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위험은 감수… ‘60% 즉결주의’로 과감히 승부”도쿄=백승재 기자 whitesj@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기사 100자평(0) 입력 : 2009.07.24 16:00 / 수정 : 2009.07.24 16:06
시세이도의 ‘예술경영’ 이끄는 마에다 신조 사장
미국 최고의 디자인 스쿨로 꼽히는 RISD(로드아일랜드 디자인 스쿨)의 존 마에다 총장은 지난 4일자 Weekly BIZ와의 인터뷰에서 “독창성과 예술성의 잡종 교배야말로, 기술 수준이 평평해진 이 시대의 가장 강력한 신무기”라고 말했다.
일본의 세계적인 화장품 회사 시세이도(資生堂)는 마에다 총장의 말을 실증하는 좋은 사례다. 일본 도쿄 시오도메의 시세이도 본사에서 만난 마에다 신조(前田新造·사진) 사장은 시세이도의 저력이 “아름다움과 예술에 대한 고집”에서 비롯됐으며, 시세이도의 정신은 “동양과 서양의 장점을 합하고 ‘오리지널’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세이도는 1872년 설립된 서양식 약국이 모체였다. 아버지가 창업한 이 약국을 1915년 화장품 회사로 바꾼 후쿠하라 신조(福原信三) 시세이도 초대 사장은 예술을 경쟁력의 원천으로 삼는 시세이도의 전통을 만들어냈다. 그는 스스로 파리에서 미술과 사진을 배웠고, 직원들과 함께 서양을 돌며 견문을 넓혔다. 그는 일본 기업으로서는 처음으로 디자인 부서(의장부)를 만들고 시세이도의 상징문양인 하나츠바키<왼쪽 사진>를 도안했다. 1919년에는 도쿄 긴자의 명소가 된 갤러리와 레스토랑을 지었다. 그 결과 시세이도의 디자이너들은 서양의 아르누보(자연에서 소재를 얻은 문양이 특징인 19세기 말·20세기 초 미술 사조)와 동양적인 감성을 결합한 독특한 ‘시세이도 스타일’을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시세이도는 디자인 경쟁력을 경영의 핵심으로 여긴다. 예를 들면 시세이도의 디자이너는 입사 후 1년 동안 글씨 쓰기를 새로 배운다. 시세이도에서만 사용하는 독특한 서체를 어떤 디자인에서건 익숙하게 쓰도록 연습시키는 것이다. 디자인 아웃소싱은 거의 없으며, 대부분의 디자인 노하우는 1대 1로 도제식으로 전승된다. 이 같은 전통에서 야마나 아야오, 마쓰나가 신, 나카무라 마코토 등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이 탄생했다. 시세이도 디자인 부서의 입사 경쟁률은 800대 1이 넘는다.
시세이도는 예술과 디자인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아시아에서는 드물게 ‘아름다움’을 세계화하는 데 성공했다. 해외 매출 비중이 계속 늘어 작년엔 37.8%에 달했다. 국내 1위 화장품 기업인 아모레퍼시픽이 최근 선전하고 있지만, 해외 매출 비중은 11% 정도이다. 시세이도는 유럽, 미국은 물론 중국 등 신흥시장에도 진출해 있으며, 세계적으로는 대리점이 2만5000여개에 달한다. 경쟁 업체인 가네보가 2004년 일본의 장기 경기침체를 이기지 못하고 도산한 것과 대조적이다.
마에다 신조(前田新造·62) 시세이도 사장은 날렵한 선의 정장에 하얀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빗어 넘긴 단정한 모습이었다. 직원 시절 시장 개척을 위해 수십 차례 한국을 드나든 ‘한국 전문가’답게, “안녕하세요”가 그의 첫 인사였다. 꼿꼿한 자세에 엷은 미소로 상대를 경청하며, 엷은 스킨로션 냄새를 풍기는 그를 마주하고 있으니 신사(紳士)라는 말의 의미가 새삼 와 닿았다.
