어야 했다”고 했다.

그는 밥 먹듯이 밤을 새웠다. 최장기 기록은 ‘1박9일’이었다고 했다. “2~3일 지나니까 더 이상 잠이 오지 않더군요. 다만 밥맛이 없어 음료수를 마시며 버텨야 했죠. 이런 것도 신념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손 회장은 “최소한 20년 이내에 한국을 유엔 상임이사국으로 만드는 데 리더가 돼 달라”는 말로 강의를 마쳤다.

“일류기업을 모방하면 평생 그 뒤를 따라가야 합니다. 일류기업보다 더 높은 목표를 잡아야 합니다. 여러분도 인생 목표를 훨씬 높게 잡으세요. 그리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떤 요소가 필요한지 따져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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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길승 회장은
1941년 경남 하동생. 진주고ㆍ서울대 상대 졸. 65년 선경직물에 입사해 74년 선경합섬 경영관리반장을 맡은 이래 ‘붙박이 기획실장’으로 일했다. 오너는 아니었지만 그에 버금가는 권한을 행사했다. 고(故) 최종현 회장은 늘 손 회장을 ‘사업동지’로 부르며 그에 걸맞게 대접했다. 오너와 전문경영자 간의 수직적 상하관계가 보통인 한국적 기업 풍토에서 손 회장은 드문 사례였다.
98년 최 회장이 타계한 뒤 경영 공백을 메우기 위해 그룹 회장에 올랐다. 2세인 최태원 회장과 오너-전문경영인 투톱 체제로 그룹을 이끌었다. 전문경영인 출신이면서도 2003년 오너의 모임인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에 올랐다. 하지만 2003년 SK글로벌·SK해운 분식회계, 계열사 부당 지원,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에 휘말려 힘든 시기를 보냈다. 지금은 SK텔레콤 명예회장과 전경련 명예회장, 대한펜싱협회장을 맡고 있다.

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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