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품격 기사
나도 한마디 (21)
2010.01.03 07:50 입력 / 2010.01.03 11:30 수정
시인은 사회의 격조를 관리한다. 시는 국가의 품격을 상징한다. 로버트 프로스트는 미국의 대표 시인이다. 1963년 1월 그는 숨졌다. 아홉 달 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그를 기리는 추모 연설을 했다. 프로스트가 교수로 있었던 명문 앰허스트 대학(매사추세츠주)에서다. 그 대학 프로스트 도서관에 가면 케네디의 연설문이 전시돼 있다. ‘대통령과 시인’이라는 제목으로다.
그 연설문은 국가의 품격과 정체성에 대해 새롭게 접근하고 있다.
국가의 브랜드 이미지, 비전에 대한 신선한 통찰력을 보여준다.
케네디는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는 길’을 인용한 뒤 이렇게 말했다. “한 나라는 그 나라가 배출한 인물에 의해서뿐 아니라, 그 나라가 존경하는 인물, 기억하는 인물을 통해서 그 존재를 드러낸다.” (A nation reveals itself not only by the men it produces but also by the men it honors, the men it remembers.)
어느 나라, 어느 시대마다 위인과 천재를 내놓는다. 하지만 그들을 기억하고 존경하는 정도와 방식은 다르다. 시인에 대한 대통령의 추모는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케네디의 프로스트 기억은 미국의 격조를 과시했다.
2010년은 과거를 통해 미래를 다듬게 한다.
망국(경술국치 100년), 전쟁(6·25 60년), 민주화(4·19 50년, 5·18항쟁 30년), 산업화(경부고속도로 완공 40년)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오는 해다. 10년 단위로 전개된 역사의 이 같은 역동성은 세계사에 전례 없다.
선진국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은 30개국이다. 그중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신생 독립국은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 나머지 국가는 대부분 20세기 초반에 선진국이었고, 세계 제패의 경험을 갖고 있다.
한국의 성취는 기존의 이론과 경험을 바꿔놓았다.
종속이론은 20세기 한 시대를 풍미했다. 80년대 초반 한국에서도 드셌다. 그 핵심은 중심부 국가가 주변 후진 국가를 착취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산업화 기적은 종속이론을 잠재웠다. 한국의 민주화는 그 이론의 퇴출에 힘을 보탰다. 페르난두 카르도주는 종속이론의 대부다. 96년에 그는 브라질 대통령이었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을 만났을 때다. 그는 “나의 이론에 모순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많이 수정했다”고 고백했다.
대가는 공개적으로 반성했다. 그러나 종속이론에 심취했던 한국의 지식인 중 일부는 학문적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 이론에 어설프게 매달려 있다.
그들 중 대다수가 1류 좌파 아닌 3류 좌파다.
3류의 속성은 우물 안 개구리의 폐쇄성과 퇴행이다.
한국의 현대사는 무수한 인물을 배출했다.
정치·경제·문화 모든 분야에 영웅과 천재들이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그들을 제대로 기억하지 않았다. 업적을 미래의 비전으로 삼고, 과오를 반면교사로 삼는 균형감각이 부족했다. 허물을 들추는 쪽에 익숙했다.
3류 좌파들은 그런 사회적 인식과 습관을 교묘하게 조성했다.
한 인물의 약점을 키워 분란과 비관을 퍼뜨려 왔다. 그 분위기는 젊은 세대들이 현대사 영웅에게 다가가는 것을 막았다. 그 영웅들을 신세대의 롤 모델로 삼는 것을 주저하게 했다.
새해 첫날 이명박 대통령은 국립묘지에 갔다. 이승만(건국)·박정희(산업화)·김대중(민주화) 전직 대통령 3인의 묘소를 참배했다. 현직 대통령의 그런 장면은 처음이다. 역사의 계승과 통합, 새 도약의 의지 표시다.
우리 현대사의 위인을 존경하는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 영웅과 천재를 기억해야 한다. 국가의 품격은 그 풍토에서 세련되고 높아진다. 그것은 긍정과 진취의 사회 분위기를 보장한다. 그 풍토는 역사 진운의 상상력과 비전을 높인다. 그것이 세계의 한복판으로 갈 수 있는 조건이다.
중앙일보 편집인
박보균 기자 [bgpar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