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어발’ 적자 회사 떠맡은 사장님 “위기는 기회다… 하지만 어떻게?” [IGM과 함께하는 케이스 스터디]
‘핵심역량{core competency)’
① 찾아내라
② 확장하라
③ 진화하라
세계경영연구원(IGM) 최철규 부원장·조성진 연구원
최근 3개월간 가장 많이 언급된 문구는 뭘까? 아마도 ‘위기는 기회’라는 말이 아닐까 싶다. 청와대 회의실에서도, 사장들의 연설문에도, 신문에도 이 말이 반복, 또 반복되고 있다.
하지만 솔직해지자. CEO인 당신은 정말 이 말에 공감하는가?
말로는 위기는 기회라고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버티기만 해도 성공’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지는 않은가?
그러나 진정 위대한 기업들의 전략은 남다르다.
모두가 움츠리고 있는 위기 상황에서 오히려 성장을 위한 ‘베팅’을 한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이 그랬다.
오일 쇼크, 9·11 테러로 미국 항공업계가 최악의 위기를 맞았을 때
이 회사는 가격 경쟁력을 내세워 무서운 성장을 이뤘다.
이제 남은 이슈는 하나다. 바로 ‘어떻게’이다. 가상의 사례를 통해 그 ‘어떻게’에 대해 알아보자.
▲ 일러스트=박상훈 기자 ps@chosun.com 1. 첫 번째 위기- ‘문어발’의 비극
Q. 1981년 어느 여름날, 모 대학병원의 장례식장. 상복을 입은 마나바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아버지는 20년 전 ‘다잘해 출판사’를 설립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버지의 사업은 순항했다.
하지만 새롭게 기획한 아동전집이 시장에서 외면받은데다, 오일쇼크까지 겹치면서 경영 사정은 급속히 악화됐다. 아버지는 참고서·사전·소설·만화·수필·육아서 등 돈 될만한 책을 닥치는 대로 만들었다.
건강을 돌보지 못한 아버지는 쓰러졌다. 마나바씨는 젊은 나이에 회사를 물려받게 됐다. ‘어떻게 살려야 할까?’
#해결책 1.핵심역량에 집중하라
손님이 미어터지는 음식점은 이 메뉴, 저 메뉴 잡다하게 다루지 않는다.
한두 가지 핵심 메뉴로 승부한다.
기업 경영도 마찬가지다.
경영학자들이 1995년부터 2004년까지 10년간 매년 8% 이상의 지속적인 성장을 한 글로벌 기업이 몇 개인지 조사해 봤다.
결과는 조사 대상인 전체 6870개 기업 중 225개. 3%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이런 기업들이 도대체 몇 개의 핵심사업을 갖고 있을까? 핵심사업이 오직 하나인 기업이 무려 74%다. 게리 해멀 교수가 말했듯 ‘핵심역량(core competency)’에 집중하라는 메시지다.
일본 혼다는 자동차 외에도 오토바이와 로봇, 소형 비행기, 심지어 잔디 깎는 기계, 급수 펌프도 만든다. ‘문어발’이라고 비판하기 전에 이들 제품의 공통점을 생각해 보자.
바로 ‘강력한 엔진’이 필요한 제품이라는 점이다.
혼다의 핵심역량은 결국 엔진을 만드는 기술이다.
다시 마 사장의 고민으로 돌아가 보자.
‘우리 회사만 갖고 있는 능력, 그러면서도 다른 회사는 모방할 수 없는 것,
도대체 그게 뭘까?’
마 사장의 머릿속에 갑자기 장례식장의 모습이 떠올랐다. 식당 한쪽에 옹기종기 앉아 있던 빵떡모자를 쓴 아저씨들. 모두 내로라하는 만화가들이었다.
생전에 아버지는 생활이 어려운 만화가들을 개인적으로 도왔고, 많은 만화가들과 돈독한 관계를 구축했다.
또 뭐 없을까? ‘맞아! 우리 회사에는 다른 출판사에는 없는 A급 스토리 작가들이 있지. 스토리 작가들이 그럴싸한 이야기를 만들고 만화가들이 그림으로 포장한다면 분명 경쟁력이 있을 거야!’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마 사장은 회사의 핵심역량을 ‘만화’라고 정의했다.
나머지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우선 회사 이름부터 바꿨다. 다잘해 출판사에서 마나바코믹스로. 여러 종류의 책들을 접고 만화에만 집중하니 관리 비용과 제작 비용이 절감됐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만화책을 보는 사람들이 늘면서 마나바코믹스는 성공 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2. 두 번째 위기- ‘시장이 변했다’
Q. 1997년 가을. 마나바코믹스는 어느덧 매출 500억원이 넘는 튼실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너도나도 만화시장에 뛰어들며 경쟁이 치열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외환위기가 터졌다. 마 사장은 신규 사업에서 해결책을 찾기로 결심했다.
그동안 쌓아둔 현금도 꽤 있었다. ‘만화랑 비슷한 게 또 뭐가 있더라? 그나마 무협지가 좀 비슷하지 않나? 대학 때 내가 무협지를 거의 폐인 수준으로 좋아했었지. 나랑 잘 맞는 아이템인 것 같기도 한데, 돈이 되려나?’
#해결책 2. 인접 영역으로 확장하라
경쟁자가 넘쳐나고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를 때 많은 기업들은 인접 영역, 즉 비슷한 시장으로의 확장을 선택한다.
하지만 세계적 컨설팅사인 베인앤컴퍼니에 따르면 확장을 시도한 기업들 중 성공한 기업은 27%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을까? 베인앤컴퍼니는 세 가지를 고려하라고 말한다.
①인접 영역
인접 영역을 고려하라는 말은 시장을 최대한 넓게 정의한 후에 확장할 영역을 결정하라는 뜻이다.
