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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공은 피마르는 도전의 결과다!
작성자
이주진
작성일
2009/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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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없음

세상 사람들은 성공을 당연히 여기지만 우린 피가 마릅니다”최보식·선임기자 congchi@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기사 100자평(9)
입력 : 2009.07.20 02:55
우주로켓 ‘나로호’ 사령탑, 이주진 항공우주연구원장
“첫 발사서 성공 확률 27% 일(日)도 5번째 발사 만에 성공 전체 중 우리 기술은 60%”
“쉬운 일은 누구나 하지만 어려운 일은 아무나 못해… 연구원들 자긍심 갖기를”
“지금 우주 뛰어들지 않으면 영원히 못한다는 절박감… ‘한국형’ 기술 꼭 확보해야”

우주로켓 ‘나로호’ 사령탑, 이주진 항우연원장

“세상 사람들은 성공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러나 우리는 피가 바싹바싹 마른다. ‘나로호’ 발사에 너무 많은 기대를 걸고 있지만 우리는 과장되게 말하면 안 된다.”

저 먼 우주(宇宙)를 논하면 낭만적 분위기에 젖을 법한데, 이주진(57) 항공우주연구원장의 말투는 기계적이다. 수사(修辭)의 재미도 감정 기복도 없다. 다만 인터뷰 중간에 꼭 한번 “우리가 최선을 다했으니…” 대목에서 목이 메어 한참 말을 못 이었다. 겨우 “꼭 성공한다”고 끝을 맺었다.

그는 하얗게 센 머리칼을 앞부분만 남겨두고 염색했다. 그의 백발(白髮)은 우주 개발 과정의 훈장이다. 아리랑위성 1호, 아리랑 2호 사업책임자를 거쳐 그는 작년 말 우주 개발의 최종 책임을 맡는 항공우주연구원장직에 올랐다. ‘나로 1호’ 발사가 성공하면 한국은 자체적으로 위성을 올릴 수 있는 세계 10번째 국가가 된다.

세상을 대하는 나의 회의적인 습성을 처음부터 드러냈다.

―외국의 우주 개발 사례를 보면, 첫 로켓 발사의 성공 확률은 약 27%였다. 온 국민들이 기대를 걸고 있는데 만약 실패한다면?

“우리는 발사체(로켓)나 인공위성 개발에 7년을 투자했다. 설계·제작·실험에서 노하우를 쌓아왔다. 발사는 개발 과정에서 마지막 실험데이터를 얻는 작업이다. 로켓에는 부품이 10만개다. 만약 실패한다면 이 중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추적하게 된다. 그 결함을 수정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은 그 장면만 보고 ‘실패했군’ 하겠지만, 그 실패에서 우리 연구원들은 더 많은 걸 얻을 것이다.”

―논리적으로는 그럴 수 있겠지만, 발사 책임자로서는 여론의 실망을 감당하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처음 쏘아 올린 ‘뱅가드’ 로켓도 발사 2초 만에 폭발하고 말았다. 일본 역시 거듭 실패를 겪은 끝에 1970년 다섯 번째 발사에 성공했다. 지금은 그때보다 성공 확률이 훨씬 높아졌다. 하지만 우주기술은 99.999%의 절대적 신뢰도를 요구한다. 기술적 결함 외에도 발사 당일의 기상 여건과 사람의 실수 등 실패 요인은 많다. 다만 지금으로서는 ‘무조건 성공’만 생각하고 믿고 싶은 것이다.”

인터뷰하던 날, 나로호 로켓의 1단엔진 개발을 맡은 러시아 흐루니체프사에서 “연소시험에 약간의 문제”를 이유로 발사 일정 연기를 통보해왔다. 당초 발사 예정 날짜(7월 30일)에서 짧게는 열흘, 길게는 몇 달쯤 미뤄질 전망이다.

“이런 연기는 수시로 있고 조급할 필요가 없다. 발사하는 순간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리랑위성 2호(2006년) 발사는 1년 반이나 연기됐다. 발사일이란 늘 불확정하다. 그날 날씨가 흐리거나 주변에 낙뢰가 쳐도 발사할 수가 없다.”

―일각에서는 ‘나로 1호’에서 껍데기만 우리 기술일 뿐 실제로는 ‘러시아 로켓’이라고 비판한다.

