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은 知力이다.
(세계적 ‘비즈니스 스승’ 노나카 이쿠지로)
(조선일보 2008.7.5)
“감각적 지식 ↔ 체계적 매뉴얼, 현장에선 소용돌이치며 상호 작용,이것이 ‘지식창조’ 프로세스입니다”
노나카 이쿠지로 교수는 지식 경영의 대가이며 ‘일본의 피터 드러커’로 통한다. 도쿄 출신으로 와세다대(정경학부)를 나와 미국 UC버클리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6년 발간한 ‘지식창조기업’은 피터 드러커(Drucker)의 극찬을 받으며 전미(全美) 최고저술상을 수상했다. 20여권의 저서가 있으며 ‘1위의 패러다임'(2004)이란 책이 한국에 출간된 이후 국내 기업 임직원들이 책에 등장하는 기업을 방문해 벤치마킹 하는 열풍이 불기도 했다. 현재 히토쓰바시대학 명예교수 및 UC버클리 지식학부 연구위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굳이 첨단 공장까지 찾아갈 필요 없다.
일본이 왜 강한지 알려면 380엔짜리 고기덮밥집 요시노야(吉野家)에 앉아 종업원을 살펴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① 손님이 있든 없든 쉬지 않고 일하는 종업원의 지독한 직업 윤리
② 종업원이 빠르게 움직일 수 있도록 짜여진 공간의 극단적 합리성
⇒ 각각 모티베이션(동기)과 이노베이션(혁신)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도요타, 혼다, 샤프의 첨단공장에서 목격할 수 있는 것도 이 두 광경으로 압축된다. 1960년대 일본이 선진국에 진입한 것도, 2000년대 장기 불황에서 탈출한 것도 모두 여기서 출발했다.
일본은 현장이 강한 나라다.
달리 말하면, 현장에서 일하는 중간 관리자에서 말단 근로자까지의 ‘허리 아래’ 하체(下體)가 세계 최강인 나라가 일본이다. ‘가이젠(改善)’을 중심으로 한 도요타 생산방식도 현장의 개미 노동자들의 지혜를 최대한 짜내 혁신을 일으키는 시스템에 다름 아니다.
노나카 이쿠지로(野中郁次郞·71) 일본 히토쓰바시(一橋)대 명예교수는 이런 현장 시스템을 “암묵지(暗默知)와 형식지(形式知)의 소용돌이 치는 상호작용”이라고 묘사하고 ‘지식창조’라는 이론으로 개념화했다.
여기서 암묵지란 표현하기 힘든 주관적·직관적 지식, 형식지는 표현할 수 있는 체계적·논리적 지식을 말한다.
그는 지난 5월 월스트리트저널에 의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비즈니스 구루(사상적 지도자) 20명에 꼽혔다. 동양인으로 유일하다. 높은 평가를 받은 이유에 대해, 그는 “일반에 알려진 것보다 일본적 경영 방식이 세계로 보급됐다는 것을 뜻하지 않을까 한다”라고 말했다. 도쿄에 있는 히토쓰바시대학원 국제기업전략연구과 연구실에서 그를 만났다.
– 일본적 경영이란?
“앵글로색슨 경영에선 기업을 ‘모노(物·일본어로 물건)’라고 생각하는 전통이 강하다. 기업을 매각, 합병, 해체가 자유롭게 가능한 ‘돈벌이 장치’로 간주한다. 말하자면 기업은 ‘머니 메이킹 머신(돈 만드는 기계)’이다.
하지만 일본의 생각은 다르다. 일본에서 기업은 ‘고토(事·일본어로 현상)’다. 영어로 ‘이벤트(event)’에 해당하는 말이다. 모든 현상이 그렇듯 기업은 한순간도 정체하지 않고 움직인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는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처럼 ‘만물 유전(流轉)’의 다이내믹한 프로세스 안에서 기업은 움직인다. 전통적 일본 경영은 이런 원리를 중시하는 사고에서 출발했다.
