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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정답과 주의
작성자
권영빈
작성일
2010/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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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없음

봄날은 간다 [중앙일보] 기사
나도 한마디 (4)
2010.04.28 00:08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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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중앙시평[2009년] 중앙시평한

신문사의 파리 특파원이 여섯 살 아들을 프랑스 유치원에 보냈다.

구청에서 공문이 왔다. 아이의 점심값을 책정해야 하니 구청에 나와 상담을 하자고 했다.

구청에 갔더니 소득증빙서류를 내면 아이의 점심값을 심사해서 통보해준다는 것이었다.
부모가 고소득자면 한 끼당 8유로(약 1만1000원),
소득이 기준 이하면 무상이라는 설명도 들었다.

프랑스는 오랜 사회당 집권으로 복지 수준이 우리를 훨씬 상회하는 나라다. 등록금 없이 대학을 다니는 나라인데도 중산층 이상이면 급식비를 내고 있다.

또 학생 모두가 학교 급식을 받지도 않는다.

초등생 2명 중 1명꼴로 집에서 점심을 먹고 온다는 것이다.

일률 급식이 아닌 제한 급식이고
부자 급식이 아닌 서민 급식이다.

지난해부터 경기도에 초·중·고 무상급식이 회오리바람처럼 몰아치더니
마침내 이번 지방선거에서 전국적 핫이슈가 되어 버렸다.

“전면 무상급식” 그 이유가 가관이다.

공짜 점심을 먹는 아이에게 마음의 상처를 준다는 것이다.

프랑스처럼 지자체나 교육청을 통해 급식비가 전달된다면 아이가 상처받을 일이 없다.

이런 방식은 생각도 않고 한 해 예산 1조5000억원을 급식비에 더 쓰자고 덤빈다. 의무교육이니 점심도 일괄 공짜여야 한다는 이유는 더욱 말이 되지 않는다.

집에 가서 밥을 먹을 자유도 있어야 하고 도시락을 싸들고 다닐 여유도 인정돼야 할 것이다.

우리 교육이 콩나물 교실에서 벗어난 지 불과 몇 해밖에 되지 않는다. 아직도 추운 날씨에 아이들이 발을 동동 굴러도 난방비가 없어 난로에 불을 지피지 못하고 전기료가 무서워 냉방시설을 돌리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한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 신문에 기고문을 통해 애타게 외치고 있다. ‘무상급식보다 교육 인프라 구축을!’ 그 초등학교의 컴퓨터 상당수가 고물이어서 동영상 한 편 다운받는 데 10분 이상이 걸린다고 했다. 학교 전기료를 산업용 전기료로 전환하면 냉난방비가 절감될 터인데 그마저 정부가 해주지 않아 냉난방 시설만 있고 가동은 할 수 없는 처지라 한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부자 급식에 막대한 교육비를 투자해야 하는가.

우리의 문제 해결 방식이 늘 이런 식이다.

문제를 이념과 이데올로기로 풀려 한다.

문제가 생기면 연구하고 정답을 찾는 게 정상인데,
먼저 이념에 따라 이데올로기를 세우고 원리주의 깃발을 내건다.

초기 중국 공산주의자들이 그랬다. 민주주의자 후스(胡適)가 공산주의자 천두슈(陳獨秀)를 향해 외쳤다.

왜 당신들은 교통 선진화를 위해
자동차를 연구하지 않고
인력거꾼 임금만 들먹이는가.

더 많은 문제를 연구하고 더 적게 주의를 논하라(多硏究些問題 少談些主義).

이게 그 유명한 ‘문제와 주의(主義)’ 논쟁이다.

우리의 좌파는 아직도 이 수준에 머물러 있지 않은가.

부자든 빈자든 똑같은 공짜 점심을 먹어야 문제가 해결된다고 본다.

학생의 생김새와 능력이 천차만별인데
똑같은 교육을 받아야 직성이 풀린다.

나는 최근 우리 국가의 100년 신부국강병책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우리 자산이라면 사람밖에 더 있나.
사람이 유일 자원이고 교육을 통해 그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우리의 살길이다.

그러나 우리 교육 현실은 어떤가. 보수, 진보 가릴 것 없이
정권만 잡으면 사교육과의 전쟁을 선포한다.

말만 전쟁이지 사교육비가 제대로 잡혔다는 얘기는 단 한 번도 들은 적 없다.

결국 공부를 덜해야 사교육비가 잡힌다는 짧은 생각으로 시험문제를 쉽게 내고 어려운 공부는 아예 시키지 않는다.

이래서 하향 평준화 교육이 된다. 외국어고가 사교육 시장의 근원이니 폐교를 하자고 덤벼든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겠다.

부자, 빈자 가릴 것 없이
몽땅 학교 급식을 하자는 좌파적 전교조 주장은 좌파적이지도 진보적이지도 않다.

사교육비 줄이자는 일념으로 시험을 쉽게 내고
외국어고 없애자는
일부 보수 우파의 주장 또한 우파적이지도 보수적이지도 않다.
둘 다 일시적 인기영합 포퓰리즘의 극치다.

교육 경쟁력이 나라 경쟁력이고 100년을 먹여 살릴 길이라면 그 답은 먼 데 있지 않다.

학생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교사가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교육의 미래가 달려 있다.

교사 경쟁력이 학생 경쟁력이다. 잘못된 급식 문제로 교육 현장을 호도하지 말라. 전교조 간판 뒤에 숨지 말고 밖으로 나와 교육 경쟁력을 위해 전교조 교사들이 힘을 합쳐야 우리 교육은 바로 설 수 있다.

교사들이 무상급식 타령이나 하며 세월을 낭비하고 있을 때 우리의 미래는 물 건너간다. 봄은 오지도 않았는데 봄날은 속절없이 가고 있듯.

권영빈 경기문화재단 대표·전 중앙일보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