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5월에 생각해 보는 여가
가정의 달이라는 5월, 특히 그 중에서도 공휴일로 정해진 어린이 날은 어찌 보면 밤낮이 따로 없는 대한민국의 아버지들에게 가장 스트레스를 주는 날일 수도 있겠다.
대도시에서 주로 보이는 현상이겠지만, 대한민국의 공원들은 어린이 날 그 수용인원의 한계치를 시험하는 무대가 되는 듯하다. 날씨라도 좋을라치면 어린이가 집안에 있는 가족의 아버지들은 식구들을 이끌고 거리에 상관없이 어디라도 나가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이 의무처럼 되어있고 그 번잡함과 북적거림에 치솟는 짜증도 꿀꺽 삼킴 수밖에 없다. 아내와 아이들은 말한다. “오늘 하루 만이라도…”.
필자 역시 이런 생각으로 어린이날 하루를 보내며 이글을 쓴다.
아이들의 해맑은 웃는 모습을 보면 모든 귀찮음과 짜증이야 사라지지만 한편 그들의 모습이 낯설게 보이는데 까닭모를 속상함이 치솟는다. 주 중에는 밤늦은 귀가로 얼굴도 보기 힘들고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 집에 있으면서 늦잠자고, 밀린 일들 처리하며 이렇게 기뻐하는 아이들의 얼굴을 볼기회가 별로 없다는 현실이 과거 몇 년 전과 너무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다.
4년여 전 귀국하기 전에 필자는 직장 등을 위해 미국, 영국 등지에서 10여년을 지내며 아이들을 키웠었다. 학교에 등·하교를 시키고 주말에 아이 친구들 생일 파티를 쫓아다니던 그 때에 비하면 너무 적은 시간을 가족과 보내고 있다는 것에 화가 난다.
그 때가 좋았다는 이야기 같은 것을 하려는 건 아니다. 개인적으로 보면 그 때 보다는 지금 더 흥미진진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가족을 생각하고 자신을 돌아보면 대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는 지금 너무나 많은 흥미진진한 일들에게 둘러싸여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다.
아이들도 부모들도 너무나 흥미로운 사건과 사물들에 둘러싸여있다. 또 그러한 흥미로운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점점 더 큰 자극이 필요하고 도시와 문명은 그것을 제공하게 된다.
체육학에서는 여가와 레크리에이션에 관한 연구 분야가 있다. 여가에 관한 철학적 기초부터 공원의 경영에 까지 폭 넓은 관심을 가진 현대 사회에 있어 매우 중요한 학문 분야라고 생각한다. 노동과 생의 유지에 필요한 시간 이외의 시간을 여가라고 정의하고, 이 같은 시간을 적절하게 소비함으로서 재-생산(re-creation)을 도모하는 것이 여가와 레크리에이션이라는 개념의 초보적인 정의라고 하면 과연 우리 삶 속에서 여가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물론 노동은 아니지만 현대인의 삶에 제공되는 너무나도 흥미로운 일을 마치 파블로프의 개와 같이 반사적으로 좇아가는 것이, 더 큰 놀이공원을 향해 수많은 인파를 뚫고 가는 것이, 더 맛있는 저녁식사 메뉴를 찾아 떠도는 것이 과연 여가와 재생산인가 하는 점을 여가와 레크리에이션을 전공하는 사람들만이 고민 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영국의 소도시 외곽에서 가로등도 드문드문한 저녁, 가끔은 너무 조용하고 무료해서 부산한 서울의 밤거리를 그리워했었다. 이런 것 역시 이상적인 여가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이제는 무작정 쫓아가기 보다는 어느 시점에선가 선택을 할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지항 성균관대교수
<2008. 5. 13 중부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