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車연구소 비밀모임최원석 산업부 자동차팀장 ws-choi@chosun.com
기사 100자평(12) 입력 : 2010.05.18 23:39
▲ 최원석 산업부 자동차팀장 최근 만난 GM 관계자에게 흥미로운 얘기를 들었다.
GM이 중국 합작파트너인 상하이자동차와 함께 만든 기술연구소 안에 중국 엔지니어들끼리의 ‘비밀 모임’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GM은 1997년 상하이차와 합작으로 설립한 상하이GM을 통해 중국에서 차를 만들어 팔고 있다.
GM의 지난 1분기 중국 판매는 62만대로, 같은 기간 미국 판매량 48만대를 앞질렀다.
상하이 시(市)정부 소유인 상하이차는 GM이 중국에서 돈을 벌 수 있게 해주는 대신
GM의 기술을 얻고자 했다.
상하이GM 출범 이후 범아시아자동차기술연구소(Pan Asia Technical Automotive Center)를 만든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영어 약자를 따 ‘페이텍(PATAC)’이라 불리는 이곳에는
중국인 엔지니어만 1500여명이 일한다.
그런데 페이텍 내부에는
미국 엔지니어들이 접근할 수 없는
중국인만의 구역과 비밀모임이 있다는게 GM 관계자 말이었다.
페이텍 고위 임원으로 일했던 그는
중국인 엔지니어들이 일과 후 퇴근하지 않고 항상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이 의아했다고 한다.
그는 중국인 직원들에게 무슨 일인지 물었지만, 그들은 상관인 그에게조차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페이텍 파견 근무를 끝내고 GM 본사로 돌아가기 직전,
송별 파티 자리에서 진실의 일부를 듣게 됐다.
중국인 엔지니어들은 연구소에서
그날 배운 모든 것들을
서로 복기(復記)한 뒤 각각의 정보’퍼즐’을 맞춰 정리하고
이를 공유·보완하기 위해 몰래 모인다는 얘기였다.
개별 기술은 선진 업체를 통해 쉽게 얻을 수 있지만,
전체적인
디자인·설계·제조
프로세스의 노하우를 익히려면 이런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 얘기를 듣고 현대차의 ‘이충구 노트’가 떠올랐다.
이충구 노트란 현대차 연구개발총괄 사장까지 지냈던 이충구씨가 1974년 대리 시절에 자동차기술 노하우를 정리한 것이다.
그는 한국 최초의 고유모델 ‘포니’의 보디(Body) 설계·제조 기술을 배우기 위해 포니의 디자인을 담당했던 회사인 이탈디자인에 파견됐다.
이충구 대리 등 현대차 엔지니어 4~5명은
저녁마다 이 회사 근처 호텔방에 모여 그날 배운 것을 짜맞추고 토의했다.
당시 그가 작성한 기술노트는 1976년 포니의 탄생은
물론, 이후 국산차 기술 발전의 초석(礎石)이 됐다.
중국 엔지니어들의 비밀 모임은 36년 전 ‘이충구 노트’처럼
자동차 강국을 이루려는 중국의 끓어오르는 열망의 일부다.
30여년 전 한국 엔지니어들은
기술 하나 배우려면
갖은 수모를 겪어야 했다.
그러나 중국은 (한국을 포함한) 글로벌 기술인력들이
세계 최대 자동차시장 중국에서 돈을 벌 수만 있다면,
기꺼이 기술을 제공할 준비가 돼 있으니 얼마나 유리한 환경인가.
지난달 베이징모터쇼에서 본 중국 차의 수준은 2년 전 모터쇼 때와는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그 바탕에는 자동차에 대한 열정과 소명(召命)의식으로 무장한 중국 엔지니어들이 존재한다.
조철 산업연구원 베이징분원 수석대표는
“일본·한국에서 이미 본 것처럼
중국 젊은 엔지니어들의
열정, 그리고 그들의 발전과 성공에 대한 의지는 막을 방법이 없다”고 했다.
한국의 자동차산업은 무엇을 생각해야 하나. 그리고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