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스 교수와 하타무라 교수에게 듣는 ‘실패학’애틀랜타=백승재 기자 whitesj@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홍원상 기자 wshong@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기사 100자평(13) 입력 : 2009.09.26 03:49
오만… 파멸을 부르는 이름
최고라는 환상에 빠졌던 GM, 오만 때문에 실패의 나락으로
실패에 진지한 분석 없으면 실패는 실패의 어머니일 뿐
“특별한 성취 경험할수록 ‘자기 파괴’에 쉽게 빠져
실패 원인은 항상 내부에… 그 속에서 답 찾아라”
누구에게나 실패는 찾아온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 실패로 좌절하고 말지만, 어떤 사람은 그 실패를 교훈으로 삼아 새로운 기회를 움켜쥔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성공이란 사다리의 최상단에 오른 기업들조차 언젠가 실패를 맛보기 마련이다. 그리고 때로는 회생 불가능한 나락으로 떨어진다.
하지만 실패를 맛본 기업들이라고 꼭 좌절하는 것만은 아니다. 어떤 기업들은 ‘약간의 독(毒)은 약(藥)이 된다’는 격언을 몸소 실천한다. 실패라는 독을 오히려 지렛대로 활용해 체질을 개선하는 약으로 쓰는 것이다.
이처럼 실패는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기업의 생사(生死)를 가르는 양날의 칼과 같다. 그렇다면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는 마법의 연금술은 무엇인가?
▲ 그래픽=김의균 기자 egkim@chosun.com Weekly BIZ는 이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기업의 실패를 연구해 온 두 석학을 만났다. 잭디시 세스(Sheth·71) 미국 에모리대 교수와 하타무라 요타로(畑村洋太郞·68)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이다.
두 사람은 기업의 실패에 대해 각각 다른 시선으로 연구해 왔다. 미국 마케팅 분야를 대표하는 석학 중 한 사람인 세스 교수는 한번 성공했던 기업이 급속한 내리막길을 걷는 원인을 분석했다. 반면 일본 최초로 ‘실패학(失敗學)’을 제창했던 하타무라 교수는 기업들이 실패라는 경험을 적극 활용해 성공으로 거듭나는 비결에 초점을 맞춰왔다. Weekly BIZ 독자들에게 실패학의 진수를 전하는 데 환상의 조합인 셈이다.
먼저 세스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는 저서 〈배드해빗(Bad Habit·성공한 기업의 7가지 자기파괴 습관·2007)〉에서 좋은 기업이 병들어 가는 원인은 기업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다고 역설한다. “기업이 탁월한 성과를 내면서 성장해 가면, 그 결과로 기업의 근본을 갉아먹는 ‘자기 파괴 습관’이 무의식 중에 생겨난다”는 것이다. 그는 자기 파괴 습관을 7가지로 정리했다. ①현실 부정 ②오만 ③타성 ④핵심역량에 대한 과도한 의존 ⑤눈 앞의 경쟁만 보는 근시안 ⑥규모에 대한 집착 ⑦구성원들의 영역(silo) 의식이 그것이다.
그러면서 반문한다. “왜 당신은 자기 파괴 습관이 종말을 몰고 올 때까지 기다리나? 왜 당신은 폐암이 번질 때까지 담배를 끊지 않고 있었나?”
미국 애틀랜타 에모리대에서 만난 이 인도 출신의 노교수는 “7가지 자기 파괴 습관 중 가장 심각한 요인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가장 심각한 것은 물론 오만”이라고 답했다.
“1970년대 후반 미국 기술자들은 세계 최고의 기술이 모두 미국에 있다는 환상에 젖어 있었어요. MIT와 캘리포니아 주립대, 어바나 샴페인, 조지아텍…. 그리고 노벨상을 받은 수많은 교수들을 자랑했죠. 누구도 미국의 기술을 따라올 수 없다고 굳게 믿었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TV 산업, 시계 산업에서도 모두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오만은 성공했던 회사가 실패하는 원인을 만들어내는 근본 원인입니다.”
그는 지난 6월 파산 보호를 신청한 GM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1980년대에 GM은 자사 직원을 일본에 보내서 도요타와 기술을 교류하게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 직원은 도요타에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도요타는 GM이 개발 중인 신기술에 대한 시험을 이미 모두 끝낸 상태였고, GM이 도요타와 같은 대수의 자동차를 만드는 데 두 배 이상의 노동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그러나 그가 미국에 돌아와 조사 결과를 발표하자 GM 경영진들은 ‘오류’라며 한마디로 무시했습니다.”