세계적인 경영 석학 데이비드 아커(Aaker)가 쓴 책 ‘브랜드 리더십’에 따르면, 시세이도 스킨케어 제품이 소비자들에게 연상시키는 브랜드 이미지는 화장품 회사로는 이례적으로 ‘혁신’으로 돼 있다. 아모레 퍼시픽 부사장 출신인 이해선 CJ오쇼핑 사장에게 시세이도의 경영에 대한 평가를 부탁하자 “가끔 부진하다가도, 혁신과 현지화로 성장을 이뤄내는 회사”라고 정리해줬다. 시세이도의 2대 사장을 지낸 후쿠하라 요시하루(福原義春) 명예회장은 “혁신이 없으면 전통도 없다”며 “혁신을 통해 전통을 바꿔나가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현 사장인 마에다 신조의 2005년 사장 선임 자체가 일본 재계에서는 혁신적인 인사로 화제가 됐다. 당시 회사의 성장이 정체 기미를 보이자 시세이도는 경영기획실장이던 그를 사장으로 발탁했다. 오너 가문이 아니었을 뿐 아니라 무려 14명의 선배를 뛰어넘은 인사였다.
그는 부임하자마자 현장 중심 개혁에 착수했다. 그는 자신의 경영 방침으로 ‘60% 즉결주의’를 내걸었다. 60%의 확률로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40%의 위험이 있어도 바로 실행에 옮긴다는 것이다. “상품을 파는 것은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100%의 안전성을 추구한다면 상품을 팔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따라서 60%의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면 망설이지 않고 실행에 옮겨야 합니다. 물론 그런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시대 조류의 본질을 확실하게 파악해 둬야겠지요.”
100개가 넘던 시세이도의 브랜드를 핵심 6개 브랜드로 줄인 결정도 ‘60% 즉결주의’에서 나왔다. 너무 많은 브랜드는 인건비와 판촉비 부담으로 회사에 짐이 되고 있다고 본 것이다. 그의 결정에 이해관계가 걸린 사업부들은 반발했고, ‘사장의 독단’이라는 이메일도 날아왔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밀어붙인 브랜드 통합의 효과는 확연했다. 츠바키(샴푸)나 마키아주(메이크업)처럼 핵심 브랜드에 마케팅 비용이 집중되면서 분야별 1위로 올라섰다.
그는 판매사원(뷰티 컨설턴트)의 평가척도에서 ‘매출’ 항목을 없앤 것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그는 대신 고객이 판매사원의 서비스에 대해 평가한 앙케트 엽서를 평가척도에 넣었다. “판매사원은 고객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지만, 그들의 활동이 매출 목표 달성에 얽매이게 되면 고객의 만족감은 소홀하게 생각하기 쉽다는 판단에서였죠. 매출 목표라는 건 사원이 마음에서부터 고객이 아름다워지길 바라고 그 열의가 고객에게 전해짐으로써 고객이 계속 시세이도를 방문하게 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도달되는 것입니다.”
그가 매출 목표 철폐를 결심했을 때 사내에선 모두 불안해했다. 판매사원들이 게으름을 피우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정반대였다. “매출 목표는 한번 달성한 뒤에는 대충 달려가면 된다는 마음이 됩니다. 그러나 고객의 만족도를 평가척도에 포함시키면 움직이고 있는 시간 모두를 고객을 위해 쓰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결과 모든 고객들과의 만남이 진검 승부가 되는 것이죠. 이 개혁이 성공한 것은 실시 2년 반 만에 고객으로부터 160만통의 앙케트 엽서를 받은 것으로 증명됩니다. 그 중 90%는 칭찬하는 말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마에다 사장은 지난 2007년 기업 내 대학인 ‘에콜시세이도’를 개교했다.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는데 철학이나 문학도 포함돼 있다. 화장품 회사 임직원들이 데카르트에 대한 강의를 듣고 토론하는 것은 이 회사만의 진풍경일 것이다.
