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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스포츠+경영=창조
작성자
조동성
작성일
2009/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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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없음

조동성 서울대 교수, 토슈즈 신고 발레하는 경영학 대가 “예술과 경영은 ‘창조’로 통합니다”박세미 기자 runa@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기사 100자평(5) 입력 : 2009.08.04 15:04 / 수정 : 2009.08.08 16:25
<이 기사는 주간조선 2067호에 게재되었습니다>

축구·야구·농구… ‘체육과 교수’로 불릴 정도로 만능 스포츠맨
10년 전 취미 삼아 발레 배워 공연까지… ‘예술경영’이론도 연구

지난해 5월 17일 오후 5시 서강대 메리홀. 우리나라 나이로 예순을 맞은 한 교수가 위아래로 딱 붙는 까만 색 타이즈와 망토를 두르고 거대한 무대 위에 섰다. 머리는 희끗희끗했지만, 그의 발엔 발레 토슈즈가 신겨 있었다. 음악이 나오자 교수가 발과 몸을 가볍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안무가 조기숙(이화여대 무용과 교수)씨가 기획한 발레공연 ‘백조의 호수-사랑에 반(反)하다’ 무대에 선 조동성(趙東成·60)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였다.

그가 맡은 역할은 ‘불신’을 상징하는 마왕(魔王). 오데트 공주의 아버지인 마왕은 이 공연에서 불신과 저주, 번민, 복수를 상징하는 4명의 인격체로 등장한다. 그가 등장하는 장면은 전체 65분 공연 중 2분 남짓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는 그 순간을 “식은땀이 가득 흘렀다”고 기억했다. 수천 명의 청중 앞에서 숱하게 경영학 강의를 해온 ‘경영학의 대가’는 전 같지 않게 몸을 떨었다.

공연이 끝나자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500여명의 관중 가운데 100여명은 그의 첫 발레공연을 축하하기 위해 온 제자와 지인들이었다. 지난 석 달간 저녁시간마다 이화여대 체육관에서 2~3시간씩 발레연습을 하며 쏟은 노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 photo 이경민 조선영상미디어 인턴기자
1949년 서울생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미국 하버드대 경영학 박사
한국자원경제학회 회장, 산업정책연구원 원장, 한국국제경영학회 회장, 한국전략경영학회 회장, 한국여가문화학회 회장, 한국학술단체연합회 회장, 한국경영학회 회장 역임
현)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엄친아 cho!’

‘최강 동안!’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 cho!’ ‘언제나 열정적인 교수님 존경합니다’….

지난 7월 28일 찾은 조동성 교수의 연구실 창가엔 이 같이 쓰인 알록달록 한 색종이 6~7개가 붙은 종이 액자가 놓여있었다. 조 교수는 “학생들이 그냥 보낸 것”이라며 별 거 아니란 듯 웃었지만, 학생들이 ‘최강 동안’ ‘엄친아’라는 찬사를 보내며 열광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발레하는 60대의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학교 안팎에서 ‘경영학의 대가’로 잘 알려진 그는 “나는 단지 발레를 스포츠의 한 종목으로 생각했을 뿐이었다”고 말했다. 다만 지난해 처음 발레무대에 서면서 비로소 ‘예술이 결코 먼 곳에 있지 않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그가 ‘운동의 하나’로 발레를 시작한 건 우연이 아니었다. 1978년 서울대로 부임한 조 교수의 별명은 ‘서울대 경영학부 체육학과 교수’. 그의 승용차 트렁크엔 늘 농구공과 배구공, 축구공, 배드민턴공 등 온갖 체육 도구들이 가득했다. 강의를 끝내고 시간이 나면 학생들과 어울려 서울대 대운동장에서 땀을 흠뻑 흘렸다. 한때 동시에 12개 체육 동아리의 지도교수를 지냈을 만큼 관심이 각별했다.

그는 자신의 다리 뒤꿈치 위쪽 아킬레스건을 한번 만져보라고 했다. 1㎝ 넘게 두꺼운 근육이 만져졌다. 보통 사람들의 아킬레스건을 만지면 일반적으로 3㎜ 안팎의 얇은 근육이 느껴진다. 양쪽 종아리 중간까지 8㎝ 정도의 선명한 수술자국도 있었다. 그는 “아킬레스건이 모두 끊어져 수술을 해 이렇게 두꺼워졌다”고 했다. 오른쪽 다리 아킬레스건은 테니스를 하면서, 왼쪽 다리 아킬레스건은 농구를 하면서 끊어졌다.