이번엔 하타무라 요타로 교수의 말을 들어볼 차례. 최근 한국능률협회컨설팅 초청으로 방한한 그는 “실패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누구나 ‘성공’이라는 단어는 좋아하지만 ‘실패’를 인정하는 것은 매우 괴로워하죠. 하지만 실패는 훗날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는 만큼 숨기기보다 적극 활용해야 합니다. 실패를 밑거름으로 해서 노력한 결과물이 바로 성공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실패의 권유(2000)〉와 〈나와 조직을 살리는 실패학의 법칙(2002)〉 등의 책을 썼다.
―그럼 실패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나요?
“그렇습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격언이 있는데 저는 이 말이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실패를 되풀이하더라도 ‘도전만 계속 하면 잘되지 않을까’라고 착각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 말이 그 사람을 격려하거나 위로하는 데 좋을지는 모르지만, 실패한 사람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지 않으면, 실패를 반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패의 원인과 과정을 깊이 있게 생각하지 않으면, ‘실패는 실패의 어머니’일 뿐입니다. 실패는 도전과 발전을 위해 그 원인을 분석하고 거기서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도출해 낼 때 비로소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세스 교수가 말하는 ‘성공한 기업이 갖는 자기 파괴 습관’
“대형車만이 이익 내… 누가 저런 차 사겠나” 日소형車 비웃던 GM, 치명적인 내리막길로
조직 결정 느려지면 타성에 빠졌나 의심을… 핵심역량만 믿다간 ‘우물 안 개구리’ 꼴 돼
미국 애틀랜타 에모리대 앞 사무실에서 만난 잭디시 세스(Sehth) 에모리대 교수의 손은 크고 거칠었다. 인도 출신의 이 교수는 71세의 나이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억센 힘으로 기자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나이보다 무척 젊어 보이신다”고 인사를 건넸더니, 바로 “제가 마케팅을 전공해 리패키징(re-packaging)을 좀 알거든요”라며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미국 마케팅 학계를 대표하는 거두(巨頭) 중 한 명이다. 1938년 미얀마(당시 버마)에서 인도인 사업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960년대에 미국에 건너와 경영학을 40년 넘게 연구했다.
▲ 미국 에모리대학에서 만난 잭디시 세스 교수. 그와 마주앉은 1시간20분은 수많은 기업의 흥망성쇠가 스쳐 지나가는 파노라마와 같았다. / 애틀랜타=백승재 기자 그가 소비자의 구매행동을 심리학을 활용해 분석해낸 하워드-세스 모델(Howard-Sheth model)은 지금도 경영학 교과서에 실려 있다. 그의 업적을 인정해 2004년에는 미국마케팅협회(American Marketing Association Foundation)가 경영학자에게 수여하는 가장 큰 영예인 팔린상(Charles Coolidge Parlin Award)을 수여하기도 했다.
그의 최근 연구 주제는 위대한 기업 중 상당수가 어째서 계속 성공을 유지하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느냐는 것. 그는 1차 연구 결과를 2007년 〈배드 해빗(The self-destructive habits of good companies and how to break them)〉이라는 책으로 펴냈다. 지금은 정부가 실패하는 원인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그와 마주앉은 1시간 20분은 수많은 기업들의 흥망성쇠(興亡盛衰)가 스쳐 지나가는 파노라마와도 같았다. 그는 풍부한 연륜과 경험으로, ‘한때 위대했던’ 기업들이 어째서 치명적인 내리막길을 걷는지 사례를 통해 조목조목 짚어나갔다.
―2007년에 GM의 회생이 어렵다고 보셨는데요, 사실 그렇게 됐죠. 당시 왜 그렇게 보셨습니까?
“저는 미국 자동차산업을 20년 넘게 연구했어요. 저는 이미 GM의 문제가 너무 뿌리가 깊었다고 봤습니다. GM의 실패는 70년대 후반부터 짚어봐야 해요. 1차 오일쇼크가 왔을 때 저는 GM과 포드에 ‘경쟁력 있는 소형차’를 만들라고 조언했는데 그들은 전혀 듣지 않았습니다.”
―왜요?
“그들은 현실을 외면했어요. 기존 시장의 구조에 매달려서, 새로운 시장을 외면했습니다. 사실 당시 GM의 생산성으로는 소형차를 만들어서 이익을 낼 수가 없었어요. 큰 차를 만들어야만 이익을 낼 수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바탕으로, GM은 ‘소형차로는 시장에서 이익을 낼 수 없다’는 논리의 비약을 했습니다. 그리고 세계 자동차 업계 역사에서 가장 잘못된 결정을 내렸습니다.”