―직원들에게 철학이나 문학을 가르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향후 10년간 일어날 가장 본질적인 변화가 무엇일까요? 글로벌화일 것입니다. 그리고 글로벌화의 파도가 비즈니스맨에게 요구하는 것은 다양성에의 대응력일 것입니다. 철학이나 문학을 배우는 의도도 거기에 있습니다. 경리나 인사부 사람들이 평소 생각하지 않던 철학이나 문학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것으로 다양성의 대응력을 단련하게 됩니다.”
―예술적인 분위기 때문인지, 일본 기업 중에서 시세이도의 근무 환경이 비교적 자유롭고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는 평이 있습니다.
“저는 직원 시절부터 시세이도가 정말 다니기 좋은 직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발적인 예술 동호회 활동이 장려됐지요. 회사 철학에는 ‘워크 라이프 밸런스(work life balance)’라고 해서 일과 사적인 생활을 양립할 수 있는 사람이 일도 잘한다는 개념이 잡혀 있었습니다. 요즘에는 많이 확산된 개념이지만, 수십년 전에 특히 일본에서는 예외적인 경영 방침이었죠. 예술가이시기도 했던 후쿠하라 신조(福原信三) 시세이도 초대 사장의 영향이 기업 문화에 크게 남아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모든 제품은 리치(rich)해야 하며, 제품 스스로 소비자에게 메시지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그분의 철학은 지금도 매우 중요합니다.”
―모든 제품이 리치해야 한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제품이 리치해야 한다는 것은 제품을 구성하는 요소 전반에 미(美) 의식이 풍부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제품 디자인은 물론, 포장 같은 사소한 부분까지 놓치지 말고 아름다움이 넘쳐야 한다는 것이지요. 즉 모든 분야마다 장인(匠人) 정신이 살아 숨쉬어야 합니다. 또 소비자에게 제품 자체로 말해야 한다는 것은, 제품을 봤을 때 바로 직관적으로 시세이도의 철학이 드러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좀 추상적인데요. 제품에 직관적으로 아름다움을 느낄 만큼 최선을 다한 사례를 예를 들어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전부 다 사례라고 말하고 싶지만…(웃음). 굳이 사례를 들어야만 한다면 2006년 샴푸로 출시된 ‘츠바키’를 사례로 들고 싶습니다. 2006년 이전에 우리 회사에는 샴푸 브랜드가 7개 있었습니다. 그런데 7개 브랜드를 다 합쳐도 샴푸 업계 톱 3에 들지 못했어요.
우리는 시세이도의 ‘정신’을 그 자체로 보여주는 제품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시세이도의 문양이었던 동백꽃(하나츠바키)을 브랜드화하기로 한 것이죠. 우리는 3년의 시간을 쏟아부었습니다. 그리고 동백꽃에서 이름을 따서 ‘츠바키’를 아예 상품명으로 했습니다. 샴푸 용기는 동백꽃의 주된 색깔에 맞춰 붉은 색조에다 꽃병 모양으로 디자인해 회사의 아이덴티티를 심었습니다.”
―제품에 시세이도의 ‘브랜드 이미지’를 심었다는 의미입니까?
“네. 소비자의 진심을 움직이는 것은 사실 제품의 세세한 기능이 아니라 브랜드에 담긴 신뢰입니다. 실제로 저희는 츠바키를 마케팅할 때 예전처럼 샴푸의 기능을 일일이 소비자에게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저희는 ‘일본 여성의 검은 머리는 무엇보다 아름답다’는 감성적인 콘셉트만 담았습니다. 그 결과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츠바키는 출시 2주 만에 샴푸·린스 시장 1위로 올라섰다.)”
―’제품에 정신을 담으라’는 말은 쉽지만, 실행은 쉽지 않은데요. 직원들에게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지시하십니까?
“고객의 외모를 바꿔주는 것은 물론, 마음까지 풍요롭게 바꿔줄 수 있도록 주문합니다.”
―제품으로 마음을 바꾼다?