코카콜라는 콜라 시장에서의 시장 점유율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오히려 ‘위(胃) 점유율(share of stomach)’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한다.
소비자들이 하루에 마시는 모든 것들 중에서 코카콜라의 제품이 차지하는 비율을 계산한 것이다. 다시 말해 사업 영역을 단순한 콜라 시장이 아닌 음료 시장으로 정의한 셈이다.
그러다 보니 웰빙 바람이 불어 콜라 시장이 위축되었을 때도 스포츠음료(파워에이드), 과일주스(쿠우), 커피(조지아)로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었다.
마 사장의 사례로 돌아와 보자. 마나바코믹스가 속한 시장을 최대한 넓게 정의해보자.
결국 둘 중 하나다. 출판시장 또는 만화시장이다.
만약 출판시장이라고 정의한다면 인접 영역은 무협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시장을 만화 관련 시장으로 본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만화책과 관련해 돈이 오가는 시장은 또 뭐가 있을까? 동네마다
약방의 감초처럼 꼭 하나씩 있는 만화방이 떠오를 것이다.
이제 선택만이 남았다.
무협지와 만화방, 둘 중 뭐가 좋을까?
②핵심으로부터의 거리
이제 ‘핵심으로부터의 거리’를 따져볼 때다.
새로운 사업을 벌일 때
기존 자산을 얼마나 재활용할 수 있는가를 계산해 보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치킨집에서 새로운 메뉴로 피자와 맥주, 둘 중 하나를 내놓으려 한다.
만약 피자를 새 메뉴로 내 놓는다면 기존의 배달 시스템만을 활용하게 된다.
하지만 맥주를 판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치킨을 먹는 기존 고객에게 일종의 보완재로 판매할 수 있고, 매장이나 배달과 같은 기존의 유통 시스템을 모두 활용할 수 있다.
결국 치킨집에선 피자보다 맥주를 파는 게 핵심과 더 가깝다는 뜻이다.
당연히 시너지 효과가 커진다.
마 사장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무협지를 새로 낼 때 활용할 수 있는 기존 자산은 유통 채널 정도밖에 없겠네.
만약 만화방을 열면? 마나바코믹스의 기존 고객들이 단골이 되지 않을까? 유명 만화가를 불러 저자와의 대화를 열면 사람들이 몰리겠군. 만화방에 들어갈 책도 원가에 얻을 수 있겠지.
출판사 매출에도 도움이 되고….’그는 만화방을 선택했다. 명동·강남 등 번화가에 ‘만화카페’라는 대형 만화방을 차렸다.
동네 만화방과는 달리
흡연 공간을 실외에 배치하고,
PC도 갖다 놓고,
인테리어도 세련되게 꾸미는 차별화 전략을 썼다. 만화카페는 장안의 명물이 됐다.
③반복성
이제 확장을 위한 세 번째 키워드를 활용할 때다.
바로 ‘반복성’이다.
나이키는 스포츠용품 시장에 뛰어들 때
항상 최고의 스타를 광고 모델로 써서 브랜드를 알린 뒤
신발부터 만들고,
다음은 의류,
마지막으로 장비를 만든다.
한번 거둔 성공의 법칙을 그대로 반복, 활용한다.
그렇다면 마나바 사장은 어떻게 반복성을 활용할 수 있을까?
간단하다.
만화카페의 성공방식을 반복하면 된다.
어떻게? 마 사장은 ‘국내 최대의 만화출판사가 운영하는 만화방 프랜차이즈 사업’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외환위기로 실직한 사람들의 문의 전화가 쇄도했다. 시내 곳곳에 만화카페가 들불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3. 세 번째 위기- ‘시대가 바뀌었다’
Q. 2009년 봄. 만화카페는 이미 구시대의 유물이 됐다.
인터넷 때문에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만화방에 오지 않는다. 더구나 미국발 금융위기로 전 세계가 불황에 빠지면서 사람들은 공짜 아니면 쳐다보지도 않는다. 마 사장은 고민에 빠진다.
‘그렇다고 만화를 버릴 순 없어. 굳이 만화책이 아니더라도 만화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해결책 3. 핵심을 재정의하라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뀔 때, 기업은 바꿔야 한다.
무엇을? 자신의 핵심역량을.
화약을 만들던 듀퐁(DuPont)은 1900년대 초반 다이너마이트가 나타나면서 화약 수요가 줄자 화학섬유 회사로 변신했다.
또한 2000년대 들어 화학섬유 제품의 성장이 둔화되자 화학 신소재 및 바이오 회사로 탈바꿈하고 있다. 이처럼 환경의 변화에 따라 핵심역량을 바꾸는 것을 ‘재정의(再定義)’라 한다.
재정의를 잘하는 방법은 하나다.
바로 ‘숨은 자산(hidden asset)’을 활용하는 것이다.
숨은 자산이란 기업이 가지고 있는 것들 중에서 아직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 자산을 말한다.
TV를 보던 마 사장의 시선이 화면에 꽂힌다.
스파이더맨이 하늘을 날고 있다.
‘바로 저거야! 만화 속 캐릭터를 파는 거야!
만화책은 죽어도
그 안에 나오는 주인공은 죽지 않았어.’ 마 사장이 발견한 숨은 자산은 바로 ‘캐릭터’였다.
마 사장은 회사 이름을 당장 마나바엔터테인먼트로 바꿨다.
그리고 라이선스 사업과 캐릭터 사업을 시작했다.
왕년에 인기를 끌었던 만화책은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돼 잇따라 히트를 쳤다. 또 여기에 등장했던 캐릭터는 장난감·문구·비디오 게임 등에 활용돼 500억원의 추가 매출을 올렸다.
입력 : 2009.02.27 13:14 / 수정 : 2009.02.27 1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