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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정희 대한하키협회 전무이사 인터뷰
작성자
경기도체육회
작성일
2012/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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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인기 종목 출신 서러움, 세월지나니 ‘여성1호’ 닉네임 선물”  
오창원이 만난 신정희 대한하키협회 전무이사


하키 국가대표 코치와 국제심판, 대한하키협회 전무이사겸 부회장, 아시아 하키연맹 부회장 등 여성 1호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신정희(57) 대한하키협회 전무이사.
비인기종목인 하키 선수 출신으로 일반인들에게는 익숙지 않지만 하키계와 여성 체육계서는 익히 알려져 있는 신정희 전무이사는 2006년부터 5년간 고양시 체육회와 생활체육회 사무국장을 역임하고 경기도체육회 이사로 활약하는 등 도체육계에도 일가견이 있다.


여성 1호라는 수식어로 인해 보통 이상의 포부도 있을 법한데 “열심히 일한 것 밖에는 없다. 여성 후배들이 체육이라는 울타리속에서 자연스럽게 일할수 있는 조언자 역할을 하고 싶다”며 “영원한 하키인 이니 하키 발전을 위해서 할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해야죠”라고 밝혀 하키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과시했다.


하지만 그는 고교때까지 남들과 같은 평범한 생활을 했지만 그 이후는 결코 순탄치 않았다. 고교졸업후 4년만에 인천체전을 다녔고 졸업 1년후인 27세때 경희대 체육학과에 특기생이 아닌 시험을 치러 입학했다. 또한 졸업후 대학에서 강의를 맡아 달라는 제의가 왔으나 가방끈(?)이 짧다는 이유로 무산되자 1991년 2월에 출산한 둘째 아이를 친정에 맡긴뒤 3월 숙명여대 교육대학원에 입학, 석사과정을 밟는 억척스러움도 보였다.


-국가대표코치(1981년), 국제심판(1981년), 경기단체 전무이사(2010년) 등에 여성 1호라는 수식어가 많이 따라다녔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글쎄, 좋은 의미로 보면 개척자구 선구자라는 의미도 있는데 그만큼 환경이 열악한 상황에서 시작을 하다보니 애로사항도 많았고 힘이 들었죠. 그 어떤 목표달성이나 일이 잘됐을때는 그에 대한 성과나 성취감은 좋은 환경에서 시작했을때 보다 자부심도 많이 느낍니다.”


-1982년 한국여성스포츠회 발족계기와 초대 사무국장을 맡았는데.
“그때는 여성스포츠회가 법인화 되기전에 일종의 친목회였지요. 그당시 박신자 선배를 주축으로 여성스포츠인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친목회가 시작됐고 1989년에 그동안 우리가 받았고 갖고 있는 것으로 사회봉사도 펼치며 후배들에게 귀감도 주고 우리도 일 할수 있는 방안을 찾자는 취지에서 준비해 20여개 종목 대표들이 모여 총회를 갖고 1990년 법인화 했습니다. 사적인 친목모임으로서는 대표성이 없었기 때문에 사단법인화해 여성 체육인들의 역량을 사회에 환원하면서 활동범위를 넓히고 안정적으로 일하기 위해 출범했지요.”


-법인화 이후 명분이 생겼을텐데, 봉사활동이나 여성 후배들을 위한 조직적인 활동을 했나요.
“그당시 농구나 배구는 실업팀이 활성화 되는 등 몇몇 종목을 제외한 단체 종목이나 비인기 종목 선수들의 경우 대학진학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박신자 선배가 대학을 가야한다. 그 영향으로 저도 1982년 경희대에 입학했고, 조혜정(경기대)씨와 이에리사(명지대) 선배도 진학하는 등 만학도들이 많이 생겼죠. 그렇게 선배들이 이끌어 주는게 있었고, 공식적으로 체육단체하고 여성스포츠인들이 자주 만나면서 경기단체 이사 등 임원들이 증가하고 대표팀에도 여성지도자들의 활동폭이 커지면서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등에서 여성 임원들이 많이 참여하는 효시가 됐죠.”


