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태극전사들, 파이팅!
스포츠 경기는 과연 ‘각본 없는 드라마’다. 젊은 태극전사들이 캐나다 밴쿠버 겨울 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을 자랑스럽게 하는 승전보를 보고 들으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이승훈 선수가 아시아 선수로는 처음으로 장거리인 남자 5천m에서 은메달을 따 국민들을 놀라게 하더니 모태범과 이상화 선수가 남녀 500m에서 금메달을 석권,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한 국가가 500m 빙속 종목을 모두 제패하는 새 기록을 남겼다. 육상의 꽃인 100m에 해당되는 남녀 빙속 500m를 한 나라가 차지한 것은 올림픽 역사상 처음이다. 감탄스럽고 장한 일이다.
두 선수의 쾌거는 한국이 1948년 스위스 생모리츠대회에 처음 참가한 이래 62년 만에 올림픽 빙속 경기에서 처음 금메달을 차지한 스포츠 역사적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대한민국 젊은이의 진취적 기상과 도전 정신을 세계에 떨쳐 국가의 위상을 드높였을 뿐 아니라 국내외에서 행동으로 전한 현재와 미래에 대한 용기와 희망의 메시지 또한 더 없이 값지기 때문이다.
이상화 선수가 출국 전 자신의 방에 건 달력의 경기 예정일 2월 16일에 적어 놓은 ‘인생 역전’이나 모태범 선수가 미니 홈페이지 문패로 삼은 ‘성공이라는 못을 박으려면 끈질김이라는 망치가 필요하다’ 등이 놀라운 경기력과 함께 세계의 주목을 받는 이유도 달리 있을 리 없다.
해외 언론 등이 일제히 ‘서프라이즈 ! 코리아’라는 표현으로 한국 선수들의 장한 모습에 극찬하면서 본받아야 할 대상으로 새삼 한국을 지목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여자 500m에서 이변이 일어났다”(AP통신), “이상화의 금메달은 행운이 아니다” (로이터통신) 라고 “코리아를 배우자”고 앞다퉈 보도했다.
쾌거를 이룬 세 선수는 대학 3학년생이다. 이들은 올림픽에서 세계 정상급 선수들과 경쟁하면서도 주눅이 들지 않았다. 한국 젊은이의 표상이다. 경기에서는 당차게 맞섰고 트랙 밖에선 발랄하게 개성을 보이며 거침 없이 할 말을 다 했다. 국가주의의 엄숙함이나 헝그리 스포츠의 악착스러움 대신, 정당한 경쟁을 즐기면서 성취를 만끽하는 신세대의 모습이다.
한국에 첫 번째 금메달을 안긴 남자 1천5백m 이정수 선수는 어제 1천m에서도 금메달을 차지해 국민을 열광케 했다. 이정수는 2관왕의 기쁨을 만끽했을 뿐 아니라 남자 500m와 5천m 계주에도 출전이 예상돼 전관왕도 노려보게 됐다. ‘힘과 순발력이 좋고 신체 밸런스가 잘 맞는다’는 이정수는 기자회견 도중 “아 ~ 말도 안 돼. 아~ 진짜” 를 연발하며 금메달 획득이 “정말로 꿈만 같다”고 해맑게 웃어 더욱 기분이 좋았다.
스포츠 경기는 정말 각본 없는 드라마다. 남자 500m 금메달리스트 모태범은 1천m에서도 은메달을 땄다. 남자 쇼트트렉 1천5백m에서 한국 선수들이 금·은·동메달 석권을 단 10m 앞둔 지점에서 2위였던 성시백과 3위였던 이호석이 뒤엉켜 넘어지는 바람에 실격당한 이호석은 1천m에서 은메달을 차지해 명예를 회복했다. 불운의 선수 성시백은 500m와 5천m 계주에 재도전한다. 이은별은 쇼트트랙 여자 1천5백m에서 2위에 올라 한국 여자 쇼트트랙 첫 메달리스트가 됐고 박승희가 동메달을 보태 여자 쇼트트랙 대표팀에 힘을 보탰다.
이제 한국은 금메달 4개, 은메달 4개, 동메달 1개를 따내 미국, 노르웨이, 독일에 이어 종합 4위로 치솟았다. 대회 막판인 26일과 27일은 ‘한국의 골든 데일’로 꼽힌다.
‘피겨 퀸’ 김연아가 24일 피겨스케이팅 여자 프로그램에 출전해 사상 첫 금메달에 도전하고 27일엔 무더기 메달 수확이 가능한 남자 500m와 5천m 계주, 여자 1천m 결승전이 한꺼번에 펼쳐진다. 한국이 당초 목표 10위를 훨씬 앞설 가능성이 커졌다.
‘88 서울올림픽’ 전후에 태어난 글로별(G) 세대 선수들의 거침 없는 도전 정신과 자신감이 금빛·은빛·동빛 열매를 더욱 눈부시게 한다.
세계 빙상역사를 새로 쓰는 밴쿠버 태극전사들의 투혼은 정치인들이 얼룩지게 만든 국민의 가슴을 맑게 씻어준다. 밴쿠버 태극전사들, 파이팅!■
임병호 논설위원
<2010. 2. 22. 경기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