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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억 공무원-고창군청 김가성
작성자
고창
작성일
2009/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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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억 공무원 김가성의 ’설득’

“저 같은 촌놈이 무슨 얘기가 되나요?”

9일 만난 고창군청 김가성(48) 계장은 고창군에 관광차 다녀간 식품연구가를 찾아 서울에 올라온 길이었다. 고창 특산품 개발에 대한 조언을 구하려고 명함을 챙겨두었다고 한다. 만나는 사람마다 아이디어를 구하고 지역 자랑에 열을 올리는 그는 천상 ‘고창 공무원’이었다.

2004년 4월 처음 열린 ‘고창 청보리밭 축제’는 예산 3000만 원을 들여

무려 180억 원에 이르는 수익을 창출한 지역 축제의 ‘명물’이다.

당시 7급 공무원이었던 김 계장은 청보리밭 축제 기획으로 공무원 사회에 ‘마케팅 바람’을 불러일으키며 ‘180억 공무원’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 성과로 2004년 국무총리 모범공무원상, 2008년 한국신지식인협회 최고신지식인상을 탄 그는 지금은 마케팅팀 유통판매촉진담당 일을 하면서 지역 농특산품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말단 공무원 위치에서 지역사회를 바꿔놓은 축제 기획 경험을 지난해 11월 ‘180억 공무원’이라는 책으로 펴내기도 했다.

인터넷서점의 독자 리뷰에는

“나태함을 돌아보게 되었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솟는다”는 평이 잇따랐다.

고루할 수 있는 현장 공무원의 이야기가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한 것이다.

평범한 공무원인 그가 ‘대형 사고’를 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김 계장은 축제가 열리기까지 가장 힘들었던 점으로 동료 공무원부터 지역주민까지 축제의 필요성을 설득하던 일을 꼽았다.

스스로 인상이 무뚝뚝하고 말투도 어눌하다고 말하는 그의 ‘설득의 힘’이 어떤 것인지 궁금해졌다.

● “보리밭을 빌려 주십시오.”

김 계장이 청보리밭 축제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은 2002년 6월 월드컵 당시 스페인과 파라과이전을 관람하던 때였다.

“축구장의 잔디밭을 보다 보니까 저절로 어릴 적 보리밭길을 걷던 생각, 뒹굴던 생각이 나고, 그냥 선수들을 따라 축구장에 뛰어들고 싶어지더라고요.”

그 때 머리가 번쩍했다.

고창군에는 이미 30여만 평에 달하는 광활한 보리밭이 있지 않은가.

그 보리밭에서 축제를 열면 고향이 그리운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지 않을까.

전남 고창군 공음면 선동리 일대의 푸른 보리밭은 사실 ‘학원농장'(鶴園農場· 학이 노는 동산이라는 뜻)이라는 개인 농장이었다.

김 계장은 청보리밭 축제 아이디어를 들고 농장의 주인인 진영호 사장을 찾아갔다. 소박한 전원생활을 꿈꾸던 진 사장 부부는 묵묵부답이었다.

그래도 한 번, 두 번, 세 번 , 네 번… 김 계장의 방문이 계속 이어지자 마침내 진 사장은 “자네 참 못 말리겠구먼…어떡하자는 것인지 얘기나 한 번 들어보세”하고 버럭 큰 소리를 냈다.

김 계장은 진 사장과 지역 발전을 연구하는 유정규 박사 앞에서 축제 계획에 대한 브리핑을 했다.

“진 사장 부부는

축제로 돈을 벌어보겠다는 사람들이 아니었으니까

지역 발전을 위한 자긍심을 북돋는 방향으로 설득을 했어요.

여기에 전문가의 축제 성공 가능성에 대한 분석이 더해지자

진 사장 부부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십고초려(十顧草廬) 끝에 허락이 떨어졌죠.”

▲동아일보 우경임 기자

● 거울 앞에서 수십 번씩 브리핑 연습을

보리밭 주인은 설득해놨지만 이젠 군청 내부 결재 라인을 통과할 수 있을지가 막막했다.

상명하달로 움직이는 공무원 조직 안에서 아무도 가지 않던 길이었다. 기획안이 군수에게 가기까지 결재 받을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우선 ‘기획안’부터 빈틈없이 만들자고 생각했다.

‘팜스테이’ ‘그린 투어리즘’ 등 외국 선례들을 수집했다. 축제, 지역 특산품 관련 자료 등을 모은 신문 스크랩북만 15권 정도 된다.

휴일이면 자비로 전국의 크고 작은 축제를 답사했다. 강원 봉평 효석 문화제, 경기 이천 도자기 축제, 충남 보령 머드 축제 등 타 지역 축제의 성공담과 실패담을 수집했다.

“자료를 다 모은 다음 거울 앞에 서서 브리핑 연습을 수십 번 씩 한 다음에 결재를 받으러 갔어요. 그렇게 준비해서 갔어도 ‘수백 년 지어온 보리농사인데 새삼 관광객들이 오겠어?’ ‘정신 나갔군’이라는 소리가 뒤통수를 치곤했죠. 그래도 포기가 되지 않더군요.”

