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전산 이야기
2009/03/24 09:31 from 독서노트
김성호 지음 | 쌤앤파커스 | 2009년 01월
읽은날 : 2009년 3월 9~15일
‘일본전산 이야기’라는 책은 얼마전 새로 부임한 ‘높으신 분’이 각 팀별 부서마다 한권씩 배포함으로 인해 처음 접하게 되었다. 솔직히 처음엔 참 난데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 부서마다 한권씩 돌렸다고 쳐도, 부서나 팀이 워낙 많아서 사비를 꽤 많이 털으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뭣하러 그렇게까지 하셨는지 모르겠고, 정말 그 정도로 조직 운영에 열의가 있으셨던 것인지, 아니면 그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었는지 처음엔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짜로 굴러들어온 책을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리고 새로 부임한 ‘높으신 분’의 성향이나, 앞으로의 지휘 방향을 이해하는데, 이 책은 하나의 단서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제목을 보고 나온 나의 첫 반응은 “대체 일본전산이 뭐야?” 였다. ‘전산이라 하면, 컴퓨터관련 회사를 말하는건가? 아니면 일본의 IT업계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제는 더 가관이었다. [불황기 10배 성장, 손대는 분야마다 세계1위, 신화가 된 회사]라고 쓰여 있기 때문이다.
“세계 1위의 신화가 된 회사라면 내가 모를리가 있나? 유명해야 되는거 아닌가?” 하며 중얼거렸다. 그렇다.
난 일본전산이라는 회사를 태어나서 처음 들었다. 그래서 이 책을 봤을 때 그 가치에 대해서 많은 의문이 들었다. 왜냐면 삼성, 마이크로소프트나, 구글 등과 같이 매우 잘 알려져 있고 신화가 된 글로벌 기업에 관한 책이라면 그 제목만 봐도 충분히 신뢰할 수 있겠는데, 나에게 ‘일본전산’은 너무나 생소했기 때문이다. 표지 배경이 매우 자극적인 진한 빨간색인 것도 약간 눈에 거슬렸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무지였다.
일본 전산은 직원이 무려 13만명에 매출 8조원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큰 규모에데가, 불황에도 끄떡 없었던 막강한 기업이었고, 자극적인 빨간 책표지는 일본전산이 얼마나 열의가 넘치고, 뜨거운 회사인지 잘 표현하고 있었다.
일본전산은 소형 모터를 만드는 회사로, 하드디스크나, 광디스크, 가전, PC, 휴대폰, AV, 카메라, 로봇 할 것 없이 정말 움직이고 돌아가는 모든 분야에서 No.1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고, 세계 시장 점유율도 압도적인 1위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왠만한 가전에는 다 일본전산의 작은 모터가 들어있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오직 모터에만 집중한 회사였고, 소비자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완성품을 만드는 회사가 아니고, 그 안에 들어가는 부품을 만드는 회사다보니, 나처럼 이 회사를 잘 모르는 사람도 많았으리라 생각한다.
일본전산은 모터가 필요한 가전이나 PC, 공장 등 여러 업체에 말그대로 ‘납품’을 하는 업체이다. 우리나라의 ‘납품업체’라 하면, 보통 악덕 대기업에 납품을 하는 열악한 중소기업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일본전산 역시 그저 연약한 ‘납품업체’에 불과할 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뛰어난 기술력과 ‘모터’라는 제품에 ‘집중’함으로 인해 주-종 관계가 뒤바뀔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 회사다.
서플라이 체인상으로 보면 하청업체일지 모르지만, 지금은 많은 대기업들로부터 구애를 받으며, 규모면에서나 기술력 면에서나 왠만한 대기업을 초월하는 능력있는 회사였다.
이 책은 단순히 한 기업의 성공을 미화하기 위해 쓰여진 책이 아니다. 일본전산이 오늘날의 No1 기업이 되기까지의 노력과 나가모리 사장의 경영 철학이 고스란이 소개되어 있다.
그 경영철학이라는 것은 기존의 경제/경영 이론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신선했다. 그 신선하다는 의미는, 이것이 정말로 완전히 새로운 경영철학이라서 신선하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알고보면 너무나 기본에 충실한 것들이다.
추상적이거나 겉으로 보기에 그럴듯한 경영이론이 아니다. 인간의 행동 공학에 기초한, 너무나 기본적인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너무나 직설적이기에 신선한 것이다.
오히려 남들이 보면 정말 얼토당토 않은 사소한 ‘기본’에 목숨을 거는 회사같아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기본’이 현재의 일본전산을 만들어냈고, 그 일본전산이 말하는 ‘기본’에서 얻는 통찰은, 기존에 나와 있는 경제/경영서적들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특히 가치가 있는 책이 아닌가 싶다.
전반적으로
한 분야에 집중하고,
스피드경영,
품질경영, 뉴패러다임(?)을 추구하는 문제에서는 여느 경제/경영 서적과 큰 차이는 없어 보인다.
다만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일본전산에서만 배울 수 있는 부분들이 많이 있었다.
특히 그러한
스피드경영, 품질경영, 사내교육에 투자하는 조직운영 밑바탕에는 인간의 행동과 의식에 바탕을 둔 철저한 ‘기본기’가 있었고, 이것은 일본전산만이 갖고 있는 무기였으며, 승부를 가르는 중요한 키워드였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내가 가장 흥미롭게 보았던 내용은 바로 나가모리 사장의 인재관이다.
목소리 크고,
밥 빨리 먹는 사람을 뽑았던 일화는 그 나름대로의 철학적 배경이 있었고,
매우 흥미로웠으며, 또한 충분히 공감할만 했다.
아무리 최하급 삼류들을 데려다 쓴다고 해도,
머리만 가득찬 인재보다 가슴이 뜨거운 사람이라면,
교육을 통해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나가모리는 보여주었다.
업무의 능동적, 창의적 사고를 증폭하는 가점주의제도, 그리고 안된다는 습관을 된다는 습관으로 만들고, 끝까지 물고 늘어지며 포기라는 단어를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조직문화, 열정은 우리나라 기업들에게 참 많은 가르침을 준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