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는 돈이다 … 브랜드 역사도 훌륭한 이야깃거리 [중앙일보] 허웅 오리콤 브랜드전략연구소장에게 듣는 ‘스토리 텔링 마케팅’
처음처럼, 노비타 비데 … 개발·소비자 목소리 담아
기법보다 내용이 탄탄해야 논쟁중인 댓글 (0)
일러스트=강일구 ilgoo@joongang.co.kr
관련핫이슈[Section] Week&Biz “스토리를 어디서 찾느냐고요? 개발자와, 그리고 소비자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눠 보세요.”
불황 때 먹히는 마케팅이 ‘스토리 텔링(Story telling)’이다. 아기자기한 줄거리를 좋아하는 건 사람의 본성이다. 한정된 예산으로 마케팅 효과를 오래 지속시킬 수도 있다.
오리콤 브랜드전략연구소가 국내외 100여 기업의 스토리 텔링 사례를 다섯 달간 분석해 성공 마케팅의 비법을 뽑아봤다. 허웅(사진) 연구소장은 이 성과를 이달 중순부터 기업과 일반인들의 신청을 받아 찾아가 들려주는 ‘보따리 강연’을 시작했다.
그는 “스토리 텔링 마케팅의 성공 여부는 스토리를 잘 전달하는 기법보다 스토리 자체의 콘텐트에 달렸다”고 강조했다.
많은 기업이 이 마케팅 기법을 구사하고 싶어하지만 제대로 된 ‘스토리’를 찾는 게 어렵다고 호소한다. 이에 대해 허 소장은 “소재는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다. 개발자와 소비자를 통해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라”고 당부했다.
◆소재는 현장에서=가장 먹히는 스토리는 브랜드의 역사다. 많은 기업이 의외로 회사 브랜드의 히스토리를 모른다. 창업자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 제품 개발 비화, 회사·제품 명에 얽힌 이야기 등은 훌륭한 소재다. 소주 ‘처음처럼’은 2006년 출시 때 신영복 교수가 그린 그림과 낙관, 브랜드 이름이 스토리의 소재가 됐다. 그가 ‘처음처럼’ 로고와 그림을 제공한 대가를 자신이 몸담은 성공회대의 학생 장학금으로 내놨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이 브랜드는 더 입소문을 탔다.
포스트잇으로 유명한 미국 3M은 개발에 얽힌 비화를 이야기 소재로 삼았다. 강력 접착제를 개발하려다 실패했지만 접착력이 좀 떨어지는 걸 활용해 결국 역사에 남을 제품을 만든 것.
노비타 비데 마케팅에 나선 광고 제작팀은 충남 천안 공장에 내려가 개발자를 만났다. 소비자들이 플라스틱 비데 노즐을 불결하다고 느껴 시행착오 끝에 이를 스테인리스로 교체하는 데 성공했다는 개발 과정을 들었다. 그래서 이 스테인리스 노즐을 광고의 핵심 포인트로 삼아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조직의 역사를 전파해 내부 결속을 다지는 효과를 거둘 수도 있다. 고 정주영 창업주가 등장하는 현대중공업 광고가 그런 경우다.
◆소비자 반응도 소재=어느 정도 성숙기에 들어간 브랜드라면 소비자들의 구구절절한 사연이 스토리 소재가 된다. 일본 메이지생명은 다운증후군을 앓는 아들을 보살피는 아키유코 가족의 편지를 광고 캠페인으로 만들어 화제를 낳았다. 이 가족의 사연은 TV다큐멘터리로 제작된 데 이어 책으로도 나왔다. 생명보험 등 금융회사의 광고는 소비자 사연이나 입소문을 소재로 삼는 것이 효과적이다. 소비자 반응이 다양하게 나오는 소비재의 경우도 마케터는 수시로 영업사원들과 얘기를 나눠야 한다. 여기에서 좋은 소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지포 라이터는 1960년대 베트남 전쟁 때 총 맞은 라이터가 멀쩡했다는 소비자 사연을 접하고 ‘바로 이거다’ 하면서 환호했다.
이래저래 이야깃거리가 없으면 가공의 스토리라도 만들어 내야 한다. 광고나 캠페인 그 자체에서 화제를 불러 일으켜야 한다. 롯데리아 크랩버거 광고에서 원로 배우 신구는 “니들이 게맛을 알아”라는 코믹한 대사로 화제를 모았다.
◆스토리도 관리해야=미국의 마스카라 브랜드 메이블린의 탄생 비화는 이렇다. ‘넌 얼굴이 예쁘지 않아’라는 핀잔과 함께 남자 친구한테 딱지를 맞은 여동생 메이블을 위해 오빠가 만들어 낸 것이 마스카라라는 것이다. 수십 년 전에 잠시 회자되고 말았을 이 에피소드는 ‘제2의 메이블을 찾습니다’라는 캠페인으로 부활했다.
인터넷이든, 블로그든 소비자의 입소문을 확대 재생산하려는 시도가 계속돼야 한다. 허 소장은 “수시로 스토리와 연관된 이벤트를 벌이고 이를 과학적으로 평가·관리하지 않으면 아무리 재미난 스토리라도 잊혀진다”고 강조했다. 다만 억지스러우면 곤란하다. 허 소장은 “소비자는 똑똑하다.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면 거부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최지영 기자, 일러스트=강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