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은 왜 그토록 수퍼볼에 열광하는가!
지난 달 필자가 미국에 머무는 동안 수퍼볼이 열렸다. 대회를 앞둔 며칠전부터 대형마켓에는 맥주와 칩, 그리고 여러 가지 주전부리를 미리 사는 쇼핑객으로 붐비고, 누구 집에서 모일지도 미리 약속을 하는 등 마치 큰 축제를 준비하는 사람들 같다.
매년 2월의 첫째 주에 열리는 미국프로풋볼(NFL) 결승전인 수퍼볼이 열리는 날은 우리나라 명절날의 거리만큼이나 한산하다.
단 하루에 먹어 치우는 치킨 윙, 피자 그리고 탄산음료의 양은 추수감사절 다음으로 가장 많은 음식이 소비된다고 한다. 최고의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TV 중계를 보느라 미국인들은 경기 중엔 용변도 참을 정도라고 한다.
그러곤 하프타임에 동시에 화장실로 몰려간다. 그래서 이에 걸맞는 “변기괴담”! 투입되는 음식량만큼 배출량도 어마어마한 까닭에 1억에 가까은 시청자가 동시에 변기의 물을 내리는 양은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39분간 떨어지는 양과 맞먹을 정도라니 물론 모든 미국인들이 다 풋볼팬은 아니겠지만, 중학생 아들 녀석의 친구 아빠는 세 아이가 있는데 그 중 한 명이라도 풋볼팀이 없는 대학에 들어간다는 것은 악몽같은 일일 것이라고 할 만큼 열광팬도 있다.
그러면 미국인들은 왜 그토록 수퍼볼에 열광하는가!
먼저, 그들의 끊임없는 영토확장에 대한 자신들의 꿈을 대신해 준다는 것이 하나의 이유가 아닐까 싶다. 풋볼은 땅 따먹기 경기이다. 영토의 점령이 경기의 목적인만큼, 공을 든 선수가 밟은 지역이 다 그 팀의 땅이 된다.
여기에는 이민자들의 개척정신과 투쟁으로 생존경쟁을 해 온 그들의 근성이 녹아 있고, 그들의 생존방식이 곧 풋볼의 전략인 것이다. 어느 학자는 미국인은 이 경기를 통해 창조의 신화를 극적으로 표현할 뿐만 아니라 미국의 신화, 즉 영토의 폭력적 침공과 점유의 과정을 재연한다고도 했다.
둘째, 남성의 매력을 발산시키는 스포츠라는 점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스포츠종목으로 야구나 농구도 들 수 있지만, 1970년대에 들어 풋볼이 가장 대중적인 스포츠로 자리매김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는 TV라는 대중매체의 역할 또한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에서 시즌별로 보면 야구나 수영은 여름, 축구는 봄과 가을, 농구는 겨울, 그리고 풋볼은 가을과 겨울 운동으로 대별하고 있는 데, 야구는 날씨에 따라 경기가 취소되거나 지연되기도 하고, 농구는 실내에서 행해지는 얌전한(?) 운동인데 반해, 풋볼은 비나 눈이 오는 것도 아랑곳 하지 않고 진흙탕에서도 주저하지 않고 뒹굴며 선수들은 경기에 임한다.
그래서 풋볼은 자연히 남성성의 상징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종목에 비해 풋볼시즌에는 온 가족이 집에서 TV를 시청하면서 즐길 기회가 더 많은 것 또한 일조한다고 하겠다. 실제로 미국 여느 고등학교에서 여학생들의 관심대상은 공부 잘하는 우등생이 아니라 우람한 체구의 폿볼선수이며, 특히 쿼터백은 인기를 독차지한다.
또한 우수한 풋볼선수들의 연봉은 우리나라 부모들이 선호하는 의사나 변호사보다도 능가하는 수준이다. 따라서 우리와는 달리 아들을 둔 미국부모들은 운동에 재능이 있으면 대부분 전폭적인 지원을 마다 않는다.
셋째, 지역공동체로서의 결속력을 느끼게 해 준다. 풋볼은 강한 지역적 기반을 가지고 있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스포츠는 사회통합을 자연스럽게 이끄는 역할을 하는 요소가 되지만, 다양한 인종과 이질적인 문화들이 어우러져 있는 미국사회에서는 스포츠가 차지하는 비중은 더욱 지대하다고 하겠다.
개개인을 공동체로 결속시키는 역할을 스포츠가 해 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전역에 흩어져 살고 있더라도 자신들이 응원하는 팀에 대한 충성심은 대단하다. 소속팀의 의류나 모자, 악세사리를 사주고 경기장에도 쫒아 다니면서 응원을 한다. 이로써 지역적 소속감 내지는 연대감을 느끼는 동시에 더 나아가 이민자가 아닌 미국인으로서의 자리매김을 하게 해 주는 기능을 한다고 하겠다.
올해는 플로리다주 탬파에서 경기가 열렸는데 애리조나 카디널스는 이번 수퍼볼이 구단사상 처음이었다. 피츠버그 스틸러스의 짜릿한 재역전승으로 이끈 제43회 수퍼볼은 시청률 조사회사인 닐슨미디어리서치의 조사결과 피츠버그-애리조나 경기를 지켜본 미국 내 시청자가 슈퍼볼 사상 가장 많은 9천870만 명으로 집계됐다고 한다.
이는 그동안 최고 기록이었던 뉴욕 자이언츠와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가 격돌한 지난해 슈퍼볼의 시청률을 뛰어넘는 숫자다.
수퍼볼에 올라온 피츠버그 스틸러스와 애리조나 카디널스의 경기 스타일은 완전히 반대여서 미국 언론과 팬들은 ‘창이 세다’ ‘방패가 세다’며 서로의 우세를 점쳤었다.
피츠버그는 별명이 아이언 커튼(철의 장막)일 정도로 전통적으로 수비가 강한 팀으로 주요 수비 기록에서 1위이며 평균 실점이 13.9점에 불과하다. 반대로 애리조나는 공격팀으로, 연고지 이전 전인 1948년 시카고 카디널스 때 NFL 챔피언이 된 뒤 61년 만에 수퍼볼에 진출했기에 그들의 설전은 대단했었다.
스틸러스는 올해의 수퍼볼이 7번째였는데, NFL역사상 8번 출전한 댈러스카우보이를 제외하고는 최다 결승진출팀이며 우승횟수는 6번으로 NFL최다의 우승횟수를 자랑한다.
특히 스틸러스에는 한국계 수퍼스타 하인즈워드가 있다. 2006년 시혹스와의 경기에서 우승을 이끌어 내고 MVP로 선정되어 스타반열에 오른 그 선수가 있기에 더 열심히 응원했었는데 결국은 역전의 묘미를 안겨 주었다.
단지 막강팀이어서라기 보다는 한국인 하인즈워드가 소속되어 있는 팀이라서 더 남달랐는데 필자뿐만 아니라 다른 교포들도 같은 맥락으로 스틸러스를 많이 응원했다고 했다. 이것이 인지상정이다■
김동선 경기대학교 체육대학 학장)
<2009. 3. 11 중부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