우리가 주장하는 ‘지식창조’ 이론이란 프로세스 이론이다. 프로세스는 인간과 인간의 상호작용, 관계성이다. 따라서 ‘인간이야말로 경영의 기본이 돼야 한다’고 우리는 주장한다. ‘모티베이션(동기)’이라든가, ‘코미트먼트(참여)’라든가.”
– 앵글로색슨형은 한계를 맞았나?
“엔론에서 서브프라임까지. 실제로 차례차례 ‘머니 메이킹 머신’이 파탄을 맞고 있다.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경영이란 애당초 앵글로색슨 경영에서는 나타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 일본적 경영만으로 일본이 장기불황에서 탈출했다고 보나?
“이코노미스트(영국 경제주간지)의 평가를 인용하고 싶다. 작년 11월 일본기업 특집에서 ‘일본 기업이 전통적 가치관을 소중히 간직하면서 앵글로색슨의 경영 수법을 융합하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하이브리드(混成)형 경영’이라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일본 기업의 지배구조와 고용구조를 취재한 뒤 기존 앵글로색슨형 기업경영을 근본에서 변화시킬 새로운 패러다임이 (일본에서) 생성될 수 있다고 했다.”
– 1990년대 중반 세계적으로 ‘일본 배싱(bashing·격렬한 비판)’이 유행할 때도, 저서를 통해 “일본 경제가 반드시 위기를 극복할 것이라고 단언했는데?(‘지식창조 기업’, 1996년)>
“일본 기업이 인간, 즉 종업원을 중시하는 경영의 원점을 지켜 나가면서 ‘머니 메이킹 머신’의 장점 일부를 수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각각의 장점을 양립시킨 것이다. 양립시키지 않았으면 일본 기업은 한계를 극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 일본이 받아들인 앵글로색슨의 장점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위원회, 사외이사 등 기업 지배구조의 투명성 장치, 그리고 성과주의다.”
– 일본 기업의 혁신은 어디서 비롯될까?
노나카 이쿠지로(野中郁次郞·71) 히토쓰바시(一橋)대 명예교수는 현장에서 미들매니저(중간관리자)의 ‘미들 업다운(middle up-down) 리더십’에서 창조된다고 단언한다. 중간관리자가 경영자는 물론, 근로자와의 끊임없는 대화와 실천을 통해 암묵지를 형식지로 체계화함으로써 이노베이션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 중간관리자는 혁신의 주역
– 지식창조 이론은 암묵지와 형식지의 ‘소용돌이 모델(SECI 모델)’을 기본 틀로 하고 있다. 간단히 설명해 달라.
“근로자는 현장의 직접 체험을 통해 감각적인 지식을 갖게 된다. 이것을 ‘암묵지(暗默知)’라고 한다. 표현하기 힘든 직관이지만 대화하면 개념화가 가능하다. 이것을 매뉴얼로 만들 수 있는 단계에서 암묵지는 형식지(形式知)로 탈바꿈한다. 여기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매뉴얼을 통해 형식지를 현장에서 실천하는 과정에서 다시 근로자에겐 암묵지가 형성된다. 이 프로세스가 소용돌이처럼 반복되면서(spiral-up) 지식이 창조되는 것이다. 경영자와 근로자의 사이에서 이것을 주도하는 존재가 미들매니저다. 영미식 경영에선 미들매니저를, 가운데에서 혁신을 방해하는 층으로 간주하지만, 일본식 경영에선 반대다.”
– 지식에 대한 전통적인 평등의식, 일본의 ‘지식 민주주의’가 역할을 하는 듯하다.
“우리는 그런 전통을 ‘디스트리뷰티드 리더십(distributed leadership)’이라고 부른다. 리더십이 카리스마에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아래 중간관리자로 폭넓게 분산되는 형태다. (독재적인) ‘톱다운(top-down)’도 아니고, (민주적인) ‘바텀업(bottom-up)’도 아니다. 메이지(明治)유신의 사무라이야말로 혁신적인 중간관리자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해외 열강의 지식을 배우고, ‘서구를 따라잡겠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목표를 실천한 것이 미들매니저인 사무라이였다.”
■ 끝없는 반복을 통한 창조
– 일본 근로자는 왜 이렇게 열심히 일하나?