“네. 진정한 아름다움은 사람의 내면에 작용하는 것입니다. 화장품은 기본적으로 피부를 아름답게 가꾸는 제품입니다. 하지만 사실 한 단계 더 들여다보면 화장품은 사람의 내면에 작용하는 제품입니다. 사회 공헌활동을 하다 보면 좀더 이 점을 뚜렷이 느낄 수 있습니다. 저희 임직원은 매년 2000여곳의 노인 시설과 장애인 시설을 방문해 화장을 해 드립니다. 저도 가끔 나가는데, 그때마다 무한한 화장의 힘을 절감합니다.
예를 들면 거동이 불편한 노인 분들에게 화장을 해 드리면 생활 자체가 활기를 찾으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화장한 얼굴에 만족을 느끼시면서 세수를 한다거나, 옷을 갈아입는다거나, 스스로에게 신경을 쓰게 됩니다. 심지어 기저귀를 쓰던 분께서 스스로 기저귀를 쓰지 않게 되시기도 합니다. 이런 게 진정한 아름다움입니다.”
―그런 보이지 않는 가치를 실제 제품에 구현할 수 있습니까?
“물론 저희가 단순히 ‘화장의 힘은 강하다’고 생각만 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저희는 화장의 힘을 수치화하고, 연구 개발하는 데에도 힘을 쏟고 있습니다. 저희 스스로는 ‘휴먼 사이언스’라고 부르지요. ‘뷰티 솔루션 센터’라는 곳에서 맡고 있는데, 세계적으로 높은 기술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예를 들어 화장했을 때 혈류량의 증감을 측정하기도 하고, 마음의 안정 여부를 측정하기도 합니다. 노화 방지(안티 에이징)나 미백(화이트닝), 발모 제품들이 대부분 이런 과정을 거쳐 개발됩니다.”
―나라나 지역마다 소비자들이 갖고 있는 ‘보이지 않는 가치’들이 모두 다를 텐데요.
“물론입니다. 예를 들면 한국 여성들은 미의식이 높습니다. 전반적으로는 일본 여성들과 비슷합니다. 세안 후에 기초적인 피부 손질을 수차례에 걸쳐 매우 꼼꼼하게 합니다. 피부 색조와 머리카락 색깔도 일본 여성들과 비슷하고, 화이트닝이나 안티에이징에 관심이 많은 면도 비슷합니다. 한국 여성을 위한 제품을 개발할 때는 이런 점을 참조하고, 일본 시장 제품 중 적합한 제품을 적용해 출시하기도 합니다.
▲ 시세이도 제공 도쿄 시오도메 본사 앞에서 팔짱을 낀 포즈를 취한 마에다 신조 시세이도 사장. 그는 2005년 취임 이후 60%의 가능성이 있으면 바로 실행에 옮긴다는‘60% 즉결주의’를 내걸었다.
반대로 중국 같은 경우는 상당히 리치한 제품, 즉 유분이 많고 사용 질감이 두꺼운 제품을 좋아합니다. 로션 같은 경우도 촉촉하고 심지어는 약간 끈적이는 느낌까지 있는 제품을 선호합니다. 따라서 중국 시장에서는 중국 소비자의 ‘보이지 않는 취향’을 커스터마이징한 제품을 따로 설계해 내놓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중국인 같은 경우는 감귤 향을 싫어합니다. 그런 제품은 판매할 때 거의 배제합니다.”
―화장품 업계가 전반적으로 경기 침체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어떻게 대응하시겠습니까?
“아침이 오지 않는 밤은 없습니다. 이런 시기에는 향후 경기가 회복됐을 때 성장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게 더 중요합니다. 특히 마케팅 비용이나 인건비는 줄이지 않을 생각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저희가 성장시키고 싶은 부분, 그리고 성장할 여지가 있는 곳에 투자해야 한다고 봅니다. 선택과 집중이 관건이 될 것입니다.”
―향후 성장할 시장은?
“음…. 아무래도 중국이겠죠. 물론 한국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오너들이 전통적으로 사진, 미술 등 예술에 조예가 깊으셨는데, 사장님도 예술에 개인적인 취미가 있으십니까?
“(웃음) 트롬본을 붑니다. 대학 때 특히 열심히 했는데, 나중에 회사를 그만두면 제대로 시작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