“전체로 보면 우리 기술이 60%쯤이다. 로켓 상단부인 인공위성, 컴퓨터, 궤도 계산, 고체연료, 연료통 부문이 우리 기술이다. 액체연료를 연소시키는 로켓의 1단엔진은 러시아 기술이다. ‘케로신(등유의 일종)’ 연료를 액체산소로 태워 지구 중력을 뚫는 추진력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중력을 뚫고 날아오르려면 초속 11㎞ 이상의 속도가 돼야 한다. 서울~제주 거리를 1분에 달리는 것이다. 발사 직전 영하 183도의 액체산소를 엄청난 속도로 뿜어내 케로신 연료를 태운다. 여기에 한점의 먼지나 티끌이 섞여도 폭발하게 된다. ‘절대적 신뢰성’이 필요한 기술이다. 현재 우리 기술로는 90%쯤 할 수 있다.”

―로켓의 1단엔진 제작을 위해 러시아측과 얼마에 계약했나?

“약 2000억원이다. 만약 로켓의 1단엔진에 이상이 생기면 러시아측이 배상하는 것이다.”

―’나로 1호’ 개발을 위해 총 5000억원이 투자된 것으로 안다. 우리 로켓이 하늘을 난다면 국민들에게 충족감을 줄 수는 있지만, 경제적으로 따져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가?

“처음 개발 인프라를 갖추려면 원가가 많이 든다. 이 장비와 설비는 계속 이용될 것이다. 우주 개발의 경제적 타당성에 대해 실제 분석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뚜렷하게 답이 안 나왔다. 투자에 대한 경제적 효과가 오래 뒤에 나타나거나 너무 광대하다. 이 때문에 예산을 위해 국회나 정부를 설득해야 할 때 힘이 든다.

미국에서 ‘아폴로’를 시작한 1960년대만 해도 진공관 컴퓨터를 쓰던 시절이었다. 달 탐사에는 복잡한 계산이 요구되기 때문에 컴퓨터가 개발됐다. 착륙을 위해 정확한 측정이 필요해 레이저도 개발됐다. 장거리 통신 문제를 해결하려고 통신용 인공위성도 개발했다. 생활필수품인 정수기·전자레인지, 의료용 검사기기인 CT와 MRI 등이 모두 우주기술에서 왔다. 하지만 당시 엄청난 경비를 들여 달에 꼭 가야 할 경제적 타당성은 없었다. 달을 갔다 왔다고 해서 갑자기 나라가 잘사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케네디 대통령은 국가사업으로 밀고나갔다. 우주에 대한 투자가 뒷날 미국의 국가경쟁력이 됐다.”

▲ 이주진 항공우주연구원장은“우주개발은 국가전략 관점으로 봐야지 금방 경제적 효과를 따지면 답이 없다”고 말했다. 전남 고흥군 외나로드 우주발사센터에서./최보식 기자
―우리처럼 후발 주자로 어중간하게 뒤따라가기보다 다른 분야에 투자하는 것이 효과적이지 않은가?

“가령 기상위성 데이터는 일본의 자료를 받아 쓴다. 일본에서 30분에 한번 기상데이터를 준다. 하지만 태풍이 오는 급박한 상황에는 자신들이 급해 우리에게는 2시간에 한번쯤 준다. 나라 경제규모가 세계 10위권쯤 되면 이런 의존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무기현대화 사업에서도 독자적인 GPS 위성이 필수적이다. 우리의 장래를 위해 무한한 영역인 우주에 대한 도전을 포기할 수는 없다. 이미 안정화된 우주 기술을 습득하고, 안 파는 전략기술과 전략제품을 국산화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정밀기계·반도체·자동차 기술 등 산업 인프라가 잘 돼 있다. 우리 규모에 맞는 ‘한국형’ 우주개발은 가능한 것이다.”

―항공우주연구의 총책이라면 통상 우주물리학자를 떠올리는데, 당신은 기계공학이 전공이다.

그는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나와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석·박사를 했다.

“현재 우주 개발에 참여한 연구원들을 보면 기계분야 40%, 전자분야 40%, 항공우주 및 물리학 20%다. 기계는 로켓의 모든 껍데기와 관련돼 있다. 우주 공간에서 불타거나 부서지지 않게 보호하는 것이다. 기계보다 전자분야가 더 어렵고 광학은 훨씬 더 어렵다. 로켓은 우주 공간을 뚫고 정확한 궤도에 올라가야 하니까, 추진기술과 제어기술이 가장 핵심이다. 제어가 안 되면 로켓이 어디로 날아갈지 모른다.”

―어떻게 해서 우주 개발에 참여하게 됐나?