“일본도 사농공상(士農工商)이란 계급이 있었다. 하지만 계급에 상관없이 공통적으로 실천해야 하는 ‘시쓰케’라는 완고한 범절이 있었다. ‘수(守)·파(破)·리(離)’라는 말이 있다. ‘남에게 배우고, 배우면서 배운 것을 파괴하고, 결국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변증법적 길이다. 해외에서 배우고 국가 이상을 세우고 결국 혁명을 완성한 사무라이처럼. 완전성이랄까, 진선미(眞善美)랄까…. 목표를 향해 ‘무한(無限)의 실천’을 해나가는 태도다. 이런 모습은 ‘크리에이티브 루틴(creative routine)’이라고 말할 수 있다. ‘판에 박힌 일상을 반복하지만 창조적’이라는, 다소 역설적인 뜻이다. 같은 일을 일생 반복하면서 ‘다쓰징(達人)’의 경지에 오르는 일본의 ‘쇼쿠닌(職人)’을 생각하면 개념이 잡힐 것이다. 이런 윤리관은 일부가 선불교, 일부는 예도(藝道)에서 나온 듯하다.”
– 그런 윤리관이 일본의 선진국 진입 과정에서도 역할을 한 듯하다.
“기본적으로는 도제(徒弟) 제도다. 뛰어난 사람을 모범으로 삼아 그와 같은 공간에서 공체험(共體驗)을 하면서, 무념무상으로 자신의 지식을 갈고 닦는 것. 이것을 ‘암묵지적 실천’이라고 말하고 싶다. 뛰어난 사람의 암묵지를 터득할 때까지 옆에서 직관으로 배우는 것이다. 전후에 달라진 점이 있다면 ‘과학적 방법론’이 적용돼 암묵지를 형식지로 전환하는 비율이 늘었다는 점이다. 암묵지의 공동 체험과 매뉴얼화가 전후 일본 경영의 기본이 아닐까 한다.”
■ 일본 경제의 미묘한 균형
– 일본은 근대화(메이지유신)와 현대화(선진국 진입)의 대성공 사이에 ‘패전(敗戰)’이라는 대실패가 있었다. 1984년 저서 ‘실패의 본질’에서 당시 일본이 ‘조직적 결함’을 안고 있었다고 지적했는데?
“일본처럼 리더십이 분산된 조직에선 서로 대화하고 실천하는 상호 작용이 매우 중요하다. 패전 당시 일본은 국가적으로 상호 작용이 극히 약한 조직이었다. 환경이 격변했음에도 과거의 성공 체험(러·일전쟁과 중·일전쟁)을 진리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과거의 가치관을 고집하면서 논리성과 합리성을 잃고 정신력에 극단적으로 의존한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성공 체험에 대한 ‘과잉 적응’이라고 부른다. 패전 후 ‘적어도’ 일본 기업은 이런 국가의 실패 모형을 근본적으로 반성했다. ‘서구를 이기자’는 목표는 같았지만, 전후는 앵글로색슨의 논리적, 합리적, 과학적 방법론을 받아들인 것이 달랐다.”
– 기업은 성공했지만, 1990년대 이후 장기불황으로 국가는 또 실패했는데?
“정부와 기업은 유기적인 관계를 이뤄야 한다. 서로 ‘지식의 에코시스템(생태계)’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유기적인 균형을 유지하면, ‘호송선단 방식(護送船團·정부가 앞장 서서 시장을 이끄는 발전 모델)’도 문제될 것이 없다. 정부 만능도 안되듯이 시장 만능도 안된다. 최근의 시장 원리주의 폐해를 바로잡을 수 있는 것도 정부뿐이다. 1990년대 호송선단 방식의 실패는 정부와 기업이 유착해서 시장과 소비자를 무시하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 장기 불황을 끝낸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2001~2006년 재임) 총리의 개혁은 시장원리주의에 가깝다.