-당시만 해도 대표 경력도 없는 등 스타선수출신에 비해 상대적으로 어려움을 겪었을 텐데요.
“박신자, 이에리사, 정현숙, 조혜정, 이덕분, 지희봉, 김진호 등 스타선수들이 많았죠. 제가 일을 하면서 힘들었던게 당시에 아모레 화장품에 협찬을 받으러 갔는데 신정희 그러면 몰라 한동안 설명하느라 애를 먹기도 했죠. 당시는 일하기도 힘들었고 비인기 종목 출신의 서러움도 있었지만 저를 알리는게 목적이 아니고 여성스포츠회의 대표성을 갖고 갔기 때문에 세월이 지나니까 그에 대한 서러움은 희석이 돼드라구요. 설득하거나 목적을 달성하는 시간이 좀 걸리죠 아무래도.”


-스포츠분야에서 여성의 참여가 현재로서도 만족하지 않겠지만 그때와 비교하면 많아졌고 어느정도 돼야 한다고 보세요.
“대표적인게 탁구의 현정화 선수로 피노키오라는 별명을 갖고 있던 고교 선수가 어느덧 대한탁구협회의 전무이사를 맡아 잘하고 있고, 전희경 선수가 얼마전까지 IOC 선수위원을 지냈고 정현숙씨가 아시안게임 단장, 이에리사 선수가 태릉선수촌장, 이은경 선수가 양궁 대표팀 감독도 했었고, 그 이후에 사회적인 참여유도도 있었지만 그런 축적된 여성스포츠인들의 활동을 보고 체육회에서도 여성 참여를 유도하고, 그분들이 여성을 참여시키는데 여성스포츠회 역할이 굉장히 컸죠.”


-여성으로서 쉽지 않게 스타 선수 출신도 아니면서 나름대로 체육계서는 성공했다고 보는데 개인적인 목표는 무엇인가요.
“죄송스럽게도 특별한 목표없이 열심히 일해 온 것이 단점이자 장점이었던것 같아요. 국제심판 1호 국가대표 코치 1호 그러다보니 체육단체서 계속 일을 하게 됐는데, 스타선수 출신이면 현재까지 일할수 있었겠냐 하는 의문이 들고 비인기종목이며 스포츠 스타가 아니었기 때문에 현장을 떠나지 않고 내가 찾아보면 뭐가 되겠지 하다보니 지금까지 왔어요. 비인기 종목과 빛나는 스타가 아니라도 고양시 체육회 사무국장, 대한하키협회 전무이사,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로 활동하는게 후배들한테 귀감이 돼고 싶은 그런게 있죠. 지금도 뭐가 어떻게 되겠다는 목표는 없어요. 공부하는 후배들이 많기 때문에 체육단체서 더 훌륭한 일을 하리라 믿고, 저는 그냥 물흐르듯이 그늘이 돼서 어려운 것 도와주고 현장에서 풀리지 않는 일이 있다면 봉사하는 그런 시간이 돼야 할것 같아요. 지금까지 쌓아온 인적네트워크와 31년간 쌓아온 국제무대의 활동을 바탕으로 후배들이 체육이라는 울타리속에서 자연스럽게 일할수 있는 조언자 역할을 하고 싶어요. 지금 목표라면 하키가 좀더 반듯하게 올라왔으면 해요. 현재 여성스포츠인으로서 활동하고 있지만 저는 영원한 하키인이잖아요, 하키발전을 위해서 할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해야죠.”