전문 스포츠선수도 아닌데 아킬레스건이 끊어질 만큼 격하게 운동을 하다니 선뜻 이해가 안 됐다. 하지만 그는 어렸을 때부터 웬만한 운동은 다 섭렵했을 만큼 ‘스포츠맨’으로 유명했다. 경기고 시절 교내 수영대회는 물론 교내 단축마라톤 대회도 출전했고, 친구들과 어울려 당구와 씨름을 즐겼다. 태권도 유단자(초단)이기도 했다. 스스로 “공부 빼고 다 한 것 같은 학창시절이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서울대 상대에 진학한 뒤에도 그는 학생회 체육부장을 맡아 단대별 체육대회를 치르는 등 열정을 쏟았다. 배드민턴 동아리에서도 활동했고, 단대 대항 운동회에서 800m 달리기 부문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는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리면서 느끼는 그 기분이 너무 좋았다”고 했다.

유학시절엔 레스토랑서 ‘기도’로 알바

미국으로 유학간 뒤부턴 운동과 담을 쌓고 지냈다. 논문과 연구에 파묻혀 지내느라 운동할 틈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 하버드대학이 있는 보스턴 시내의 한 한인 태권도장에서 사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거의 무급에 가까운 자원봉사였지만, 그에겐 유일한 낙이었다.

한창 태권도 사범으로 재미를 붙일 무렵 뜻밖의 고소득 아르바이트 제의가 들어왔다. 한 40대 미국인 태권도 제자가 조 교수에게 “잠깐 우리 식당에서 일해볼 생각이 있냐”고 물은 것이다. 그의 단단한 몸과 날렵한 움직임을 눈여겨본 레스토랑 사장이 식당 입구를 지키는 이른바‘기도(木戶·문지기)’ 역할을 맡긴 것이다.

일주일에 두 번 8시간씩 까만 양복을 입고 1년간 식당 문 앞을 지켰지만, 다행히 정작 ‘힘’을 쓸 일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수입은 쏠쏠해서, 그곳에서 일하면서 1년 동안 무려 5000달러를 벌었다.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약 5만달러에 가까운 거금이었다. 장학금을 받으면서 학교에 다녔지만, 아내와 아이 셋이 있던 그에겐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생활비였다.

그가 인생의 ‘씨줄’과 ‘날줄’ 원리를 알게 된 것도 이때부터라고 했다. 공부와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활동들도 나중에 하나 둘 모이면 결과적으로 다 내 공부와 연관이 되더라는 교훈이었다. 씨줄이든 날줄이든 어느 하나만으론 옷감을 짤 수 없듯, 한쪽의 경험만으로 세상을 배울 순없다는 이치였다고 했다. 그는 그때부터 씨줄과 날줄을 견고하게 잇고 엮는 작업을 몸으로 익히겠노라 다짐했다.

“삶은 씨줄과 날줄로 이어지는 것”

그가 발레를 처음 접한 건 1990년대 말이었다. 구기 종목이 아닌 새로운 운동을 해보고 싶었던 조 교수는 동네 근처의 댄스스포츠 학원에 등록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빠른 리듬의 댄스는 영 몸이 따라주질 않았다. 동작 따라하기에 급급한 조 교수에게 강사가 “그러면 리듬과 몸의 움직임을 배울 수 있는 발레를 해보라”고 권했다. 발레는 스포츠댄스보다 상대적으로 동작이 느릴 뿐 아니라 몸을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에 대한 기초 자세를 가르쳐준다는 것이었다.

쫙 붙는 타이즈에 토슈즈를 신고 조 교수는 발레를 배우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세 번 1시간씩 시간을 내 학원을 찾았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여고생들과 섞여 발레 스트레칭과 기본 동작을 익혔다. 그렇게 넉 달 넘게 발레를 배우고 나니 몸이 곧아지고 컨디션이 한층 좋아지는 기분을 느꼈다고 했다.

“발레의 가장 큰 장점이 뭔지 아세요? 다른 운동은 보통 근력이면 근력, 심폐강화면 심폐강화, 특정 부문에 강하잖아요. 그런데 발레는 근력에 심폐강화, 리듬감까지 한 번에 모두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운동이더라고요. 게다가 발레의 기본동작이 허리를 쫙 편 채 머리는 하늘로, 발끝은 땅으로 뻗는 자세잖아요. 책상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긴 제겐 이보다 더 좋은 운동이 없었습니다. 예전엔 허리도 아프고 목 디스크까지 있었는데, 발레를 하고 나니 고질적인 목 통증도 사라지고 몸을 바르게 하는 습관도 갖게 됐어요.”