“규제 완화를 중심으로 한 고이즈미 구조개혁은 일본 경제에 앵글로색슨의 합리주의를 도입한 것을 뜻한다. 이코노미스트가 평가한 일본의 ‘하이브리드 경영’은 고이즈미 개혁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시장 원리를 적용하면 최근 펀드자본주의처럼 다양한 폐해를 낳는다. 단기적 성과에 의존하는 것도 중장기적 이노베이션을 가로막는다.”
– 지금 일본 경제는?
“(일본적 경영과 앵글로색슨적 경영이) 미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 실천적 지혜와 리더십
– 도요타에선 한 조직에서 생각해낸 개선점을 다른 조직으로 확산하는 작업을 ‘요코텡(橫展)’이라고 하는데, 요코텡의 해외 전개가 힘든 모양이다?
“암묵지를 형식화하는 것이 ‘매뉴얼화’다. 일본과 해외 공장이 같은 생산성을 유지하는 데에는 현장의 지혜를 최대한 매뉴얼로 집대성해 전파하는 것이 열쇠다. 하지만 암묵지를 모두 확산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매뉴얼화할 수 없는 높은 질의 암묵지는 그 자체로 전승하고 전파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현장의 공동 체험과 끝없는 실천을 매개로 사람과 사람을 통해 지식을 확산하는 방법, 즉 ‘사람 만들기’밖에 없다.
세계 기업들이 저마다 배우려고 하는 ‘도요타웨이(Toyota-way)’란 ‘매뉴얼 만들기’와 ‘사람 만들기’를 극단까지 밀어붙이면서 상호 작용시키는 것이다. 도요타와 관련된 수많은 책이 나오고 있지만 모든 기업이 이를 적용하지 못하는 것도 ‘사람 만들기’를 흉내낼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 리더의 조건은?
“리더십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어떻게 균형 있게 판단하는가의 능력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프로네시스(phronesis)’. 실천적 지혜(practical wisdom)나 현려(賢慮·prudence)로 번역되는데, 공통의 선(善)을 목표로 판단하고 적절하게 행동하는 능력을 말한다. 경영자는 ‘같은 것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는’ 프로세스 한복판에서 다양한 조건들을 고려해 최고의 판단을 내놓아야 한다. 아주 높은 질의 암묵지를 요구 받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카리스마와 톱 매니지먼트를 고집하는 것은 변화가 격렬한 요즘 같은 시대엔 통용될 수 없다. 실천적 지혜를 독점해선 안 된다. 조직의 적재적소에 실천적 지혜를 가진 복수의 리더가 존재하는 것이 강한 기업의 성공 비법이다.”
– 실천적 지혜란?
“선한 것을 판단하는 능력, 지식을 창조하는 장(場)을 만드는 능력, 본질을 터득하는 능력, 터득한 것을 콘셉트화하는 능력, 콘셉트를 실현하는 능력, 이 모든 실천적 지혜를 전승하고 육성하는 능력을 말한다.”
– 혼다자동차의 창업자 혼다 소이치로(本田宗一郞)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실천적 지혜를 발휘한 전형을 보여준 경영자였다. 혼다는 무엇보다 기업 경영에서 선악(善惡)을 분명히 구분했다. ‘돈과 기술은 인간에 봉사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인간을 근본으로 하지 않은 기술은 의미가 없다’ ‘진정한 기술은 철학의 결정(結晶)이다’라고 말했다. 기술자 출신인 혼다는 현장의 최전선에서 현장을 직관적으로 보고 콘셉트를 잡고 구체화하는 능력도 대단했다. 가장 일본적인 경영자라고 할 수 있다.”
– 우연인지 몰라도 일본에선 산요의 이우에 사토시(井植敏), 세이부의 쓰쓰미 요시아키(堤義明)를 끝으로 오너십을 기반으로 한 카리스마 경영자가 대부분 몰락했는데?
“피터 드러커도 경영자의 카리스마를 부정했다. 톱다운 매니지먼트보다 고결과 정직을 기반으로 한 리더를 중시했다. 내 가설이지만 피터 드러커의 이론은 일본에서 실현된 것이 더 많지 않을까 싶다. 아무리 뛰어난 능력이라도 한계가 있다. ‘복안력(複眼力)’이란 말이 있다. 여러 관점에서 다양하게 보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