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화학상 배출 아시아 명문대 …
리쓰천 대만대 총장 [중앙일보] 기사
2010.03.06 03:01 입력 / 2010.03.06 05:41 수정
“교수가 스트레스 받지 않는 대학에는 발전 없다”
리쓰천 대만대 총장은 캠퍼스 글로벌화와 교수평가가 경쟁력 강화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리쓰천 총장 뒤에 보이는
‘敦品勵學(돈품려학) 愛國愛人(애국애인)’ 한자는
‘덕을 쌓고 학문을 연마하며, 애국하고 사람을 사랑하라’는 학교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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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인터뷰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에 있는 국립 대만대학교는 활기가 넘쳤다.
야자 나무가 길게 늘어서 있는 파릇한 캠퍼스 사이를 가벼운 옷차림의 학생들이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학생의 발’인 자전거가 곳곳에 빼곡히 세워져 있었고, 외국 학생도 눈에 많이 띄었다.
프랑스에서 유학 온 클라라 필립(정치학과 1)은
“세계 각국 학생이 많아 언어를 다양하게 배운다”며
“캠퍼스가 넓어 자전거를 자주 이용한다”고 말했다.
‘세계로 열린 대학’을 내걸고 글로벌화에 뛰어든 대만대의 비전을 듣기 위해 총장실에서 만난 리쓰천(58·李嗣<6D94>) 총장은
“교수가 스트레스를 안 받으면 대학이 발전하지 못한다”며
“교수 간 치열한 경쟁이 대학 생존의 법칙”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1900여 명의 교수 실력을 평가해 재임용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며
“세계 일류 글로벌 대학으로 도약하는 출발점과 해법을 교수에게서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리쓰천 총장은 공학도답게 차분하면서도 논리정연했다.
그는 “아시아 대학이 세계 대학과 경쟁하려면 자유로운 학문 풍토가 중요하다”며
“특히 각국 대학생에게 캠퍼스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지난달 24일 1시간 동안 진행됐다. (※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
◆3+1 시스템으로 학생 글로벌화
-캠퍼스에 봄이 온 것 같다. 학교를 소개해 달라.
“2학기를 2월 22일 개강했다. 1학기는 9월, 2학기는 2월에 시작한다.
82년 전통의 대만대는 149개 4년제 대학 중 최대, 최고 규모다.
재학생 3만3000명 가운데 학부생은 1만7000여 명이다.
절반은 석·박사생이다. 11개 단과대와 54개 학과, 102개 대학원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글로벌화의 구체적인 계획이 뭔가.
“우리 대학에는 2500여 명의 외국 학생이 재학 중이다.
이 가운데 1800명은 학위 취득을 위해 공부한다.
나머지는 단기교환학생 등이니 캠퍼스 글로벌화가 상당히 진전됐다.
세계적으로는 310개 대학과 교류하고 있다.
서울대·고려대·연세대·KAIST·이화여대 등 한국의 12개 대학과도 자매결연을 했다. ”
-외국학생을 많이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내는 것은 더 중요하다.
“맞다.
글로벌화의 핵심은
학부 4년 동안 재학생의 3분의 1 이상이
외국 대학에서 1년 이상 공부하고 오도록 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일이다.
3+1 시스템이 정착되면 경쟁력이 껑충 뛸 것이다. 재학생들의 언어 실력도 뛰어나다.”
-대만대를 비롯한 아시아대학의 경쟁력이 미국·유럽 대학보다 떨어진다.
“우리가 치열하게 고민하는 점이다.
대만대 출신 중 노벨화학상 수상자도, 미국 유명 대학 총장도 배출했지만 갈 길이 멀다.
특히 최근에는 중국 대학에 세계 각국의 유학생이 많이 가는 점도 잘 알고 있다.
대만대는 지난해 영국 더 타임스 평가에서 세계 대학 종합 95위를 했다.
영역별로는 인문·사회과학이 60위, 정보과학 40위, 생명과학 45위다.
순위를 올리는 게 과제다.
노벨상(86년) 수상자를 배출한 화학과 함께 의학·전자 분야는 대만대의 3대 강점이다.
수년 안에 국립싱가포르대(30위)를 추월하겠다.
더 타임스 평가에서는 한국의 서울대(47위)와 KAIST(69위)에 뒤졌지만,
상하이교통대 평가에서는 우리가 두 대학을 앞섰다.”
◆교수 스트레스가 대학 발전의 힘
-대학 생존의 법칙이 교수 간 경쟁이라고 했다. 어떻게 경쟁시키나.