―무슨 결정입니까?
“판매망을 일본 자동차 회사들에 빌려주어 일본 소형차를 팔도록 한 것입니다. 시장을 갖다 준 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왜 그런 결정을 내렸습니까?
“GM 기술자들이 보기에 일본 차는 엉망이었어요. 디자인은 볼품없고, 오토 트랜스미션도 없고, 작은 차였습니다. 르노, 푸죠, 영국 자동차 회사들도 실패한 미국 시장에서 이런 차를 판다는 데 GM 기술자들은 코웃음을 쳤습니다. ‘누가 그런 차를 사겠느냐’고들 했어요. 그러나 이 차들은 연비(燃費)가 무척 높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본 자동차 회사들은 미국을 국가 전체로 보고 접근하지 않고, 특정 지역시장을 집중 공략한 다음 확산시키는 전략을 썼습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죠.”
―GM처럼 한때 크게 성공했던 회사가 왜 병들어 갑니까?
“인간의 평균 수명은 늘어나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기업의 평균수명은 줄어들고 있어요. 이는 기업이 탁월한 성과를 내며 성장해 가면, 그 결과로 기업의 근본을 갉아먹는 ‘자기 파괴 습관’이 무의식중에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오만입니다. 1980년대 GM의 최고경영자(CEO)였던 로저 스미스(Smith)는 필사적으로 회사를 변화시키려고 했어요. 인수·합병을 시도하고, 운영상 군살을 제거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예전처럼 대형차를 만드는 생산 방식이 최고라고 생각했던 GM의 임직원들은 근본적인 변화를 외면했습니다. 그들은 소비자가 원하는 차를 만들지 않고, 정부가 연비 기준을 낮추도록 로비를 하는 한편, 고객에게는 엄청난 리베이트와 무이자 할부를 밀어붙였습니다. 물론 레거시 코스트(legacy cost·회사가 부담하는, 종업원과 퇴직자, 그 가족에 대한 연금 및 의료보험 부담)도 큰 짐이 됐지만, 그것만으로 GM의 몰락을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왜 성공한 기업에 ‘오만’이 나타납니까?
“특별한 성취의 경험을 한 기업일수록 오만이 생기기 쉽습니다. 우연히 탁월한 성공을 거뒀을 때,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렸을 때, 어느 누구도 따라 하기 힘든 상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했을 때, 다른 회사보다 더 똑똑한 사람들이 모였을 때 오만이 일어납니다.
제로그래피(건식 복사방식)를 발명한 제록스가 대표적인 사례죠. 제로그래피는 1937년 가난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던 체스터 칼튼(Carlton)이 개발했습니다. 칼슨이 첫 번째 건식 복사기를 개발하는 데 12년이 걸렸지만, 일단 상용화되자 제록스는 복사기 판매에서 특허 기술을 통해 1960년대 내내 독점적인 지위를 누렸습니다. 그 결과 제록스라는 조직은 서로 단단히 묶이고, 완고해지고, 외부 사람들을 적대시하기 시작했습니다. 회사는 밖에서 온 아이디어(작은 복사기, 액체 토너, 간접 판매 등)건 내부에서 온 아이디어(개인용 컴퓨터 네트워크, 레이저 프린터)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맹목적으로 무시했습니다. 2000년 제록스는 5200명의 인원 감축과 6억 2500만달러의 구조조정 특별 손실을 발표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복사기가 프린터로 변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제록스가 준비되지 않았다는 것도 알고 있었죠.”
―말씀하신 대로 오만이 기업의 경쟁력을 정체시키는 사례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사실 자부심과 오만은 구별이 쉽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전자가 후자로 바뀌는 것을 막을 수 있지요?
“좋은 지적입니다. 만약 기업의 자부심이 운 좋은 성공에 기댄 것이라면, 혹은 당신의 펀더멘털 이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데 기인한 것이라면, 그것은 오만입니다. 노력과 경쟁력이 항상 동반돼야 합니다. 따라서 기업의 리더는 항상 조직원들의 오만을 경계해야 합니다. 최근 인도에서는 IT 산업이 급속하게 성장했죠. 그러면서 저는 인도의 IT기업들이 오만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그들은 싼 인건비 덕분에 큰 연구 개발이나 기술 투자를 하지 않고 과실을 챙겼어요. 하지만 더 이상 그런 방식은 더 큰 글로벌 IT 기업이 되는 데에 통하지 않습니다.
