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거리의 아이들을 구원하다
15일 공연을 앞두고 오픈 리허설을 가진 시몬 볼리바르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을 돌리고 앉은 이가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이다.
“오케스트라에서 아이들은 인내심과 협동심, 연민과 공동체의 가치, 인생을 배웁니다. 악기를 다루면서 더 잘하고 싶다는 열망도 생겨나지요. 음악가가 안 되어도 상관없습니다. ‘연주하고 싸우는 것 (To Play and To Fight)’. 이것이 우리 모토입니다. 음악을 통해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자기 자신과 싸우자는 것이지요.”
남미 베네수엘라에서 반평생 음악을 통해 빈민가의 아이들을 구원해온 마에스트로는 “33년 전 뿌린 첫 씨가 오늘날 나무가 되었다”고 감회에 잠겼다.
베네수엘라가 낳은 세계적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과 시몬 볼리바르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14, 15일 이틀간 내한 공연을 가졌다. 오늘날 이들이 있기까지는 33년 전 오케스트라를 창단하고 소외된 아이들에게 무료로 음악을 가르치는 국가 조직 ‘엘 시스테마’를 만들어 이끌어온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69) 박사를 빼놓을 수 없다.
아브레우 박사는 15일 성남아트센터에서 음악교사 문화예술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문화예술 교육을 주제로 강연회를 갖고 ‘엘 시스테마’의 경험을 들려주었다.
▲ 동아닷컴 정주희 기자
지금까지 ‘엘 시스테마’를 거쳐 간 아이들은 27만 5000명. 현재 베네수엘라 전국에 120여개의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만들 정도로 거대하게 성장했지만, 그 출발은 1975년 어느 날 수도 카라카스의 한 지하주차장에 모인 11명의 아이들이었다.
경제학자이자 음악가로 베네수엘라 국가경제원 계획 및 조정 관리를 맡기도 했던 아브레우 박사는 빈민가 아이들을 범죄와 마약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총 대신 악기를 들게 했다. 그는 클래식 음악 교육자로서의 딱딱한 훈육 대신 “열심히 익혀서 같이 멕시코로 공연을 가자”고 아이들을 북돋았다고 한다.
다른 삶을 살고 싶어도 기회를 갖지 못했던 아이들은 아브레우 박사의 자선 레슨을 제 발로 찾아왔고 11명은 다음날 25명, 그 다음날 46명으로 불어나기 시작했다. 불어나는 제자들을 더 이상 지하 주차장에서 가르치기가 어려워지자 아브레우 박사는 정부에 탄원서를 냈고 간신히 지원을 얻어 몇 달 뒤 시몬 볼리바르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창단되기에 이른다. 멕시코 공연이 빈 말이 아니게 된 것이다. 4년 뒤인 1979년에는 ‘엘 시스테마’를 설립해 클래식 음악 무료 교육을 조직적으로 펼쳐나갔다.
베네수엘라에서 빈민가 아이들에게 클래식 음악을 가르치는 ‘엘 시스테마’ 설립자인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
‘엘 시스테마’ 설립 당시 베네수엘라에는 오케스트라가 달랑 두 개 뿐이었다고 한다. 클래식 음악이 부유층의 고상한 취미 정도로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론적 기초부터 차근차근 가르치는 것도, 1대1 개인수업도 아니고 처음부터 음악을 ‘함께’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던” 아브레우 박사의 교육 방식은 혁명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는 “아이들을 가르칠 때 전통적, 체계적 교육방식을 따랐더라면 지금보다 더 시간이 걸렸을 것”이라면서 “이론 대신 실제에 기반한 시스템이 우리의 강점이다. 너무 부족한 것이 많아 일단 가능한 악기부터 시작하고 보는 게 필요했다”고 회고했다.
아이들은 이르면 2살 때부터 ‘엘 시스테마’에서 타악기를 두드리고 함께 놀면서 리듬감을 배운다. 가르칠 사람도 모자라 먼저 배운 아이들이 나중에 들어온 아이들을 가르쳤다. 15일 공연에 나선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그렇게 ‘선배’들에게 배운 세 번째 세대 출신이라고 했다.
아브레우 박사는 “50년대에 내가 음악을 배울 때는 1대1 레슨을 받고 혼자 공부했을 뿐 함께 생활하는 기쁨은 체험하지 못했다”면서 “베네수엘라에서는 음악을 배우는 것이 폭력과 마약으로부터 벗어나는 수단이며, 거리의 갱단과 극과 극을 이루는 오케스트라를 통해서도 아이들이 함께 어울리고 소속감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처럼 ‘엘 시스테마’는 전문 음악인 양성보다 빈곤의 악순환을 깨뜨리려는 사회운동 쪽에 무게중심이 실려 있다.
아브레우 박사는 “가난하면 교육받을 기회를 얻지 못해 계속 가난하게 사는 빈곤의 악순환이 이어지지만, 오케스트라의 일원이 됨으로써 아이들은 물질적으로는 가난해도 정신적으로 풍요해질 수 있다. 꿈을 품고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싸우기 시작하게 된다”고 들려주었다.
더 나은 삶을 향한 싸움에서의 간판 성공사례는 이번에 시몬 볼리바르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내한한, 미국 LA필하모닉의 최연소 예술감독으로 임명된 구스타보 두다멜, 그리고 베를린 필하모니의 최연소 더블베이스 주자인 에딕슨 루이스다.
아브레우 박사는 “많은 아이들이 작곡가 감독 밴드 교사로 진출하고 있으며 브라질 에콰도르 등 다른 남미 국가에도 파견돼 ‘엘 시스테마’의 노하우를 전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교사들을 교육시키는 ‘서브-시스테마’도 운영하고 있으며 살사 대중음악도 교육 내용에 포함시켜 더 다양한 기량을 가진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그의 계획이다.
내년 10월에는 UN 청소년 음악단 네트워크 구성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아브레우 박사는 “전 세계 청소년들이 한 무대에서 평화를 위해 연주하는 자리를 만드는 것이 소망이며 이번 아시아 투어도 일회성 행사에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이 자리에서 부산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를 베네수엘라에 공식 초청한다”고 말해 박수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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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회에서는 ‘엘 시스테마’의 현재를 보여주는 동영상이 상영됐다. 이 영상에서 베를린 필하모니 최연소 더블베이스 주자인 에딕슨 루이스는 가난한 소년이었던 자신에게 음악이 어떤 힘을 불어넣었는지를 이렇게 들려주었다.
“…낮은 음을 연주할 때면 나는 신을 느낀다. 신의 분노, 어둠, 위대함, 그리고 힘을 느낀다. 우리 모두가 갖기를 원하는 힘. 이 힘이 내 손, 내 악기, 내 영혼에서 비롯된다는 느낌이 나로 하여금 음악에 집중하게 만든 원동력이다. 나는 조국에 책임감을 갖고 있다. 독일에서 상류층의 삶을 살 순 없다. 나는 독일에서 배운 것을 돌려주고 아이들로부터 더 배우기 위해 수시로 조국에 돌아간다.”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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