“미국에서 돌아온 뒤 ‘표준연구소’에서 일했다. 그때 대덕 연구단지에 있는 몇몇 친구들끼리 ‘우리는 왜 우주기술을 안 할까’ 하는 말을 나눴고, 모임을 만들어 우주 개발 당위성은 스터디 했다. 당시 우리 국민소득은 9000달러였다. 인도와 브라질은 6000달러에서 이미 시작했다. 다른 앞선 선진국도 우리 정도의 기술력에서 다 출발했다. ‘지금 우주를 안 하면 영원히 우주를 못 한다’는 절박감이 있었다. 그럴 즈음 국회에서 항공산업촉진법이 통과돼 항공우주연구원이 설립됐다. 공교롭게 우리의 고민과 맞아떨어진 것이다.”

그는 1991년 항우연으로 옮겼다. “우리 과학사에서 새로운 것이었기 때문에, 누구도 시작 안 한 것을 한다는 동기가 컸다”고 했다.

“우주를 하게 되면 실패가 많고 어렵다. 또 성공과 실패의 차이가 너무 극명하다. 인생을 그쪽으로 가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나 지금 아니면 못 한다는 강렬함이 있었다. 하늘이 우리에게 준 기회라고. 결정을 내리고 아내에게 ‘앞으로 만날 집에 늦게 들어올 것’이라고 말했다.”

항우연으로 옮긴 직후 그는 ‘국내 최초 과학위성’인 아리랑위성 1호 개발에 사업책임자로 참여했다. 그의 임무는 위성의 국산화였다. 미국의 우주개발회사(TRW)와 계약을 했다.

“당시 냉전이 끝나면서 미국에는 우주 개발 인력을 감원하는 바람이 불었다. 우리가 우주 개발에 뛰어들 절호의 기회가 됐던 셈이다. 8500만달러에 일대일 공동 작업하는 조건 등으로 계약할 수 있었다. 가령 미국이 컵을 설계하면 우리가 컵받침을 설계하는 식이었다. 연인원 70명이 미국 회사에서 1년2개월 살았다. 한명씩 매달려서 날마다 하나라도 더 배우기 위해 싸웠다.”

당시 인공위성은 시험모델과 실제비행모델 2세트를 만드는 걸로 계약했다. 이 중 비행모델을 우리 쪽에서 만들겠다고 고집해 성사시켰다. 또 인공위성을 조립·시험하는 과정도 국내에서 이뤄졌다.

“저온 진공의 챔버(방)에 인공위성을 넣고 3주간 테스트를 하는데, 수천개의 신호 중 이상한 신호가 포착됐다. 같은 조건에서 수십번 시험해야 한번 나타나는 이상(異常)이다. 미국인들은 ‘고스트, 포켓(유령이니 잊어버려)’이라며, 그냥 넘어가자고 했다. 하지만 우리 연구원들은 며칠간 밤새워 그 결함을 다시 보여줬다. 온도와 전압이 얼마고 시간이 얼마쯤 지났을 때, 이런 고스트가 나타난다고. 성실하면서 끝까지 물고 늘어져라, 이게 우리 신조였다. 결국 미국 친구들은 인공위성의 조립 부분을 다 녹여서 다시 테스트했다. 그 뒤로 우리의 각 실험실마다 대형태극기를 내걸었다.”

아리랑 1호의 수명은 3년 반을 예상했는데 8년을 살았다. 그는 2006년 아리랑 2호 개발 때 총괄사업단장을 맡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이 위성은 하루에 지구를 14바퀴 반 돌며 사진촬영 임무를 3년째 수행하고 있는 중이다.

―당신은 이제 관리와 행정을 책임지는데, 현장의 후배연구원들을 보면 어떤가?

“아리랑 2호를 성공하고 난 뒤 연구원 4명이 미루고 있던 결혼을 동시에 했다. 자기 열정을 다 바쳤던 것이다. 우리 연구원들에게는 지고는 못 살고, 한번 하면 끝까지 하는 투지가 있다. 이들에게 ‘쉬운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어려운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어려운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여러분이 가졌다.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고 격려한다.”

―마지막으로 같은 질문을 또 한다. ‘나로 1호’는 잘 올라갈까?

“지상 실험은 할 만큼 다 했지만, 아직 우주 공간에서 비행(飛行)을 안 해봤기 때문에 의외의 문제가 나타날 순 있다. 이는 인간의 한계 바깥인 것이다.”

발사되는 순간, 섭씨 3000도의 화염과 허연 수증기를 내뿜을 것이다. 발사 3분48초 뒤 1단 로켓은 필리핀 인근 해상에 떨어진다. 이어 2단 로켓이 자동점화돼 지구 저궤도에 이르고 탑재된 인공위성이 분리될 것이다.

지상에서의 발사 광경은 ‘5분쇼’도 안 될 것이다. 우주의 역사에서 보면 인간의 존재 시기가 한 점(點)도 찍히지 못하는 것처럼. 하지만 그 ‘찰나’의 짧음 속에도 늘 드라마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