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조작, 인성교육으로 막자
국민적 사랑을 받고 있는 프로스포츠가 승부조작으로 망신창이가 됐다. 지난해 프로축구 승부조작으로 홍역을 치렀던 프로스포츠는 올해 들어 배구와 야구까지 전방위서 승부조작이 이뤄졌다.
이 같은 행위는 사회구조와 시스템적인 측면 등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으리란 생각이다. 문제는 선수 본인이 승부조작에 최종적으로 결정을 내리고 참여했다는 점이다. 승부조작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고 불법인지를 인식하지 못하고 유혹에 쉽게 빠진다는 것에서 선수들의 도덕적 불감증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케 한다.
사실 선수들은 운동을 시작하면 상대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고, 일반 학생들이 학교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사회규범보다 운동부 내에 존재하는 별도의 관습에 더 순치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상명하복, 성적 지상주의, 구타 등등 운동부 하면 쉽게 떠오르는 단어들에 자신도 모르게 익숙해진다.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유소년 시기에 운동을 시작한 선수들에게는 처음 만난 지도자가 인생에 상당한 영향을 주게 된다.
이로 인해 지도자들은 운동뿐만 아니라 인성교육도 병행시켜야 한다. 하지만 우리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다반사다. 아직도 많은 지도자들은 인성교육은 별개이고, 경기력 향상을 위한 운동기술만을 가르치고 있다는 데서 승부조작 같은 엄청난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선수들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어려서부터 승부조작에 한두 번 가담한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 당시의 승부조작은 지도자 지시에 의해서 상대팀에 져주기 시합을 한 경우다. 엘리트체육의 고질적인 병폐인 성적지상주의가 낳은 부작용으로, 대학 등 상급학교 진학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지도자 간 담합에 의해 승부를 결정하기도 한다.
이 같은 예는 2010년 프로축구 유스클럽팀이 참가하는 챌린지리그에서도 자행돼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양팀 감독은 부인했지만 통화기록, 문자메시지 등을 확보한 대한축구협회가 양팀 감독에게 무기한 자격정지 징계를 내린 경우도 있다. 이렇듯 감독의 지시에 의해 승부조작을 했던 선수들이 성인이 됐다고 해서 그 행동이 나쁜 것이라고 판단하는 경우가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제도적인 장치로는 부정의 싹을 근원적으로 막기도 힘든 현실에서 지도자들이 앞장서 승부조작을 지시했다는 점에서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있는 것이다.
스포츠 선수들의 경우 우수한 선수라는 평가는 받지만 왜 훌륭한 선수라는 평가는 받지 못하는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기술적인 면에서는 뛰어나지만 인간성과 사회성 등 전체적인 면에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일부 선수들의 경우 뛰어난 기량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돌발적인 행동으로 구설수에 오르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런 경우는 개인적인 성품의 차이도 있겠지만 인성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영향이 더욱 컸으리라는 판단이다.
어느 분야보다 정정당당하고 공정성이 확보돼야 하는 스포츠계를 바라보는 국민적 시각을 살펴보면 심각성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최근 모 방송이 ‘프로스포츠의 검은손, 승부조작 선수 영구제명 논란’이라는 주제의 토론회에 앞서 전국 19세 이상 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수사기관에서 밝힌 것보다 많은 경기서 이루어지고 있다’라는 답변이 58.7%를 차지하는 등 99.4%가 일부라도 승부조작이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라는 답변은 0.6%에 그쳤다. 이 같은 결과는 충격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흔히 스포츠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말하기도 한다. 약팀이 강팀에 승리하는 카타르시스 등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가 도출될 때 느끼는 극적인 쾌감은 스포츠만이 제공할 수 있다.
하지만 승부조작이 만연된 상황에서도 스포츠만이 느낄 수 있는 희열이 지속될 수 있을지는 의문시된다. 한때 최고 인기를 누렸던 프로레슬링의 경우 각본에 의해 경기를 하는 것이라고 알려지면서 국민들이 등을 돌렸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급기야 정부에서도 올해 안에 공정한 스포츠 환경을 구축하겠다며 유관기관과 세부계획을 수립, 시행하겠다고 나섰다. 불법사이트 차단, 암행감찰제, 상벌규정 개정, 학교 운동부 투명성 확보, 학교운동부 지도자의 직무교육 등 의지를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제도적인 뒷받침보다 행위자가 될 수 있는 선수들이 운동에 입문할 때 풍부한 인성교육을 통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사회적 규범에 충실할 수 있는 선수로 육성되는 것이 무엇보다 선행돼야 한다.
<중부일보 2012. 3. 22>
오창원 중부일보 문화체육부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