▲ 발레 ‘백조의 호수’에서 ‘마왕’을 맡아 공연하고 있는 조동성 교수(맨 오른쪽)
발레의 ‘묘미’에 한껏 취했지만, 연구 활동에 바빠지면서 조 교수는 한동안 발레를 잊고 살았다고 했다. 그런데 지난 2005년 2년 임기로 한국학술단체연합회 회장직을 맡게 되면서 그는 ‘운명적’으로 발레와 조우했다. 당시 그는 총 560여개 학회 연합의 수장을 맡아 인문학과 자연과학, 사회과학과 예술이 한데 어우러지는 ‘학제 간 세미나’와 ‘통합학술대회’를 이끌고 있었다.

“2007년 100여개 학회가 모여 통합학술대회를 열었는데, 워크숍 저녁 때 한국무용학회에서 댄스파티를 개최했어요. 회장이었던 제가 앞장서서 춤을 췄죠. 그걸 본 조기숙 이화여대 무용과 교수가 ‘어떻게 춤을 그렇게 잘 추냐’고 했고, ‘발레를 조금 배웠다’고 대답했어요. 그랬더니 조기숙 교수가 ‘춤을 중단하지 마시고 계속 배우라’고 조언하더라고요. 그걸 계기로 지난해 조기숙 교수의 ‘백조의 호수’ 발레 공연에 참여하게 된 겁니다.”

스포츠로 시작한 발레, 예술을 만나다

이제 그에게 발레는 단순한 운동을 넘어선 그 ‘무엇’이 됐다. 발레가 그에게 ‘예술을 통한 자기 경영’이란 새로운 영역을 알려준 것이다. 조 교수가 ‘백조의 호수’ 공연 연습에 몰두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퍼지자, 제자가 공동 소설집필을 권유해 지난해 국내 최초의 자기계발 소설 ‘장미와 찔레’를 출판하기도 했다. 내년엔 안중근 의사 서거 100주년을 기해 연극무대에 올릴 극본도 쓰고 있다.

현재 조 교수는 ‘예술로서의 발레’를 어떻게 경영학의 한 분야로 통합할 수 있을지 골몰하고 있다고 했다.

예술의 창조성을 경영학으로 끌어들여 지속 가능한 접점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조 교수는 자신의 대표적인 경영학 이론인

‘M이론(메커니즘 이론·기업의 성공을 결정하는 요소로

기업 주체(S)와 산업환경(E), 자원(R) 외에 이를 모두 포괄하는 특정한 메커니즘(M)이 있다는 것)’과 더불어 ‘예술경영’을 이론화하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오는 9월 서울대 경영대학원(MBA)에서 ‘Management by Art(예술경영)’ 과정을 열게 된 것도 그의 이 같은 구상이 반영된 것이다.

“예술의 창조성은 무(無)에서
유(有)의 창조, 반복에 대한 혐오, 무량대수적인 가능성을 의미합니다.

발레를 통해 제가 배운 것도 이런 정신이었어요. 이제 경영학이 주목하게 될 것은 ‘혁신’이 아닌 ‘창조’입니다.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 뭔가 ‘빵(Box-Out)’ 터지게 하는 거죠. 제한적인 범위(Box-in)에서 움직여야 하는 ‘혁신’은 한계가 있거든요.

이런 경영학의 트렌드를 뒷받침할 수 있는 방법론을 바로 예술의 창조성에서 찾은 겁니다.”

‘예술경영’은 기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특정한 메커니즘(M)을 찾는 그의 장기적인 연구 과제와도 긴밀히 연결될 예정이다. 한번 고착화되면 바꾸기 힘든 기업의 메커니즘을 어떻게 창조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힌트를 주는 것도 예술의 창조성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9월에 MBA 과정을 개강하면 대학원생들에게 제가 나온 ‘백조의 호수’ 발레 공연 테이프를 보여줄 거예요. 전문 무용수들이 나오는 발레공연이라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겠죠. 하지만 비디오에 제가 토슈즈를 신고 나오면 학생들이 박장대소를 하고 뒤집어질 겁니다. 창조성은 바로 이 순간, 두려움을 없애고 기존의 관념을 완전히 뒤집는 데서 시작하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봇물 터지듯 나오는 학생들의 아이디어가 바로 경영학의 자산이 되는 거죠. 저는 이런 믿음을 그저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는 교수에 불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