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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최선을 다하라-거기서 약간만 더 하라!
작성자
시한부 삶
작성일
2009/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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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없음

6개월 시한부 삶’ 기적을 만들었다 [중앙일보] 올림픽 출전 앞두고 암 발병 …

“최선 다하라…약간만 더 하라”

아이들 가르치며 절망과 싸움 … 못다 이룬 꿈 제자들이 이어 마지막 질주
권영섭 지음, 사과나무, 272쪽, 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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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을 다한 사람을 1등 한 사람과 똑같이 대하는 교사가 몇이나 될까.

다리의 골결핵으로 걸을 수조차 없어 휠체어를 탄 학생을 ‘호루라기 부는 책임자’로 임명해 육상팀원으로 포용하는 체육교사는. 학교명을 세상을 떠난 선생의 이름을 따 고치는 데 학부모 전원이 찬성한 경우는.

존 베이커. 1944년 미국 뉴멕시코 주 앨버커키의 만자노 고교 시절 달리기를 시작했다. 체격조건은 뛰어나지 않았다. 친구 덕에 고교 육상팀에 들어갔을 정도였다. 타고난 승부근성 덕에 크로스컨트리 경기 성적은 좋았다. 3학년 때는 주내에서 가장 잘 달리는 선수가 되었다. 전성기엔 ‘무적’으로 불릴 정도였다. 대학 진학 후 1마일(1600미터) 경주에 집중하면서 승승장구했고 마침내 올림픽 출전이 유력해졌다.

영광은 거기까지였다.

69년 에스펜 초등학교 체육선생으로 있으면서 올림픽에 대비한 훈련을 하던 중 복부에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끼고 쓰러졌다. 악성 고환암이었다.

암세포 전이가 상당히 진행돼 6개월밖에 살지 못한다는 진단이 나왔다. 몇 차례 수술을 받았지만 18개월간 더 살았을 뿐이다. 그의 나이 26세였다. 그러니 특별히 내세울 것 없는 젊은이었고 불운한 육상선수였다. 올림픽 금메달을 딴 것도, 세계신기록을 세운 것도 아니니 말이다. 그런데 그의 짧은 삶이 사람을 울린다. 한창 나이에 요절해서가 아니다.

최선을 다한 삶, 독특한 교육방법, 아이들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 때문이다.

그는 성실했고 하고자 하는 일에 전력을 다했다.

62년 대학에 진학해서는 지독한 연습벌레로 불렸다. 지역신문에 “사막에서 빠른 물체가 지나가면 UFO인 줄 알고 놀라지 마라. 사냥을 한다면 개를 꼭 잡고 총을 함부로 쏘지 마라. 베이커의 연습일 뿐이다”란 기사가 실릴 정도였다.

암 판정 후 절망에 빠진 그는 근처 산의 낭떠러지로 차를 몰고 갔다.

자살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는 돌아섰다.

자신이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해라. 결승점에 도달하기 전에는 절대로 포기하거나 주저앉으면 안 된다”고 했던 가르침이 떠올라서였다. 그리고 “남은 생이 얼마든 나의 소중한 아이들을 위해 바치겠다. 병과 한 번 싸워 보겠다”고 결심한다.

학교로 돌아간 그는 교육방침을 바꿨다.

직접 리본을 만들어 최고로 잘한 사람, 최선을 다한 사람 모두에게 달아줬다.

또 기관지염 탓에 달리기를 포기한 학생, 팔에 장애가 있는 학생 등을 ‘트랙담당 부코치’ ‘공식 장비관리자’로 임명하는 등 아이들에게 여러 가지 직책을 맡기고 스스로 하는 법을 가르쳤다.

“최선을 다하면 모두 챔피언이 될 수 있다”고 가르쳤던 존 베이커의 역주 모습(오른쪽 사진). 뉴멕시코 주립대의 육상팀 ‘로보’의 전성기를 일궜던 멤버들(맨 왼쪽이 존 베이커). [사과나무 제공]

베이커에게 달리기의 목적은 메달을 따고 기록을 경신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학부모들에게

“힘든 일을 하는 것,

실패를 경험해 보는 것,

다시 한 번 시도하는 것,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것 등

삶을 헤쳐나가는 방법을 배우는 곳이고

모든 것을 통해 긍정적인 삶을 배우는 것이 육상팀의 목적”이라고 밝혔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베이커는 듀크시(앨버커키의 별칭)의 연합 육상클럽인 ‘듀크시의 질주자들’의 코치가 되었다. 얼마 남지 않은 생에 최대한 많은 아이들과 함께 하기를 원해서였다.

8~13세의 여학생 선수들에게

“항상 최선을 다해라. 거기에 약간만 더해라”

“중요한 것은 이기는 것이 아니다.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오늘 빼먹은 훈련 날은 다시 오지 않는다” 고 강조했다.

“우리가 우리를 존중하고

서로 사랑하고 격려하며

우리의 일에 최선을 다한다면 우리 모두가 챔피언”이란 것이 그의 가르침이었다.

중이염 후유증으로 제대로 걷지도 못하던 스테파니란 어린이가 어엿한 육상선수로 성장한 것도 베이커와의 만남 덕분이었다.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 정신을 흐릿하게 만드는 진통제 맞기를 거부하며 마지막까지 버티던 그는 1970년 11월 세상을 떠났다. 세인트루이스에서 열린 전국육상대회에 참가한 제자들이 “코치 베이커를 위하여” 안간힘을 다하던 중이었다.

때로는 실화가 소설이나 영화보다 힘이 세다는 사실을 실감케 하는 책이다.

베이커 이야기는 다른 책에 짤막하게 소개된 바 있지만 이 책은 우연히 베이커의 대학후배가 된 한국의 체육학도가 온전히 새로 쓴 것이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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