오만을 막기 위해 리더가 해야 할 일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사람들을 교육시키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오만해질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야 합니다. 자신이 왜 오만해질 위험이 있는지 지표를 제시해줘야 합니다. 리더는 혈압을 재듯이, 그 지표를 챙겨야 합니다. 그리고 그 측정 결과에 따라 처방을 해야 합니다. 어떤 부서에서 그런 오만이 특히 심한지, 측정한 뒤 모닝콜(wake-up call)을 하는 거죠. 의사가 환자에게 조언을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당신은 이런 이런 점이 위험합니다. 운동을 해야 하고, 다이어트를 해야 합니다. 약을 먹어야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이렇게 예방하는 작업이 오만으로 빚어진 결과를 나중에 바로잡는 것보다 물론 바람직합니다.”
―오만을 비롯해 7가지 자기 파괴 습관을 지적하셨는데, 다른 자기 파괴 습관들은 왜 생깁니까?
“기업이 커지면, 튼튼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는 자신만의 상상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면 타성에 빠지게 되죠. 특히 조직의 결정이 느려지면, 타성에 빠진 것은 아닌지 의심해봐야 합니다. GM은 한때 자동차 콘셉트를 만들고 시장에 출시하기까지 60개월이 걸렸습니다. 혼다와 도요타는 36개월이 걸렸는데 말이죠. 또 만장일치를 중시하고, 위원회를 좋아하는 조직 문화도 타성을 의심할만한 증상입니다.
핵심역량(core competence)에 지나치게 의존할 경우도 문제입니다. 핵심역량 의존적인 기업들은 ‘우물 안 개구리’가 됩니다. 비전이 제한되고, 다른 기회를 보지 못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핵심역량이 알라딘의 램프나 삼손의 머리카락처럼 힘의 원천이면서도 치명적인 약점이 됩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예를 들어보죠. 한 때 경쟁이 거의 없이 독보적이었던 브리태니커는 디지털 시대가 도래했는데도 치명적인 오판을 했습니다. 자사의 CD롬 백과사전 사업 부문을 팔아버리고, 양장판 백과사전에 계속 집중하기로 한 거죠. 그 결과 1998년 브리태니커는 그들의 마지막 방문 판매원 70명을 해고하면서 결국 방문 판매를 중단하고 맙니다. 자사의 장점이었던 연구개발에 지나치게 의존한 사례도 있습니다. 제약회사인 엘리 릴리(Lily)사가 연구 개발에 집중해 순도 100%의 인슐린을 출시했지만, 순도가 낮은 기존 인슐린에 비해 가격이 너무 비싸 실패했습니다.”
―한국의 정부나 기업인에게 자기 파괴에 이르지 않기 위한 조언을 하신다면?
“두세 가지가 생각나네요. 첫째, ‘항상 우리는 스스로 변화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던지세요. 또 하나는 조직이 항상 평소와는 다른 방식으로, 창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합니다. 세 번째는 고립되지 말아야 합니다. 관료나 기업인들은 물론, 일반인들까지도 해외를 방문해 급격하게 성장하는 경쟁자들을 보고 배우도록 장려해야 합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어떻게 그들을 변하게 만들 수 있습니까?
“물론 변화에 대한 저항은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것입니다. 아시아 회사들은 더 그렇죠.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80년대에 제가 한 연구입니다만, 하나는 ‘위험’ 때문이고, 하나는 ‘습관’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변화하도록 만들려면 첫째는 위험을 줄여줘야 합니다. 당신이 변화하더라도, 경제적인 여건, 사회적인 여건, 그리고 물리적인 안전에는 위협을 주지 않겠다는 보장을 해줘야 합니다. 두 번째는 습관을 깨 줘야 합니다. 이는 인센티브와 벌칙, 교육의 3단계로 이뤄져야 합니다. 금연을 생각해보세요. 금연을 하면 건강에 좋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특정 건물에서 흡연을 하면 벌칙을 주고, 어려서부터 금연이 습관화되도록 교육을 하죠. 이런 작업이 기업이나 정부 조직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져야 합니다.”
