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원 예금’ 1명 위해 8시 문 열다 [중앙일보] 기사
나도 한마디 (0)
2009.09.08 19:45 입력
[Cover Story] 준비된 자만이 기회 잡는다
학교 가며 매일 들르는 장애우 위해 정성
‘바깥에서 배워라’ 직원 모두 벤치마킹 여행
수원 장안신협 직원이 자신의 얼굴이 새겨진 설레임 쿠폰左과 통장을 들어보이고 있다.
송금 수수료가 면제되는 설레임 쿠폰은 첫 거래를 튼 고객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만들었다. 통장에 찍힌 얼굴 사진은 고객별로 지정된 자산관리 도우미다. 김경빈 기자
내로라하는 세계적 금융사들을 휘청거리게 만든 금융위기. 쓰나미에 비유되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어려워도 잘 팔린 금융상품이 있고, 평소보다 더 많은 이익을 낸 금융사가 있다. 보험업계의 맏형 삼성생명은 통합보험으로 저력을 보였고, 서민 금융사인 수원 장안신협은 1~8월 순이익이 지난해 전체 순이익의 두 배에 이른다.
왕도는 없었다. 준비된 자만이 기회를 잡았다.
경기도 수원의 장안신협 직원들은 주말이면 1박2일 맛 기행을 가곤 한다.
식도락을 위해서만이 아니다.
박영균 전무는 “유명한 식당 주인들은 식당 운영에 온몸을 던진다”며
“그 정신을 배운다”고 말했다.
그들은 늦은 밤 수원역 노숙자들을 찾아가기도 하고, 새벽 어스름에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도 간다. 임신한 여직원은 회사 비용으로 임신·출산 박람회에 간다. 임산부의 눈으로 보면 더 많은 걸 배워올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박 전무는 “금융업을 하는 사람이 금융만 쳐다보면 안 된다”며 “세상 모든 것이 벤치마킹 대상”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 직원들은 1년에 한 번 이상 벤치마킹 여행을 가는 게 의무다.
꾸준히 쌓은 내공은 실적으로 이어졌다. 1~8월 순익은 38억원이다. 전국 신협 중 1위다. 다른 투자를 거의 하지 않고 영업으로 이룬 성과다. 자산은 5년 새 세 배가 됐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이 신협은 1995년 금융사고로 이사장과 직원이 구속된 곳이다. 변하기 시작한 것은 2001년부터. 팽팽한 긴장감과 위기의식이 직원들을 뭉치게 했다.
크고 번듯한 시중은행 흉내를 내지는 않았다. 오히려 시중은행이 못하는 것을 찾아 했다. 서민 금융사의 특성을 살려 고객 한 명, 한 명에게 정성을 쏟았다. 2002년 신협 영업을 오전 8시부터 하게 된 것도 한 명의 고객 때문이었다. 지폐를 세는 기계음을 좋아하는 지체장애인 은영(당시 13세)씨는 오전 8시30분에 오는 학교버스를 타기 전 예금을 하고 싶어 했다. 직원들은 그를 위해 오전 8시 지점 문을 열었다. 은영씨는 8년째 매일 아침 2000원씩 예금하고 있다.
간식도 고객 맞춤형으로 제공한다. 중장년층 고객이 많은 점을 감안해 고구마도 찐다. 뻥튀기 기계는 아예 사들여 돌리고 있다.
고객들에겐 전담 자산관리 도우미를 한 명씩 붙박이로 붙여줬다. 직원 인사이동이 잦은 시중은행과 달리 직원이 계속 한 신협에서 근무하는 점을 활용한 것이다.
대출은 겉이 아니라 속을 보고 해준다. 빚 보증에 가압류가 된 집에도, 경매 위기에 처한 집에도 대출이 되곤 한다. 그렇다고 허투루 해주는 건 아니다.
집에도 찾아가고, 살림이 어려워진 이유를 꼼꼼히 따진다. 컴퓨터로 대출 여부를 결정하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대출 심사를 하는 것이다. 이 회사의 부실여신 비율은 0.01%다.
김영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