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 스피드 [중앙일보] 기사
나도 한마디 (0)
2010.10.04 00:21 입력 / 2010.10.04 09:22 수정
관련핫이슈
[2010년] 노트북을 열며[2009년] 노트북을 열며
지난 1일 오전 상하이 훙차오(虹橋)기차역 플랫폼에 기차 한 대가 들어왔다. 머리에 ‘허셰하오(和諧號)’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다. 항저우(杭州)행 고속전철이다. 시험 운행 중인 이 기차의 평균 시속은 350㎞. 자동차로 3시간 거리를 40분으로 줄였다.
최고 속력은 시속 416.6㎞로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
우한(武漢)~광저우(廣州) 노선이 갖고 있던 기존 기록(시속 394㎞)을 깼다.
‘고속전철은 중국의 속도가 곧 세계의 속도’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5년 전까지만 해도 고속철도에 관한 한 불모지대와 다름없던 중국이다. 그런 중국이 이 분야 강국으로 등장한 것이다.
‘시장 줄게 기술 다오(以市場換技術)’식 기술발전 전략의 성과다.
중국은 2004년 이후 지멘스(독일), 가와사키중공업(일본), 알스톰(프랑스) 등 선진 고속전철 메이커들을 적극 끌어들였다. 연간 230억 달러에 달하는 시장이 ‘미끼’였다.
그들에게 한때 70%의 시장을 내줬다.
그러나 서방 기업들은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중국 파트너에 기술을 넘겨야 했고, 중국은 이를 빠르게 ‘소화’했다.
기술이전이 많아질수록 외국업체의 시장 점유율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자국기업이 할 수 있는 일을 외국업체에 호락호락 넘겨주는 나라는 없기 때문이다. 외국업체의 시장점유율은 20% 이하로 떨어졌다.
기술을 갖춘 중국 업체는 곧바로 해외시장으로 나섰다.
중국은 올 초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의 철도 사업을 잇따라 수주했다.
저가 구축 비용이 그들의 강점이다. 업계 최대 관심사인 브라질과 미국 캘리포니아의 고속철 수주전에서도 무시하지 못할 존재다. 그들은 정부의 자금 지원을 등에 엎고 공격적인 수주전을 펼친다. 서방기업으로서는 호랑이를 키운 셈이다.
중국 기업이 ‘소화’했다는 기술은 사실 ‘변조’에 불과하다는 게 서방기업의 시각이다.
도둑맞았다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어쩌지 못하고 있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을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향후 10년 동안 전 세계 고속철도 구축 사업의 절반 이상이 중국에서 나온다.
20%의 시장이라도 지키자는 게 그들의 생각이다.
해외에서도 ‘중국과 함께 가자’는 전략이다. 동남아·중동 등 제3세계 국가에서 높은 수주율을 기록하고 있는 중국과 손을 잡아야 수주 가능성이 커진다는 판단에서다.
지멘스가 사우디아라비아 고속전철 수주전에서 단독 입찰을 포기하고 ‘중국 컨소시엄’에 참여한 게 이를 말해 준다.
‘시장을 이용한 기술 도입→기술 추격을 통한 국내 시장 장악→해외 시장 진출’이라는 중국의 산업발전 패턴은 단계의 차이가 있을 뿐 조선·자동차·정보기술(IT)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5년 만에 세계 최고의 고속전철 속도를 따라잡은 ‘차이나 스피드(China Speed)’로 말이다. 내로라 하는 서방의 기술 기업조차 그 속도에 버거워하며 중국과의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상하이~항저우를 달릴 고속전철을 보며 ‘중국을 이길 수 없다면 그들의 발전에 합류하라’는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츠의 말을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