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탕-재탕’ 강의 사라지고 있다
지난해 국내 대학 가운데 처음으로 강의평가 결과를 실명 공개한 동국대의 강의 모습. 사진 제공 동국대
■동국대-한양대 강의 평가 공개…달라진대학가
5분 늦게 시작 5분 일찍 끝… 10년 전 강의록으로 앵무새 수업…
“학점 짜면 낮은 점수” 강의 평가 전면공개 신중론도
“내 성적이 적나라하게 공개되기 때문에 강의 준비로 인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난 학기에는 강의를 학생들 눈높이에 맞추려고 파워포인트 등 시청각 교재를 최대한 동원했다.”(한양대 교수 A 씨)
대학가에 교수 강의평가제가 정착되면서 교수들이 긴장하고 있다. 몇 년씩 묵은 노트로 강의하거나 휴강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것은 옛일이 됐다.
강의평가가 엄격하다는 평을 받고 있는 한양대는 매 학기 말에 학생들이 강의별로 강의내용, 교수 태도 등을 평가한다. 100점 만점에 위부터 5점 단위로 A+부터 F까지 매긴 점수를 취합해 교수들에게 통보한다. 교수들은 자기 강의가 전체 대학, 단과대, 학과(학부)에서 몇 위인지 확인이 가능하다.
한양대는 강의평가에서 상위 50%에 속하는 우수 강의를 교수의 실명과 함께 인터넷에 공개한다. 우수 교수에게는 ‘베스트 티처’ 상을 주고 인터넷상의 ‘명예의 전당’에 명단을 공개한다. 한양대 학사과 관계자는 “평가 결과를 자꾸 공개하고 경쟁을 유도해야 교수들도 좋은 강의를 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올해 한양대는 강의평가와 교육활동 등을 종합해 최상위 10%에 든 교수에게 300만 원, 다음 20%는 200만 원, 그 다음 10%는 100만 원씩의 인센티브도 지급하기 위해 10억 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1년 전 국내 대학 최초로 강의평가 결과를 공개한 동국대 교수들도 긴장하기는 마찬가지. 동국대는 학기 중에 3번의 강의평가를 실시한 결과를 종합해 학기 말에 강의별로 점수를 매긴다. 학생들은 다음 학기 수강신청을 앞두고 학교 홈페이지에서 교수의 이름을 클릭하는 것만으로 해당 교수의 이전 학기 평가 결과를 ‘Excellent, Good, Common, Poor’ 등 4단계로 확인할 수 있다.
동국대의 한 교수는 “제자들의 평가가 부담스럽지만 성과평가나 승진에 반영되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며 “후배 교수들에게 폼을 잡던 시대는 갔다”고 말했다.
4학년 김모 씨(23·여)는 “예전엔 강의에 5분 늦게 들어왔다가 5분 일찍 나가던 교수님이 평가 결과 공개 이후 확실히 달라졌다”며 “지각이나 휴강도 없어지고 교수님들이 강의를 재미있게 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동국대가 지난해 학생 1374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94.1%는 강의평가 결과 공개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외부기관에 의뢰해 실시한 만족도 조사에서는 공개 이전보다 ‘교수의 관심도’는 10.2점, ‘교수와의 상담기회’는 9.7점이 올랐다.
동국대 김선정 교수(법학)는 “평가 결과가 공개되면서 강의 방식이나 학생들의 이해도를 더 꼼꼼히 체크하게 됐다”며 “외부 행사나 해외 학술대회 참석도 학기 중엔 가급적 피하게 되는 등 강의에 충실해졌다”고 말했다.
중앙대는 강의평가에서 일정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 교원에게 통지를 하고, 비전임교수가 기준에 3회 이상 미달하면 이후 강사 위촉을 제한한다.
서강대는 평가 결과를 교수평가나 재임용 심사에 반영한다. 학과나 단과대가 정한 기준에 들지 못한 비전임 교원은 재임용에서 탈락시킨다는 것이 서강대의 방침.
대학가에 강의평가제가 확산되고 있지만 평가 결과의 전면 공개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대학이 신중한 모습이다. 주된 이유는 학생들의 평가에 대한 교수 사회의 불신이다.
명지대 김대원 교수(정보공학)는 “수업 관리를 조금만 엄격히 하고 학점이 짜지면 강의평가 때 낮은 점수를 받기 일쑤”라며 “교수들이 학생들의 평가 태도를 신뢰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교수들이 납득할 만한 효과적인 평가 방법이 뭔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우정열 기자 passi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