“1998년부터 평가시스템을 도입했다.
조교수·부교수·신임교수를 엄격히 구분해 적용한다.
신임교수는 3~5년, 나머지 교수는 5년마다 평가한다.
정년은 65세지만 테뉴어(정년보장)제를 운영하지 않는다.
평가에서 불합격하면 1∼2년 안에 재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래도 낙제점을 받으면 퇴출한다.
매년 두세 명이 짐을 싼다.
그러나 그 효과는 엄청나다. 스트레스와 긴장도가 대단하다.”
-교수 평가 기준은 무엇인가.
“단과대별로 다르다.
일반적으로는 100점 만점으로 보면 연구 40점, 강의 40점, 행정(봉사) 20점이다.
평가를 통과하지 못할 것 같다고 판단하는 교수는 스스로 보따리를 싼다.
퇴출 당하는 교수보다 알아서 나가는 교수가 더 많다. 이게 대단한 위력이 있다.
교수 스트레스가 대학 발전의 힘이라고 한 이유다.
다만 성적이 좋은 교수는 평가 대상에서 제외한다.”
-한국에서는 테뉴어제를 없애려는 대학이 많아지고 있다.
평가를 면제하면 또 다른 테뉴어제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교수들에 대한 배려, 즉 잘하는 분에게는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세계적인 석학이나 연구자를 평가할 필요가 있겠는가.
한국 대학들이 교수 평가를 강화하려는 것은 바람직하다.
나도 교수를 했지만 테뉴어를 받고 연구를 게을리하면 대학이 발전할 수 없다.
교수 평가를
강화할수록
학생과 학부모, 대학에 좋은 일이다. 물론 합리적으로 해야 한다.”
◆신입생 선발은 단과대 자율
-한국에서는 정부의 대입 관여 문제가 쟁점이 되고 있다. 신입생은 어떻게 뽑나.
“매년 4000명을 선발한다. 전국 고교에서 상위 3% 안에 드는 학생들이다. 선발 방식은 수시 개념(early decision)의 추천 전형과 연합고사 전형 등 크게 두 가지다.
추천 전형은 고교 내신성적 등을 반영한다.
연합고사는 국어·영어·수학·물리·사회과학 등 10개 과목을 치른다.
학과별로 원하는 학생을 뽑기 위해 자율적으로 과목별 가산점을 준다.
특히 수학 점수는 대부분 가중치를 둔다.
입시가 상당히 복잡하다. (웃으며) 나도 잘 모른다.”
(※연합고사는 한국의 수학능력시험과 같으며, 1년에 한 번 치른다.)
-우수 학생을 독식하는 게 아닌가.
“대만의 2대 남녀 명문고에서 매년 1300명이 입학한다.
커리큘럼이 좋고, 교수가 열정적이고, 꿈을 펼칠 수 있기 때문에 좋은 학생이 몰리는 것이다.
대만도 취업난이 심하지만
우리 학생들은 걱정하지 않는다. 연구중심 대학이어서 70~80%가 대학원에 진학한다. ”
-한국은 사교육 문제가 심각하다. 대만은 어떤가.
“(손사래를 치며) 한국 못지않게 심하다.
동양인 부모의 공통된 열성 때문인 것 같다.
50~60년 된 문제다.
학원에 안 다녀도 되는데 너무 노심초사한다.
나는 물론이고 딸과 아들도 사교육을 안 받았지만 일류고, 일류대를 나왔다. 부모 마음이 문제다.”
-한국의 국립대는 총장을 직선으로 뽑는다. 과열 선거와 편 가르기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우리는 총장선거위원회에서 뽑는다. 교수·동문·교과부 관료 등으로 위원회에 참여한다.
총장 임기는 4년이며 3선까지 가능하다.
교과부가 대학 학사에 크게 관여하지 않는다.
입시도 대학이 알아서 한다.”
타이베이(대만)=양영유 기자
◆리쓰천 국립 대만대학교 총장=1952년 대만생. 대만대 전자공학과(74년)를 나와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전자공학 석사(77년)·박사(81년) 학위를 받았다. 85년부터 대만대 컴퓨터공학과와 전자공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2005년 6월부터 총장으로 일하고 있다. 한국의 전국 국·공립대학협의회와 같은 성격의 대만국립대학협의회장도 맡고 있다. → 엽기발랄황당깜짝! 팝콘뉴스 바로가기
양영유 기자 [yangy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