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룰을 좀 지키자
어느덧 시간은 세미 자락에 도달했다. 한 해 동안 각 종목별 칼을 갈고 참가했던 올림픽도 끝냈고, 또 4년을 기다리게 되었다. 유행가 가사처럼 어떤 이는 웃고, 어떤 이는 울기도 했다. 올 한 해 가장 좋아서 크게 웃고 울었던 선수는 최민호(29.한국마사회)가 아닌가 생각된다.
며칠 전 매스컴에서 유도 금메달리스트 최민호 선수가 루드비히 파이셔(27.오스트리아)선수와 와락 끌어안고 있는 장면을 보았다. 정말 따뜻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그들이 그렇게 아름다워 보인 건 최민호 선수가 단지 승리를 한 것 때문만은 아니다. 너무나 멋있는 기술, 공정한 경기, 패자의 깨끗한 승복(承服). 삼박자가 잘 어울려졌기 때문이다.
어느 경기 룰과 매너가 필요하지 않은 경우는 없다. 그래도 참가자의 양심과 신의에 맡기는 경우가 많은 종목은 골프가 그중 하나이다. 참가자들의 동의만 있으면 얼마든지 잘못 쳐도 또 칠 수가 있고, 멀리에서 살짝 건드린 것은 본인만 알기 때문에 상대방의 눈을 속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다 강력한 신뢰가 필요한 경기라 할 수 있다. 주말 골퍼들의 경우 자기 타수보다 상대방의 타수에 보다 신경 쓰는 선수도 많다. 상대방이 룰을 어긴 것을 보면 다시는 안친다고 어깃장을 놓는 경우도 있다. 또 어떤 선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그날 경기를 한 후 룰을 어긴 상대와 연락을 끊는 이도 있다. 후자의 경우가 더 무서운 경우라 할 수 있다. 이래서 골프는 상대방의 심리와 성격을 한눈에 알 수 있는 냉정하고 섬세한 경기이기도 하다. 골프 여왕 미셀 위(위성미)도 룰을 위반해서 어이없게 실격된 사례도 있었으니 말이다. 뒤에도 눈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경기에 임해야 한다.
K3리그의 승부조작은 고질적인 한국축구의 문제이다. K리그의 승부조작설은 차범근 감독이 98년 당시 이미 언급한 바 있었기 때문에 낯설지 않다. 하지만 ‘그럴것이다’라는 추측이 ‘현실로 계속 반영되었다’라는 사실이 참으로 개탄할만한 일이다. 부패 스포츠계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한편 채널을 돌리면 야구계는 도박에 몸살이 나있다. 누구도 금전(金錢)의 달콤한 유혹을 이기기엔 벅찬가보다.
스포츠계가 이젠 자성해야 한다. 예(藝)와 기(技)는 본래 대중이 알아봐줘야 하고 그들 속에서 숨을 쉬어야 한다. 이젠 철저한 윤리의식이 싫다면 대중이 보지 않는 일을 하라고 권하고 싶다. 아니 대중의 눈에 띄지 않는 일을 해야 한다. 어떻게 배웠던 드리블이고 어떻게 이루어냈던 승리인가 말이다. 하루저녁의 도박과 마약 등의 ‘룰의 일탈’이 모든 것을 거품이 되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대중 속에서 오래가는 선수, 연예인을 지켜봐라 그들 속에는 철학이 있고, 당당한 자존심이 있으며, 철저한 윤리의식이 있다.
이젠 유소년 시기부터 승부에 집착하는 ‘승리하면 그만이다’ 라는 지도보단 ‘얼마나 룰을 지키며 열심히 했는가’에 대한 지도가 필요하다■
김희수 칼럼니스트
<2008. 12. 2 중부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