2002년 6월, 월드컵을 관람하다 축구장 푸른 잔디를 보고 아이디어를 떠올린 뒤 꼭 1년째 되던 날. “그래, 열심히 한 번 해 보게.” 마침내 이강수(56) 고창군수가 ‘청보리밭 축제’ 기획안에 최종 사인을 했다.

● 좌천 인사 … 주위 손가락질… 그래도 하고 싶었다

결재가 떨어지자 김 계장은 축제가 열릴 공음면사무소로 발령을 내달라고 자청했다. 승진을 포기하고 면사무소로 내려갔지만 그를 반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야근에 휴일근무까지 해야 했으니 달가울 리가 없었다.

“8, 9월 불볕더위 아래 작업복 차림으로 출근해서 공공근로 인부들과 함께 주변 정리를 하니 보는 사람마다 미쳤다고 손가락질을 했죠. 아무리 열심히 해도 본전도 못 찾는 것이 공무원이라고 진지하게 충고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가족들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주말마다 전국의 축제를 따라 다니던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좋아했지만 “이런다고 월급이 더 나오느냐”며 현실적으로 추궁하는 아내 앞에서는 할 말을 잃었다.

이런 동료와 가족을 끝내 설득할 수 있었던 건 그가 보여준 열정이었다. 김 계장은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축제를 열고 싶어 그저 엉덩이가 들썩거렸다”고 말한다. 긍정적 에너지가 서서히 변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 복분자주 100병 직접 담아 선물용으로

축제를 열 준비를 모두 마친 뒤. 축제를 홍보하는 일만 남았다. 하지만 예산은 고작 3000만원 이었고, 일할 사람은 김 계장 혼자인 열악한 상황이었다.

“홍보를 위해 ‘뇌물’을 준비했죠. 집에서 직접 복분자주를 100여 병 담갔어요. 비록 투박한 페트병에 담았지만 받는 사람들은 모두 좋아했어요. 여행작가, 방송작가, PD 등을 찾아 뛰어다니며 홍보를 부탁했죠.”

김 계장은 이 ‘뇌물’용 복분자주를 나중에 ‘선연 복분자주’라는 고창 특산품으로 개발했다. 당시 김 계장은 명함 뒤에 복분자주가 정력에 좋다는 동의보감 문구를 새겨 갖고 다녔다. 복분자주 못지않게 명함을 찾는 사람도 많았고 복분자주 주문이 밀려들었다. 그의 설득력이 또 한 번 힘을 발휘한 순간이다.

● 보리밭 5000그릇이 순식간에 동 날 정도로 인파 몰려

“부처님, 예수님, 천지신명님… 이번 한 번만 저를 도와주십시오.”

2004년 4월 ‘제 1회 고창 청보리밭 축제’가 열리는 날. 찢어진 행사 천막이 휘날리는 고요한 보리밭에 홀로 서 있는 악몽을 매일 꾸던 터였다. 도대체 관광객이 몇 명이나 올 것인지 그의 입은 바짝 타들어갔다. 그러나 막상 개막식이 시작되자 준비했던 보리밥 5000 그릇이 동이 날 정도로 사람이 몰려들었다.

“눈물이 주르륵 흘렀어요. 2년간의 고생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데 나도 모르게 울고 있더라고요.”

그가 거울 앞에서 혼자 브리핑 연습을 하는 걸 보고 아빠가 좀 이상해진 것 같다면서 자기들끼리 손가락을 머리에 대고 빙빙 돌린 적도 있던 아이들이 이제는 아빠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을 지켜보는 마음도 흐뭇했다.

● 설득력의 비결은 열정과 정확한 자료

설득력의 비결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도와주신 분들이 많은데 혼자 주목을 받으면 안 된다”면서 거듭 대답을 피하던 김 계장은 “정확한 자료를 바탕으로 열정적으로 미래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요약했다. “상대를 섬기는 자세로 대해야지 계몽을 하겠다고 나서면 안 된다”고 도 했다.

그러면서 민원인의 의자에 황금색 방석을 깔아두었던 일화를 들려주었다.

“진짜 황금방석은 아니었지만 여기 앉은 분이 왕이라고 생각하니 자세가 완전히 달라지더군요.

항상 말을 경청하게 되었고 화를 내는 민원인도 줄어들었습니다.”

그의 수첩에는 다음에 추진할 아이디어가 가득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땐 이파리가 빨갛다, 노랗다, 파랗다 이렇게 낱말 바꾸기를 하며 혼자 브레인스토밍을 한다”고 했다.

김 계장의 다음 아이디어를 살짝 공개하자면, 서정주 시인, 정운천 장관 등 명사들만 태어난다는 고창군 부안면 인촌마을에 산부인과와 연계한 관광 상품을 개발하는 것이다.

우경임기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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