하타무라 교수의 ‘실패를 기회로 바꾸는 노하우’
중대한 사고 나기 전엔 작은 징조들 있기 마련
실패 쉬쉬하고 숨기다간 조직 자체가 무너질 수도
근본적인 원인 규명해 실패를 기회로 바꿔야
지난 21일 오후 김포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숙소인 서울 여의도 한 호텔에서 만난 하타무라 요타로(畑村洋太郞·68) 도쿄대 명예교수는 인심 좋은 아저씨 같아 보였다. 희끗희끗한 머리에 고희(古稀)를 바라보는 나이인데도 넉넉한 체구와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이 기자와 격의 없는 대화를 이끌어 냈다. 그러나 차분하던 그의 말투는 ‘실패’라는 단어가 나올 때만큼은 달라졌다. 목소리 톤은 높아지고 발음은 더 또박또박해졌다.
▲ 일본의 ‘실패학’ 창시자 하타무라 요타로 도쿄대 명예교수는 “실패는 모두가 겪는 것이기에 움츠러들지 말고 열심히 도전하라”고 말했다. ☞ 동영상 chosun.com / 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실패학이란 무엇인가요?
“실패학이란 우선 이 세상 사람이면 누구라도 다 실패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인간이든, 조직이든 지금까지 해보지 않았던 것, 경험하지 못한 것에 도전하고 창조적인 일을 하다 보면 반드시 실패가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패를 해선 안 된다’, ‘실패가 나쁘다’고 생각해선 안 됩니다. 만약 실패가 싫다면 도전하지 않으면 됩니다. 하지만 그것은 발전하지 않겠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럼, 창조적인 일을 하고 발전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새로운 일을 도전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실패를 어떻게 극복하고 활용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이런 실패에 대한 지식을 공유하고 연구하는 것이 실패학입니다.”
―교수님은 실패에도 ‘좋은’ 실패와 ‘나쁜’ 실패가 있다고 했습니다.
“부주의나 오판(誤判)으로 똑같은 실수를 연발하는 것은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실패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성공과 발전을 위해 추진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실패는 용서할 수 있는 실패입니다. 그런 만큼 필요한 실패, 불필요한 실패로 구분하지 않고 당사자를 책망하거나 몰아붙이면 발전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실패라도 당사자에겐 고통과 비용이 따릅니다. 굳이 체험할 필요가 있나요?
“실패를 하지 않고 성공할 수 있는 길은 분명히 있습니다. 이전에 있었던 성공 사례를 공부하고 모방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런 방법은 매우 위험합니다. 예전에 성공한 사람과 똑같은 길을 가지 않거나 주위 환경이 조금만 바뀌어도 실패하기 십상이죠. 반면 자기 생각과 의지로 도전하고 실패하고 성공하게 된다면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해도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실패는 수업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대신 수업료를 낸 만큼 확실히 배워야죠. 모든 실패에는 귀중한 지식이 숨어 있습니다.”
하타무라 교수는 도쿄대에서 기계공학을 30년 넘게 가르쳐온 공학자(工學者)이다. 그런 그가 어떻게 실패학을 일본에 최초로 소개하고 후지쓰·미쓰비시·히타치 등 일본 대표 기업의 경영 현장에 접목시킬 수 있었을까.
“원래 제가 연구하고 싶었던 분야는 창조학이었습니다. 그런데 기계설계의 성공 사례를 말하면 재미없어하던 학생들이 실패 사례를 말하면 눈이 빛나더라고요. 여기서 착안해 창조적인 작업을 할 때 반드시 따라오는 실패를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최근에 세계적 투자은행이었던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했습니다. 실패 이유는 무엇인가요?
“실패학에는 ‘보고 싶지 않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 ‘생산성 확대나 경제적 효율만 따지다 보면 시장 변화를 읽지 못한다’는 이론이 있습니다. 제가 볼 때는 리먼브러더스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금융공학적인 기술을 이용해 더 많은 부(富)를 창출하는 데 치중한 나머지 ‘큰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는 시장의 경고를 끊임없이 외면해 왔던 것이죠. 주위에서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당장 득(得)이 된다’는 이유로 지적도 제대로 하지 않았고요.”
―실패를 미연에 막을 수 있는 핵심 노하우를 몇 가지 꼽는다면?
“흔히 큰 사고가 일어나면 당사자는 ‘설마 이런 일이 일어날 줄 몰랐다’며 마치 불의의 사고였던 것처럼 받아들이거나 변명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중대한 사고가 나기 전에는 반드시 어떤 징조가 있기 마련이죠. 예컨대 한 건의 엄청난 대형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는 29건의 가벼운 재해가 있었고, 또 그전에는 다른 300건의 작은 실수가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이를 ‘하인리히의 법칙’이라고 합니다. 가벼운 재해나 작은 실수가 생겼을 때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면 치명적인 실패는 충분히 막을 수 있습니다.”
