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1500개 재래시장 가운데 한 해 50곳이 문을 닫습니다. 대형마트는 손님들로 넘쳐납니다. 변신하지 않는 재래시장에는 미래가 없습니다.”
11일 오후 2시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 현대시장 입구의 한 교회. 30대에서 7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학생’ 40여 명이 강의를 경청하고 있다. 전대를 허리에 두르고 온 여성, 배달을 마치고 목장갑을 낀 채 헐레벌떡 들어오는 남성도 있다.
이 수업은 동대문구가 중소기업청 산하 시장경영진흥원과 함께 전통시장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마련한 ‘상인대학’이다. 이날 강의 주제는 ‘점포 경영과 마케팅 전략’. 강단에 선 전경련 중소기업경영자문위원 백영헌(64) 강사는 유통업체 30년 근무 경험과 마케팅 이론을 접목해 재래시장의 변신 방법을 조목조목 알려준다.
“환경 관리가 기본입니다. 전통시장은 원래 이런 곳이라는 선입견부터 바꾸세요. 쓰레기통은 가장 깨끗해야 되는 물건이라고 생각을 바꾸세요. 찢어진 천막은 당장 손보세요.”
강사의 설명에 상인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공책을 펴놓고 꼼꼼히 필기하는 이도 있다. 백씨의 강의는 이어진다. “청결 다음은 진열입니다. 밝고 화사한 색일수록, 방금 들어온 물건일수록 앞에 두세요. 조명은 밝게 하세요. 환한 불빛 아래서 구매의욕도 높아집니다.”
동대문구가 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상인들에게 이런 강의를 마련한 건 지난 1월이다. 경동시장·청량리시장 등 전통시장만 18곳, 점포가 3000여 개에 이르지만 대형마트에 밀려 날로 상권이 위축되고 있다.
2시간 반에 걸쳐 수업을 마친 강사와 학생들은 답십리 현대시장으로 나갔다. 현장 강의가 ‘덤’으로 이어졌다. 백씨는 “가격을 쓴 종이가 정작 소쿠리를 다 가리면 물건을 볼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반으로 접어서 세워두세요. 누런 색의 배를 누런 박스종이 위에 올려놓으니 전혀 싱싱해 보이지 않죠? 배경을 초록색으로 바꾸세요.”
주인이 배달이 밀려 바빠서 물건 정리를 못했다고 ‘항의’하자 백 강사는 ‘짱’ 이론을 덧붙인다. “장사의 짱이 되시려면 말짱, 손짱, 발짱이 돼야 합니다. 자신이 파는 물건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손님에게 설명할 수 있는 말짱, 틈 날 때마다 부지런히 정리하는 손짱, 주문 받은 상품은 신속히 배달하는 발짱이 돼야 성공합니다.”
강의실과 현장에서 3시간 동안 진행된 수업이 끝나자 학생들은 선생님께 박수로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수업을 들은 이치안(55) 현대시장상인회장은 “마냥 기다리다가 오는 손님에게 파는 것이 아니라 오고 싶게, 사고 싶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며 “상인 전체회의를 열어 체계적으로 시장을 변신시키기 위한 논의를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대문구 상인대학은 시장을 돌며 매주 두 차례씩 열린다. 판매 기법, 점포 관리, 소액 세무 등 주제별로 20여 회 강의가 진행된다. 수강을 신청한 상인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진행하지만 동대문구에 거주하는 상인이 아니어도 필요한 강좌는 들을 수 있다.
중앙일보 김경빈 기자 [kgbo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