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는 항상 위험… 도전하면서 배우는 것”
서울시향 ‘유럽 심장부’ 진출 정명훈 예술감독 인터뷰
김승현기자 hyeon@munhwa.com
▲ 사진=김선규기자
서울시교향악단(대표 김주호)이 5월29일부터 6월10일까지 이탈리아 브레시아·베르가모·볼로냐, 독일 베를린·뒤셀도르프·에센, 체코 프라하, 러시아 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 등 클래식 음악의 심장부로 원정을 나선다.
서울시향이 정부의 지원 아래 홍보대사의 성격으로 이들 지역에서 공연한 적은 있지만 이렇게 현지의 초청으로 유료판매를 하기는 처음이다.
세계에서 손꼽는 마에스트로 정명훈(57)씨가 예술감독을 맡은 지 5년 동안 서울시향이 그 정도로 달라졌나 궁금해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서울시향 예술감독실에서 정씨를 만났다.
―서울시향이 과연 유럽 무대에 진출할 준비가 돼 있나.
“본격 유럽 진출과 관련, 조금 더 기다리는 게 낫지 않겠나 생각하기도 했다. 생각을 바꾼 계기는 지난해 브뤼셀에서 한번 공연을 했는데 괜찮았다. 우리의 목적은 발전이다.
위험성은 있지만 해볼 만하다.
또 무대라는 게 언제든지 위험하지 않나.
우리가 설 무대에 대한 준비가 완전하다고는 할 수 없다. 조금 이르지만 거기서 배우는 게 중요하다. 물론 창피한 수준이면 갈 생각을 했겠는가.”
―프로그램이 서울시향의 상임작곡가 진은숙씨 작품과 드뷔시, 라벨 등 20세기 음악이다.
“처음에 독일 에센에서 진씨의 음악을 요청했다.
현재 세계에서 새로운 작곡가를 찾고 있고 그 중에 진씨가 앞서 있다.
유럽에서 날린다. 잘하고 있다.
요새 음악 이해하기 어렵다고 하지만 흥미있다. 다시 한번 들어 볼 만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리 시향은 사실상 새로 만든 오케스트라다. 미래를 위한 미래의 오케스트라다. 그래서 레퍼토리를 컨템퍼러리로 골랐다. 거기에 어울리는 게 드뷔시와 라벨이다.”
―신년음악회에서 들은 드뷔시와 라벨은 상당히 단정했다는 인상이다. 평소 정열적인 지휘 모습을 찾기 어려웠다.
“나이가 들었다. 힘이 들다. 단정한 게 좋다.”
―그건 그렇다. 이런 단정함, 명확함을 서울시향의 특징으로 이해해도 좋은가.
“(좀 부족한) 그걸 봤냐? 사실 리허설이 좀 부족했다.
그래서 포디엄에서 최대한 조심스럽게 했다. 5월까지 연습을 더 많이 할 것이다. 솔직하게 말해 지휘하는 데 너무 움직이는 것보다 조용한 게 좋다. 그러나 그래도 소리는 굉장하게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서 많이 움직인다. 아직도 좀 (소리가 강하게 잘 나오도록 많이 움직여) ‘밀어주는’ 편이다.”
―서울시향이 아시아 제일이라고 했는데 과찬 아닌가.
“음악에 대한 판단은 주관적이다.
외국 사람들은 우리 오케스트라를 보고 뜨겁고 감정적으로 열려 있다고 칭찬했다.
물론 아직 힘써 더 가야 한다.”
―지난해 5월 서울시향 단원들과 처음으로 식사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직접 스파게티를 만들고 호텔에 와인이 동나도록 거하게 낸 것으로 알고 있다. 이제 비로소 ‘식구’가 된 것인가.
“대답하기 상당히 조심스럽다. 투어할 때 잘해야 한다.
준비를 잘해야 하고, 같이 살며 콘서트여행하는 것이다. 자기 집 떠나 생활하는 단원들과 잘 지내야 한다. 재미있게 지내는 것이 중요하다.
파리에서는 저녁뿐 아니라 파티까지 한다. 춤도 추고 노래도 한다. 아직 우리 오케스트라는 변화가 많다. 그동안 말할 수 없이 힘들었다. 그러나 점점 안정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 우리 오케스트라는 퍼머넌트 컨트랙트(종신계약), 롱텀 컨트랙트(장기계약)가 아니다. 아직 트랜지션 피리어드(단기계약)다. 그래서 견뎌내기 어렵다. 그러나 다른 방법이 없다.”