하타무라 교수는 “이런 법칙을 입증할 만한 사례는 쉽게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2000년 일본에서 5명이 죽고 63명이 다친 도쿄의 지하철 히비야선(線) 탈선 사고의 경우 그전인 1992년 10월과 12월에도 비슷한 사고가 일어났다. 그는 “실패를 줄이기 위해선 원인 규명과 책임 추궁을 나눠서 생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패 당사자에 대한 처분이 결정되면 대개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생각하는데, 그러면 실패가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원인 규명과 구체적인 대책을 세우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실패의 경험을 조직원 모두가 공유하는 게 중요하다”고 하타무라 교수는 강조했다. 대부분의 기업은 아직도 실패를 쉬쉬하고 숨기는 게 현실. 하지만 일본 혼다자동차는 직원이 기술 개발에 실패해도 원인을 찾아내면 상(賞)을 주고 그 정보를 함께 공유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실패를 성공의 계기로 반전시키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하나요?
(하타무라 교수는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자리에서 일어나 화이트보드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선 계단식 피라미드 모형을 그리면서 설명을 시작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앞에 벌어진 현상만 보지 말고 근본적인 원인을 찾는 것입니다. 그림의 피라미드를 보면 맨 아래쪽에는 어떤 사고가 발생하거나 실패했을 때 이를 직접적으로 촉발한 3~4개의 상황, 예를 들어 직원의 부주의나 기계 오작동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런 사고를 가져올 수밖에 없는 2~3개의 중간적인 원인, 즉 허술한 정비나 직원 교육 같은 게 있습니다. 그리고 피라미드의 맨 위에는 언젠가는 실패를 일으킬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기 마련입니다. 즉 회사 내부에 만연된 나태한 경영 같은 것 말이죠.”
하타무라 교수는 그 사례로 2001년 일본 시즈오카현(縣)에서 발생한 항공 사고를 예로 들었다. 당시 두 대의 항공기가 거의 충돌할 뻔한 사고가 발생해 승객과 승무원 42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사고 원인으로는 ‘훈련생이었던 관제관의 미숙’과 ‘기장의 판단 착오’ 때문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나 근본적인 원인은 하늘의 ‘긴자(銀座·도쿄의 번화가)’라고 불릴 정도로 비행기 운항이 과밀 상태였던 상공(上空)을 그대로 방치해 둔 것에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회사에서 일어나는 커다란 실패 역시 시스템이나 운영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따라서 개인이 실패를 책임지는 것보다는 조직이 시스템을 통해 실패를 안아주는 문화가 정착돼야 합니다. 실패를 스스럼없이 고백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역시 실패에 대한 최상의 대책입니다. 교훈으로 삼을 만한 사례가 하나 있는데, 미쓰비시자동차는 각종 차량의 결함과 리콜 사실을 30년 동안 은폐해 오다 2000년에 발각돼 도산 위기에 몰린 적이 있습니다. 실패가 드러나면 끝이라는 근시안적 조직 보존 논리로 작은 실패를 숨기다가 조직 자체가 무너질 뻔한 것이죠.”
―정부 정책에도 실패학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물론입니다. 최근에 있었던 일본 총선(總選)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이번 선거에서 자민당은 민주당에 크게 패하고 국민에게 버림을 받았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자민당이 예산만 낭비하는 정책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에 시민들의 불만이 폭발한 것이죠. 반면 민주당이 내걸었던 ‘꼭 필요한 곳에 예산을 쓰겠다’는 공약은 설득력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자민당은 지난 50년간 집권하면서 이런 변화를 전혀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기득권 심리에 머물러 사회 흐름을 읽지 않은 것이죠.”
―교수님 본인에게도 실패는 많았나요? 가장 기억에 남는 실패라면?
(그는 조금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짓더니 “오늘 인터뷰 중 가장 어려운 질문”이라며 크게 웃었다.)
“실패일 수도 있고 성공일 수도 있는데, 저는 사실 ‘히타치’의 엔지니어가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60살까지 교수로만 일하다 퇴직하려고 하니 ‘내 인생은 실패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젊었을 때 가졌던 꿈을 이루지 못했으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때, 제가 처음 내놓았던 ‘실패학’이 큰 인기를 끌면서 지금까지 열심히 연구하고 있습니다. 지금 제 모습을 보면 괜찮은 선택을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