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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엄마 치료
작성자
신의진
작성일
2009/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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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없음

‘엄마치료’ 나선 신의진 교수최혜원 기자 happyend@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기사 100자평(17)
입력 : 2009.09.22 18:46 / 수정 : 2009.09.27 19:33
“마음 아픈 아이들 8할은 엄마가 문제”
<이 기사는 주간조선 2074호에 게재되었습니다.>

신의진(45) 연세대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과 교수는 자녀교육 분야에서 손꼽히는 ‘파워 라이터(power writer)’다. ‘느림보 학습법’(2001), ‘현명한 부모들은 아이를 느리게 키운다’(2001), ‘아이보다 더 아픈 엄마들’(2002), ‘아이의 인생은 초등학교에 달려 있다’(2005), ‘현명한 부모들이 꼭 알아야 할 대화법’(2005) 등 그가 펴낸 10여권의 책은 하나같이 해당 부문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의학교과서 수준의 고급지식을 학부모가 알기 쉽게 풀어 정리한 ‘신의진의 아이심리백과’(2007)와 ‘신의진의 초등심리백과’(2008)는 600쪽 내외의 두툼한 분량에도 일찌감치 엄마들 사이에서 ‘상비서적’으로 자리잡았다. 그의 ‘콘텐츠’에 주목한 해외 출판계의 러브콜도 잇달았다. 그의 책은 2003년 일본에서 번역된 데 이어 현재는 중국과 대만까지 진출해 있다. 국내 서점가에서 추산하는 그의 ‘독자 동원력’은 약 5만명 선이다.

▲ 신의진 교수 / photo 허재성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그가 이번엔 ‘나는 아이보다 나를 더 사랑한다’(걷는나무)란 신간을 들고 나왔다. 책 표지엔 ‘아이보다 더 아픈 엄마들을 위한 심리학’이란 부제가 함께 실려 있다. 사실 이 책은 그가 지난 2006년 출간한 책 ‘현명한 부모는 자신의 행복을 먼저 선택한다’의 개정증보판이다. 지금 시점에서 낡은 부분을 상당량 덜어내고 여러 번 손을 보긴 했지만 기본 골격은 3년 전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왜 이런 수고로움을 거쳐 다시 책을 선보인 걸까.

내 아이, 남의 아이 볼 때 다른 엄마의 뇌

인터뷰를 요청하기 위해 신 교수와 연락을 취했을 때 그는 미국에 있었다. 다행히 귀국일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어서 며칠 후인 지난 9월 15일 강남세브란스병원(서울 강남구 언주로) 9층 연구실에서 그와 마주앉을 수 있었다. 그는 “휴스턴에 있는 베일러의대의 한 랩(lab·연구소)에서 3개월간 단기연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라고 했다. 연구주제는 뇌 관찰을 통한 모성(母性) 연구.

“제 전공이 소아정신과 중에서도 6세 이하 어린이거든요. 이 시기엔 엄마와의 애착관계가 굉장히 중요해요. 그걸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었는데 마침 지난해 참석했던 한 학회에서 깜짝 놀랄 만한 결과를 접했어요. 자기 아이를 대할 때 엄마의 뇌 모양과 남의 아이를 대할 때 엄마의 뇌 모양이 서로 다르다는 내용이었죠. 출처를 수소문했더니 베일러의대였어요. 이거다 싶어 연수를 신청했습니다.”

그가 머물렀던 랩은 3테슬러급 MRI(자기공명영상장치) 5대를 연구용으로 갖추고 있었다. 3테슬러 MRI는 현대 의술 수준에서 인간의 뇌를 가장 정교하게 관찰할 수 있는 걸로 알려진 장치. 세브란스병원을 통틀어서도 1대, 그것도 임상용으로만 활용되는 고가의 장비다. 연수기간 내내 그는 그 첨단장비를 이용, 그간 ‘심리적 기제’란 이유로 과학적 측정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져온 엄마와 자식 간 애착관계를 다양한 방면에서 마음껏 연구할 수 있었다.