-올 1월부터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를 맡았어요.
“문체부장관 명의로 여성 스포츠인 몇몇 대표속에 맡았는데 준정부 기관이다 보니 할수 있는 사업이 정해져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체육의 현실속에서 제가 할수 있는 일을 찾아봐야죠. 다양하게 지원하는 사업들을 공부할수 있는 기회도 되고 체육 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 인사들을 만나고 그분들에게 체육의 역할을 전파 해야죠. 그렇기 때문에 이사선임을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여성 스포츠계 대표성을 갖고 들어왔기 때문에 할수 있는 일을 찾아봐야죠. 이번 이사 선임은 저를 포함해서 3명의 여성 이사가 선임됐어요. 지난해까지는 여성이 1명이었으나 이번에는 전폭적으로 선임됐으니 여성들이 그만큼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고 봐야죠.”-구기종목으로는 하키가 효자종목인데 런던올림픽에서는 어느정도 예상하세요.
여자는 올림픽티켓을 확보해서 메달을 목표로 훈련하고 있어요. 남자는 3월에 아일랜드서 최종티켓을 확보하기 위한 예선대회가 있는데 진작에 아시안게임에서 올림픽 티켓을 확보하지 못해 힘들게 됐지요. 하지만 선수들 훈련하는거 보니 무난하게 티켓을 딸 것으로 생각해요.


-다른종목 보다 하키팀의 경우 시군청 팀이 많은데.
“하키 국가대표는 주로 성남시청과 김해시청 선수예요. 지금 체육계가 전체적으로 힘들잖아요. 저희뿐만 아니라 각 시청팀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특히 하키는 그동안 시군청팀에서 많은 선수를 보유하고 지원을 했지요. 지방자치단체서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 등에 출전하는 선수들에 대한 지원을 하지 않으면 명맥을 유지하기가 힘들어요.”


-하키는 처음에 어떻게 시작했나요.
“하키 명문 평택여중시절 체육교사의 권유로 시작했는데 너무 재밌었죠. 그다음에는 적극적으로 했습니다. 학교진흥법도 통과됐지만 운동선수도 공부를 해야 합니다. 중고교때 학교수업을 안빠지고 열심히 한게 지금의 저를 있게 했다고 봅니다. 시험때는 밤을 새워서 공부했던 기억이 나고 중고교 시절 저를 아는 선생님들은 공부를 했던 선수라고 생각하고 경희대시절 과에서 1,2등을 했고 차석으로 졸업했죠. 나름대로 공부는 열심히 했습니다.”


-지난해 1월 아시아하키연맹 총회에서 임원으로 대한하키협회에서 3명이 선출됐죠.
“네 그렇죠. 홍문표 회장님은 차기대회 개최지인 관계로 재정위원장을 겸한 당연직 부회장에 선임됐고, 저는 심판위원장을 겸한 부회장, 김명성 이사도 아시아연맹 이사로 선임됐는데, 아시아연맹 회원국중 회원국에서 2명의 부회장이 배출된 것은 처음입니다. 저는 여성몫으로 연맹에서 한번 도전해 보라고 해서 도전했는데 출마의사를 밝혔던 인도의 후보가 불참해 어렵지 않게 당선됐죠.


-고양시에서 엘리트와 생활체육회 통합단체의 사무국장을 역임했죠. 공생방안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요.
“결국 체육은 소통으로 인한 하나의 매개인데 엘리트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시합을 하지만 생활체육은 관내서 보이는 행사를 하기 때문에 시민과 정치인들의 관심이 많죠. 고양시서 체육인의밤을 통해 엘리트및 생활체육과 장애인체육이 모두 모여 소통하는 기회를 마련했다. 엘리트체육은 투자해서 시군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차원으로 봐야 한다. 국제적으로는 장미란이 대한민국 이지만 국내서는 장미란=고양시로 보잖아요. 생활체육은 그야말로 건강을 위해서 하는건데,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갔을때 우리를 수송했던 기사가 삼성전자 전화를 사기 위해 자원봉사에 참여했다고 했어요. 그런게 브랜드 가치가 있는거 아니냐. 생활체육의 경우 유니폼, 교통비, 밥값보다는 장기적으로 시설인프라 구축이 선행돼야 합니다. 결국 장애인 체육도 같이 가야 해요. 프로그램 개발과 지도자 양성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혜택을 받을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모색돼야 한다고 봅니다.(중부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