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간 훈련상황 꼼꼼히 기록한 여민지의 ‘축구일기’조선닷컴
기사 100자평(7) 입력 : 2010.09.26 15:29 / 수정 : 2010.09.26 18:46
▲ 여민지가 꼼꼼하게 정리한 축구일기. 여민지는 7년간 6권에 달하는 ‘일기’를 쓰면서 기술을 발전시켜 나아갔다./창원=이 건 기자
U-17(17세 이하) 여자월드컵 우승·골든볼(최우수선수상)·골든슈(득점왕) 등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여민지(17·함안 대산고)가 훈련 상황을 꼼꼼히 적은 일기장을 공개했다.
여민지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축구화를 처음 신은 뒤 7년 동안 매일 훈련상황, 목표 등을 담은 ‘축구 일기’를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뿐만 아니라 각계 저명인사들의 명언과 좌우명, 일과 등이 빼곡히 적혀 있다. 일기장 군데군데 국내·외 축구스타들의 사진도 붙어 있다.
만 14세의 나이로 19세 이하 국가대표로 발탁됐던 2007년 여민지는 일기에 “대표팀 된 게 너무 부담되고 언니들에게도 미안하고 눈치 보여요. 그러나 일단 됐으니 자만하지 말고 더 노력할게요”라고 적었다.
당시 U-19 아시아선수권을 준비하던 이영기 청소년대표팀 감독이 “함성중에 물건이 있다”는 말을 듣고 여민지의 경기를 지켜본 뒤 “저런 선수가 한국에 있었느냐”며 당장 불러들였다. 여민지는 유일한 중학생 대표팀 선수였다. 파격적인 발탁이었다. 그때부터 여민지에게는 늘 ‘천재 소녀’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하지만 여민지는 타고난 천재가 아니었다. 일기를 보면 그가 얼마나 노력가인지 알 수 있다. 중학교에 올라가던 해인 2006년에는 일기 첫 페이지부터 4-4-2 시스템의 기초, 압박-슛-드리블 등 공격수의 기본기, 오프사이드 전술 등 축구에서 기본이 되는 움직임에 대한 것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노력파답게 일기 곳곳에도 성실하게 훈련을 받은 흔적을 느낄 수 있다. 2006년 12월 8일에는 “이제 야간훈련 때는 개인 운동 안 하려고요. 한 번씩만 하구요. 키 커야죠”라고 써 놓았다. 부족한 점을 보충하겠다고 심하게 야간 훈련을 해 지도자들이 “그러다 키 안 큰다. 운동 좀 그만 해라”고 만류한 것을 재치있게 일기에 적어둔 것이다.
마음을 다잡기 위한 다짐도 적혀있다. 중학교 1학년이던 2006년 12월 일기에는 “아프리카에서는 매일 아침 사자가 잠에서 깬다. 사자는 가젤을 앞지르지 못하면 굶어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온 힘을 다해 달린다. 네가 사자이든 가젤이든 마찬가지다. 해가 떠오르면 달려야 한다”고 적었다.
“일주일 동안 훈련하면서 느낀 점”이라고 적힌 어느 날의 일기장에는 자신의 포지션과 필요한 플레이, 필드에서 공수 전환 루트를 그림까지 그려가며 상세히 기록해뒀다. 이렇게 7년간 써온 일기가 대학 노트로 7권 분량이다.
▲ 여민지 선수의 초등학교 시절./연합뉴스 부상을 당했을 때도 일기 작성을 멈추지 않았다. 2008년 오른쪽 무릎 십자인대 부상 후 일기장 맨 뒤편에 재활차트까지 기록하면서 세심하게 관리했다. 재활차트에는 ‘상체 자전거 15분 30회, 스트레칭 15초 3세트, 수건을 이용해 무릎 굽히기 10회 3세트, 베개 누르기, 베개 모으기, 공 누르기, 발목 가동, 발목 강화’ 등 프로그램이 빼곡하게 나열돼 있다.
여민지가 이처럼 꼼꼼하게 일기를 작성한 것은 은사들의 권유 덕분이었다. 처음 공을 차기 시작할 때 은사이던 배성길 명성초등학교 축구팀 감독의 권유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현재 재학 중인 함안 대산고 김은정 감독도 제자에게 꾸준히 일기를 쓰라고 가르쳤다.
여민지는 7년 동안 별다른 불평불만 없이 훈련이나 경기가 끝나면 저녁 식사를 마친 뒤 꼭 책상 앞에 앉아 일기를 썼다고 한다. 심지어 외박을 받아 집에 돌아와서도 일기부터 펼쳐들었다고 여민지의 부모는 전했다.
여민지의 아버지 여창국씨는 “많은 선수가 민지의 축구 일기를 참고해 함께 발전해나갔으면 하는 마음에 공개했다”고 전했다. 어머니 임수영씨 역시 “힘든 와중에도 일기를 꾸준히 써온 딸이 대견하다. 이것들이 오늘의 민지를 있게 한 밑거름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