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의 도
스포츠는 극본없는 드라마이다. 일반적으로 게임을 위한 팀의 감독과 선수들의 기량, 연습과정 등으로 승패를 예견한다. 하지만 일단 그라운드에 올라서면 환호하는 관중의 응원과 야유가 담긴 ‘관중효과’에 기(氣)가 사느냐 죽느냐, 기를 살리느냐 죽이느냐의 보이지 않는 에너지가 승패의 관건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드라마를 연출하느냐는 실로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해 (2007. 12.27) 서울 그랜드힐튼 호텔에서는 ‘2007 KFA 지도자 세미나’가 열렸다. 그 중에서 전 프랑스 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이었던 장 피에르 모흘랑(Jean-Pierre Morlans) 씨는 ‘세계축구의 흐름과 지도자의 철학’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한 바 있다.
그는 ‘현대 스포츠 지도자는 관리자의 역할 증가와 언론매체, 응원단, 관중, 스폰서 등 외부로부터의 압박 증가, 권위성의 감소, 경기 내용과 결과간의 조화가 요구된다.’라는 측면에서 세미나를 이끌었다. 즉, 과거의 지도자는 일반적인 트레이닝에 중점을 두고 팀을 조련했지만 지금은 음(音) 하나하나를 조화시켜 주는 작곡가(作曲家)와 지휘자(指揮者)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지도자의 큰 역할은 시민구단. 인천유나이티드의 장외룡 감독이 잘 보여준 사례이다. 패배의식이 짙게 배인 팀을 맡아 ‘플레이오프 진출’이라는 보이지 않는 목표를 이룬 것이다. 그는 상대팀을 철저히 분석해서 전략을 세워 그가 제시한 목표의 성과를 이루었다. 선수들과 감독이 절대적인 신뢰를 쌓아가는 모습은 영화 ‘비상’으로 승화될 만큼 참으로 극적이었다.
더불어 지도자는 자기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 이젠 이기는 것만이 전적으로 중요한 것이 아닌 사회가 된 것이다. 어떠한 전략과 경기력을 보였는가? 경기외적인 삶의 모습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사는가? 현 감독과 선수들에겐 큰 과제일 것이다. 선수 또한 미래의 지도자이기 때문이다. 지도자는 선수가, 선수는 팬들이 신뢰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도자, 선수 공히 철저한 자기관리가 필요한 것이다.
모처럼 허정무호에 승선한 모선수의 대표 팀 탈락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지난 해 대표팀 선수들의 파행과 국민들에 대한 사과는 이젠 우리 사회가 건강해진 것을 말하는 좋은 예라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들려오는 지도자의 파행적인 모습. 어떻게 자기가 지도하는 선수들을 성적(性的)으로 유린할 수 있는가? 과감히 스포츠계에서 퇴출시켜야 할 것이다.
여러 우여곡절(迂餘曲折) 끝에 대표 팀을 인수한 허정무 감독의 낭보는 큰 위로가 된다. 선택한 선수의 일탈로 인해 순항에 지장이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중국 충칭에서 14억 중국인들이 보는 상황. 1-2로 뒤진 상황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공격을 펼친 끝에 ‘한국 타도’를 외쳤던 중국에 다시 한 번 ‘공한증'(恐韓症)을 안긴 것이다. 많이 흔들렸을 선수들을 잘 다독거려 국민들에게 큰 희망을 준 허정무 감독이 고맙기만 하다. 지도자는 힘이 들지만 이런 맛에 또 내일을 사는 것이 아닐까■
칼럼니스트 김희수
<2008. 2. 19 중부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