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첫 트레블 꿈꾸는 포항 파리아스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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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
2009-11-18 20:10 2009-11-18 21:06 여성 | 남성
세르지오 파리아스 감독.
“짧게! 빠르게!”
볼을 오래 잡는 선수에겐 어김없이 불호령이 떨어졌다.
훈련장은 그의 목소리로 쩌렁쩌렁 울렸다.
고참과 신인, 국내 선수와 용병의 구별은 무의미했다.
붉은 유니폼을 입은 그들은 이미 마법사의 매직에 빠져 하나가 됐다.
선수들에게 주문을 외우는 그에게 마법의 비결을 물었다.
그는 잠시 생각한 뒤 이렇게 말했다.
“비결이 없는 게 비결 아닐까요?”
●’단계’ 밟아나가는 원칙주의자
트레이닝복이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사람. 프로축구 포항 스틸러스의 세르지오 파리아스 감독(42) 얘기다. 그를 17일 오후 포항 클럽하우스에서 만났다.
파리아스 감독의 2009년은 눈부시다. 그가 이끄는 포항은 컵대회 우승컵을 들어올렸고 아시아 챔피언스리그도 제패했다. K리그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포항은 여기서 우승하면 트레블(3관왕)을 달성한다.
그는 2005년 포항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꾸준히 기대 이상의 성적을 냈다. 덕분에 그에겐 ‘매직’이란 별명이 붙었다. 그가 생각하는 승승장구의 비결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파리아스 감독은
“비결이 없다”고 했지만
인터뷰를 하면서 답은 나왔다.
그는 자신의 축구를
‘단계’라는
한마디로 정리했다.
훈련은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
필요한 순간 집중 훈련으로 중요한 고비마다 최상의 경기력을 끌어낸다는 것이다.
그는 “쉬는 것도 전략”이라고 했다.
선수들에게 휴식을 얼마나 주고 체력, 전술훈련과 연습경기 일정 등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데 보통 감독들의 두 배 이상 시간을 할애한다.
파리아스 감독은
“부상 선수의 재활, 장기적인 팀 정비 계획 등을 짤 때도
언제나 단계를 지키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포항 박창현 코치는 “6월 중순까지 K리그 10위(1승 7무 2패)였던 포항이 이후 13승 4무 1패를 거두며 2위까지 순위를 끌어올린 건 감독의 치밀한 훈련 계획 덕분”이라고 귀띔했다.
●사생활은 있어도 그라운드에서 ‘개인’은 없다
파리아스 감독은 선수들의 사생활에 관여하지 않는다. 선수들이 클럽하우스에 외제차를 끌고 와도, 자유 시간에 외출해 여자친구를 만나도 그는 “선수 이전에 인간”이라며 신경 쓰지 않는다.
고참 선수 등과 면담을 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특별대우 한다는 인상을 주기 싫은 이유도 있지만 그것마저 사생활 침해라고 생각해서다.
그러나 정해진 규정을 벗어날 때는 가차 없이 채찍을 든다.
처음에는 좋게 얘기한다.
두 번째는 따끔하게 지적한다.
세 번째는 상대를 하지 않는다.
세 번째 단계까지 오면 고참이든 인기 선수든 포항 선수 명단에 그의 이름은 더 이상 없다.
파리아스 감독은 “사생활을 터치하지 않는 게 선수를 방치한다는 건 아니다”고 했다.
실제 그는 2군 선수부터 용병까지
체력 훈련을 얼마나 하는지,
컨디션이 어디까지 올라 왔는지 등 모두 꿰고 있을 정도로 부지런하다.
파리아스 감독에게 선수로서 ‘개인’은 없다.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조직력을 저해하는 선수는 주전이 될 자격이 없다고 그는 믿고 있다.
포항은 일부 선수들의 경기력이 떨어지면 합숙훈련 등으로 연대 책임을 진다. 개인의 사생활이 보장되는 포항이 다른 팀을 압도하는 조직력을 갖게 된 건 이런 이유에서다.
●”히딩크는 4강 감독, 난 그와 다르다!”
파리아스 감독이 원하는 건 균형 있는 축구다. 그는 포항이 공격과 수비의 조화가 60%수준에 올라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기준에 가장 가까운 팀으로 브라질의 상파울루를 들었다. 이상적인 선수로는 카카(레알 마드리드)를 꼽았다.
그는 대표팀 사령탑이 되고 싶다는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2014년 또는 그 이후라도 대표팀 감독으로 꼭 월드컵 무대를 밝고 싶다고 밝혔다. 한국 축구에 익숙하고 애정이 많아 한국 대표팀 감독이 ‘희망 1순위’라고도 했다.
파리아스 감독은 최근 ‘히딩크 매직’으로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의 4강 신화를 이끈 거스 히딩크 러시아 대표팀 감독(63)과 자주 비교된다. 그는 “경기 상황에 따른 유연한 반응 능력, 단기전에 강한 부분 등을 보고 그런 말이 나오는 것 같다.
나로선 세계적인 명장과 비교돼 영광”이라며 웃었다. 하지만 정색을 하더니 한 마디 덧붙였다. “그런데 히딩크는 (월드컵) 4등 감독이지 않나. 4등이라는 건 나와 어울리지 않는 순위인데….”
포항=신진우기자 nice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