임신기부터 단계별 심리문제 및 극복 방안 제시

그가 이제껏 써온 대부분의 책들이 (엄마에 의해 길러지는) 아이 입장에 초점이 맞춰진 것과 달리 ‘나는 아이보다 나를 더 사랑한다’는 철저하게 (아이를 기르는) 엄마를 대상으로 정해놓고 쓰여진 책이다. 혹자는 ‘소아정신과 의사가 왜 그런 책을…?’이라고 의아해할지 모르지만 그의 입장은 확고하다. “아이가 마음에 병이 생긴 이유는 정신지체나 자폐 등 선천적 이유를 제외하곤 엄마에게 원인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란 것이다.

“엄마들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사실이에요. 물론 제 얘길 듣고 일부 남성들은 ‘그것 봐, 여자들이 문제라니까’ 하며 모든 문제를 여자 탓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죠. 그렇게 악용되는 건 저도 걱정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치명적 유전자 결함만 아니면 어떤 자녀도 엄마 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좋아질 수 있다는 얘기거든요. 엄마 역할이 너무 중요한 거죠. 그래서 책을 통해 현명한 엄마가 될 수 있는 ‘각론’을 최대한 많이 제공하고자 했어요.”

실제로 ‘나는 아이보다 나를 더 사랑한다’엔 자녀와의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부모의 7가지 유형을 비롯해 좋은 엄마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7단계 요령, 행복한 엄마들의 자기선언 10가지 등이 보기 쉽게 정리돼 있다. 임신기부터 0~3년차, 4~6년차, 초등 저학년, 고학년 등 엄마들이 단계별로 겪을 수 있는 심리문제와 극복방안 등도 따로 분류해놓았다. 모든 얘기는 100% 그가 병원에서 만난 부모들, 그리고 두 아들의 엄마이기도 한 자신의 경험담이다.

자장면 먹는 데 화장지 한 통이 필요했던 아들

그의 장남 경모는 어렸을 때 엄마 속을 무던히도 썩였던 아이였다. 지나치게 예민했고 강박증세도 심했다. 한때 틱장애(tic disorder·아이들이 특별한 이유 없이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나 목, 어깨 등 신체 일부분을 아주 빠르게 반복적으로 움직이거나 이상한 소리를 내는 증상)로 학교 수업을 빼먹거나 친구들로부터 놀림의 대상이 되곤 했다.

당시 그의 최대 고민은 ‘경모가 보통 사람들처럼 사회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당시 일화 하나. 경모가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는 자장면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강박증이 심했던 경모는 자장면 한 젓가락을 먹을 때마다 화장지로 입을 닦아내야 했다. 당연히 테이블마다 비치된 화장지는 늘 바닥이 났고 자장면 한 그릇을 비울 때면 화장지가 수북이 쌓였다. 신 교수는 고민 끝에 묘안을 냈다. 중국집에 갈 때마다 집에서 화장지 한 통을 챙겨 가는 것. 테이블 위에 화장지통을 올려놓고 그는 말했다. “경모야, 많이 먹어.”

문제를 부러 감추지 않고 ‘일단 해결하고 보자’는 방식으로 정면돌파한 덕분일까, 올해 열일곱 살이 된 경모는 누구보다 훌륭한 청년으로 자랐다. 틱장애가 없어진 건 물론이고 요즘은 말할 때마다 엄마를 든든하고 기쁘게 해주는 아들이 됐다. “미국서 돌아오기 전 그곳에서 유학 중인 아들과 며칠 함께 지냈어요. ‘자장면 에피소드’를 기억하고 있더라고요. 자기 같으면 엄마처럼 못했을 거라고. 그러면서 자기도 엄마 같은 공부를 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엄마들 불안증세·나르시시즘 갈수록 심해져

그도 어언 경력 16년의 소아정신과 전문의가 됐다. 하도 많은 사례들을 접하고 상담하다 보니 이제 웬만한 환자는 처음 만난 자리에서 진료예상기간을 가늠할 만큼 ‘내공’이 쌓였다. “어떤 문제가 있어도 대개는 1년 정도 진료를 계속하면 치유됩니다. 아이를 보는 척하면서 끊임없이 엄마를 쿡쿡 찌르거든요. 처음엔 경계의 눈빛을 안 풀던 엄마들도 시간이 좀 지나면 제 지적을 수긍합니다. 펑펑 울면서 자기 얘길 털어놓는 분도 많죠.”

