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언 특파원이 만난 그리스 국제경제관계연구소 차르다니디스 소장 [중앙일보] 기사
나도 한마디 (1)
2010.02.13 02:11 입력 / 2010.02.13 04:17 수정
“제대로 된 산업 없고 부패 방관 온 국민이 현 경제위기의 공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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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발 금융 쇼크
“우리는 수십 년래 처음으로 나라의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샤랄람보스 차르다니디스(55·사진) 국제경제관계연구소(IIER) 소장은 11일 그리스의 경제위기가 장기적으로는 나라의 기틀을 다시 다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위기에서 얻은 교훈을 허비하지 않을 경우”라는 단서를 달았다.
아네테에 있는 이 연구소는 기업의 지원을 받는 민간연구소다. 영국 런던정경대(LSE)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차르다니디스 소장은 아테네의 판테온대 등에서 정치경제학을 가르쳐왔다.
그는 “작금의 사태는 많은 그리스인이 언젠가는 닥쳐올 일이라고 예견했던 것”이라며 “사실 그리스인 대부분이 ‘공범’”이라고 지적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모두들 위기라고 말한다. 정말 그리스가 위태로운 상태인가.
“디폴트(국가 채무상환 불이행) 같은 극단적 상황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위기인 것은 분명하다.
정부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12%를 넘는다는 것은 선진국가에서는 좀처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정부가 이 같은 수치를 숨겨왔다는 것은
국가의 신뢰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 디폴트 상황으로 가지는 않는다고 믿는 이유는.
“그리스가 국가채무를 갚기 위해 6% 이상의 이자를 내야 하는 돈을 빌려야 한다면 머지않아 디폴트를 선언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리스는 EU 회원국이며 유로존에 속해 있다.
그리고 채무의 70% 이상이 독일과 프랑스의 금융기관에서 빌린 것이다. 독일·프랑스가 자국민의 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유로화가 폭락하는 상황을 용인할 수 없다고 본다.”
– 이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정부의 재정적자와 국가채무를 줄여야 하는데 어떻게 가능한가.
“지금 정부가 추진하고 있듯이 공공부문 지출을 줄이고 세금을 더 거두는 처방 이상이 있겠는가.”
– 왜 이 지경에 이르렀나.
“그리스의 경제 문제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모두 재정적자 문제를 말하지만
근원적으로는 국가 경쟁력과 생산성이 문제다.
그리스에는 지금 제대로 된 산업이 없다.
관광·해운업은 최근 수년 동안의 불황 때문에 수입이 크게 줄었다.
세계 경제의 중심은 점차 아시아로 옮겨가고 있다. 스페인·포르투갈 등 유럽에서 상대적으로 경제력이 약한 나라들은 그리스와 비슷한 길을 걷게 될 가능성이 크다.”
– 그리스 정부는 이런 상황을 예견하지 못했나.
“사회보장 비용 축소 등의 개혁이 시도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때마다 시위대가 거리를 메웠고,
해당 장관이 자리에서 쫓겨났다. 정치가 대중에 끌려다녔다.”
– 정치인들이 개혁적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한 이유는.
“자신들 스스로가 개혁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탈세 문제만 해도 그렇다.
고소득층의 소득을 추적하는 시스템을 만들려 했다. 하지만 대부분이 그 타깃에 포함되는 정치인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그리스 의회 직원들은 1년에 16개월치의 월급을 받는다. 성탄절 때 한 달분, 부활절 때 반 달분 추가 이런 식이다.”
– 국민이 왜 이런 상황을 참고 있나.
“한편으로는 모두 공범이기 때문이다.
탈세, 가짜 서류로 지원금 타내기, 수당 부풀리기 등 크건 작건 부패와 연결돼 있다.”
– 그리스의 미래를 어둡게 보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 그리스는 한국처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가난한 나라에 속했지만 이 정도로 경제력을 키운 저력이 있다.
다행히도 국민이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여론조사에서 노조 파업에 60% 이상의 국민이 반대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자손들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위기를 약으로 삼아 고질병을 고쳐 나가면 모범적 선진국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믿는다.”
이상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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