―이제 밥을 같이했다는 것은 퍼머넌트에 가까워졌다는 뜻으로 봐도 좋은가.
“점점 더 그렇게 된다. 5년 해서 이만큼 왔으니 2년 정도 더 하면 우리도 퍼머넌트 오케스트라가 될 것으로 본다. 단원들이 매년 오디션 걱정없이 가는 것, 그것이 목적이다.”
―마에스트로는 오디션에 집중하기로 정평이 나 있지 않은가.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에서는 오보에 파트가 눈에 들지 않아 5년 동안 뽑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렇다니까. (그는 잘못 알려지는 것이 싫어 인터뷰를 꺼린다)
바스티유 오보에에는 를루라는 천재가 있었다. 바스티유가 잘될 것이라는 하늘의 사인(sign·계시)이라고 단원들에게 말했다.
산타체칠리아에서 노조규약으로 오디션을 할 수 없어 6년간 뽑지 못하고 객원을 쓰다가 6년을 싸워 최고의 솔로이스트들을 데려왔다. 그 당시 산타체칠리아는 라 스칼라보다 좋았다. 당연하다. 스칼라에서 최고의 호른, 피렌체에서 최고의 트럼펫, 뮌헨에서 최고의 트롬본을 가져오는 등 목관, 금관악기는 최고 수준이었다. 제일 잘하는 사람을 데려오면 제일 잘할 수밖에 없다.”
―마에스트로는 아무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아니다. 개인적으로 고생하고 헤매는 사람이다. 운이 좋아 옆에 있는 사람 덕택에 극복했다. 특히 좋은 선생님들을 많이 만났다. 35년간 말도 할 수 없이 고생했다. 제일 도움이 된 것은 우리 가족, 와이프다.
결혼하면 많은 사람이 우리처럼 행복할 줄 알았는데 그런 게 아닌가 보다. 잘 안되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내가 그렇게 말하면 그런 우스운 답이 어디 있느냐는 듯 보는데 베토벤이 교향곡 9개를 다 팔아서 좋은 부인을 만날 수 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브루크너도 성격이 수줍고 개인적이어서 못했다. 나는 정말 요만큼도 더이상 바랄 게 없을 정도로 행복하다.”
―구체적으로 어려웠던 일을 말해 달라.
“시애틀로 옮기고 음악을 공부하기로 결심하고 나서다.
음악을 위해 농구, 축구 다 그만둬야 했다.
그러고도 14, 15세 때 뉴욕에 가서 20세 때까지 특별히 힘들었다.
당시 내 수준은 형편없었다. 이건 완전히 희망이 없었다.
어쩌면 좋을지 밤새 헤매며 울고불고했다.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다.
또 지휘자도 10~15년 동안 어려웠다. 젊은 지휘자는 경험이 없지 않은가. 베를린 필, 런던 필 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너무 수준이 높았고, 개인적으로 날카로운 사람도 있고 나도 강해 힘들었다. 이제 겨우 그것을 벗어났다. 나이가 많아졌다.”
―서울시향이 세계 수준으로 오르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아직도 수준 높은 음악가를 찾는다.
이를 위해 지휘자와 서울시가 잘 협조해야 한다.
단원들 샐러리도 높아져야 한다. 많이 좋아졌지만 미국의 3분의 1이 안 된다. 물론 미국과 비교는 힘들다. 미국은 세계 제일이니 유럽에서도 많이 간다.
유럽은 우리보다 그리 높지 않으나 집, 건강보조 등 복지가 훌륭하다.
중요한 것은 미국 사람, 유럽 사람은 고사하고 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 사람도 오려 하지 않는 데 있다. 들어오면 연주보다는 가르치는 일을 하려 한다. 그것이 더 수입이 좋은 것도 사실이다. 물론 서울시향이 많이 올라갔다. 그래서 많이 오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정말 세계 수준에 오르려면 그런 것에도 신경을 써야 하고 현재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러나 그게 좀 더 드라마틱하게 갔으면 하는 게 바람이다.”
인터뷰 예정시간보다 10분을 더 쓴 정씨는 “이제 끝”하며 일어섰다.
김승현기자 hyeon@munhwa.com
기사 게재 일자 2010-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