물론 아이 문제의 화살을 엄마에게 돌리는 그의 치료방식에 거부감을 갖는 엄마들도 있다. “어떤 분은 굉장히 불쾌해 하면서 문을 박차고 나가버립니다. 근본적인 잘못이 자신에게 있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거죠. 아니면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거나. 상담을 계속해도 진전이 없을 경우엔 아빠를 불러 따로 만나기도 합니다. 엄마로 해결 안 되는 문제는 아빠가 일정 역할을 해줘야 할 때도 있거든요.”

요즘 부쩍 늘어난 ‘문제엄마’는 매사 불안을 끌어안고 사는 유형이다. “이런 엄마들은 걱정이 끊이지 않아요. 불안에 브레이크가 안 걸리니 돈을 퍼붓는 걸로 해결하려 하죠. 누가 어쨌다고 하면 안절부절못하면서 휩쓸리고요. 이런 증상이 심해지면 소위 ‘못된 엄마’가 돼요. 자기 불안을 합리화하기 위해 다른 엄마들을 괴롭히죠. 심한 경우엔 근거없는 헛소문을 퍼뜨리고 ‘잘하는 애들로만 반 편성해달라’며 유치원 교사에게 뇌물을 건네기도 해요.”

또 다른 유형은 일명 ‘나르시시즘 인저리(Narcissism injury)’에 시달리는 엄마들이다. “소아정신과 상담 시 큰 문제로 꼽혔던 학교 등 외부환경 문제는 점점 나아지고 있어요. 그런데 아픈 엄마들은 오히려 더 많아졌죠. 그 이유가 나르시시즘 인저리예요. 한때 잘나갔던, 예쁘고 싱싱했던 자신이 출산과 육아로 시들어가는 걸 스스로 견디지 못하는 거죠. 지금 엄마가 되는 분들 상당수가 부모의 과잉보호로 길러진 세대거든요. 그 영향도 있는 것 같아요.”

미혼 여성에게 ‘건강한 모성’ 알리는 책 쓸 것

그는 이번 가을부터 진료일 중 하루는 따로 떼어내 ‘엄마 상담 전용일’로 잡을 생각이다. ‘마음 아픈 아이’를 고치는 데 ‘엄마치료’만한 약이 없다는 생각에서다. 아울러 ‘나는 아이보다 나를 더 사랑한다’ 같은 ‘엄마 치료용’ 육아서도 계속해서 펴낼 계획이다. 엄마들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과제가 ‘모성의 중요성이 인정 받고 장려되는 사회’를 만드는 거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사회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저출산문제도 그는 좀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다. “정부에선 출산기피 현상을 자꾸 경제적 문제하고만 연관 짓습니다. 물론 그것도 있겠죠. 하지만 경제사정이 괜찮은 여성들도 자신의 커리어 개발을 생각하면 출산에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어요. 결국 이 문제는 문화적 코드로 풀어야죠. 엄마 될 준비가 돼 있는 여성, 엄마가 돼서도 끊임없이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줄 아는 여성이 나오도록요.”

‘신의진표 육아교육서’가 인기를 끄는 원인 중 하나는 교과서적 지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과 가족 얘길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독자를 끌어당기는 그의 문체다. 이 책에서도 그는 남편과의 갈등, 두 아들과 있었던 에피소드,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게 너무 힘들어 자기도 의사이면서 2년 반이나 정신상담을 받았던 일 등을 담담하게 기록했다. 그는 “자기 얘기 좀 그만 쓰라던 큰아들도 이젠 엄마 책이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한다”고 말했다.

신 교수가 준비 중인 다음 책의 독자는 결혼과 출산을 앞둔 젊은 여성이다. 자신 안에 내재된 모성을 건강하게 가꿀 줄 아는 여성이 늘면 ‘아픈 아이(엄마)’의 수도 점차 줄지 않겠냐는 게 그의 판단이다. “젊었을 적 제 별명이 ‘칼’이었어요. 그야말로 찬바람이 쌩쌩 불었죠. 그런데 애들을 키우며 오만과 독단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어요. 한마디로 인간이 된 거예요. 엄마의 길을 먼저 걸어본 선배로서 들려줄 만한 얘기들을 정리해볼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