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저녁 6시 이후’가 선진화돼야 한다
먹고 마시는 모임에 시간 탕진
이런 풍토에서 노벨상 나올까
황주홍 전남 강진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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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주홍 전남 강진군수일본 열도가 떠들썩하다. 이틀 연속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였으니 그럴 만하다. 물리학상은 3명 모두 일본인이었고, 화학상은 일본과 미국의 학자들이 휩쓸었다. 그 바람에 우리 한반도도 떠들썩했다. 내용은 좀 달라서, 왜 우리는 일본처럼 될 수 없느냐는 주제로 요란했다.
일본은 되는데 한국은 왜 안 될까? 결론은 하나다.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간을 쏟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성과는 노동시간에 비례한다.
일본인이 특별히 우수해서가 아니라면 연구한 시간이 더 많았기 때문에 노벨상을 휩쓰는 거다.
그뿐이다.
한국인은 선진국 사람보다 훨씬 덜 연구하고 공부한다.
한국 성인 1인당 독서량이 192개국 중 166위라는 UN 통계가 이를 입증한다.
한국인들은 이 부족분을 인맥과 로비와 ‘배째라’라는 저돌성으로 충당하며 사는 것 같다.
대한민국은 ‘소모임의 박람회장’이다.
한국인의 모임 성격은 딱 두 가지다. 친목모임 아니면 접대모임이다.
친목모임은 과거지향적이다. 같은 곳에서 태어난 이들의 향우회, 같은 해 태어난 이들끼리의 (동)갑계, 교문을 같이 드나든 사람들의 동문회, 미국 같이 다녀온 직장인들의 찬미회, 시청 총무과를 거친 공무원들의 총우회, 배낭여행에서 만난 젊은이들의 배사랑회…등등 우리들의 소모임은 과거 어느 한때의 인연을 매개로 한다.
당연히 주된 활동과 이야기도 미래보다는 과거를 향한다. 접대모임은 안면 터서 청탁하는 것이다. 고위험 사회에서의 ‘보험’들기다. 공식적으론 안 되는 일을 사사롭게 해결하는 모임이다. 거의 매일 저녁 접대하고 접대받는 분들도 부지기수다.
밥 먹고 술 먹고, 1차 가고 2차 가고, 노래방 가고 찜질방 가고, 폭탄주 마시고 건배하고… 공무원이건, 직장인이건, 사업가건, 교수건, 법조인이건, 예술인이건 예외가 없다. 찾아다녀야 할 모임이 너무 많고 만나야 할 사람이 너무 많아 ‘진짜 일’을 할 시간이 없는 나라가 한국이다.
문제는, 다른 선진국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데 있다. 퇴근해서 집으로 직행하는 한국인 드물고, 퇴근해서 1차 2차로 직행하는 선진국 사람 드물다. 발렌타인 한번 안 마셔본 교수가 드문 게 한국인 반면, 발렌타인 한번 마셔본 교수가 드문 게 일본이고 미국이다. 그 차이에서 승부가 크게 갈린다.
낮 시간에 일하는 것은 한국이나 선진국이나 별 차이 없다.
결정적 승부처는 오후 6시 이후의 ‘자유시간’에서다.
긴긴 자유시간을 우리는 과거를 위해, 편법을 위해 소비한다. 선진국 사람들은 마치 낮 시간의 연장처럼 저녁과 밤 시간을 보낸다. 그들의 생활은 밋밋하고 심심하고 외롭다. 재외동포들은 한국을 ‘즐거운 지옥’이라 한다. 야간생활이 어쩌면 이리도 위태위태 박진감 있고 육감적인지 힘들지만 재밌어 죽겠다는 거다. 노벨상은 평생을 외롭게 살아온 장인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내 단언이 틀리기를 바라지만, 한국에선 노벨상이 나올 수 없다. 공부하지 않고 공부할 수 없는 나라에서 무슨 용빼는 재주로 노벨상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우리들의 6시 이후가 ‘선진화’되지 않는 한 노벨상은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일이 될 것이다.
노벨상뿐이랴. 한국과 한국인이 6시 이후의 긴 시간을 이렇듯 철저히 과거 찾기, 인연 만들기에 사용하는 한 조국에 더 큰 희망은 솔직히 어렵다. 한국의 선진국 반열 진입은 6시 이후의 과거몰입적, 인맥제일주의적 행태의 변경 없인 불가능하다. 백약이 무효일 것이다. 이 인식이 일본의 노벨상 독식에 따른 우리들의 요란한 반성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입력 : 2008.10.20 22:09 / 수정 : 2008.10.20 22: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