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와 축구 그리고 국가정체성
하나의 사물이나 유기적 조직을 본질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나 역사·문화적 배경 그리고 정체성(Identity)을 이해하지 않고는 제대로 된 파악이 어렵다.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서 인기 있는 대표적인 구기종목인 야구와 축구도 깊이 보면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된다.
일단 야구와 축구가 동시에 인기 있는 나라는 드물다. 아니 거의 없다.
미국과 일본을 축으로 하는 야구문화권은 야구가 주류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 유럽을 거점으로 성장해온 축구문화와 시스템은 유럽의 세계관을 등에 업고 전 세계로 파생되었다.
몇 년 전 사이언스지(誌)는 연구결과를 토대로 스포츠 종목 가운데 가장 예측 불가능한 종목으로 야구와 축구를 꼽았다. 이 예측 불가능성이 오늘날 야구와 축구를 번창시킨 본질적인 요소이다.
먼저 기능적인 메커니즘 관점에서 보면 야구와 축구는 차이가 있다. 축구는 기본적으로 유연성과 예술성을 기저에 두고 있다. 쉽게 말해 천재들이 하는 운동이다. 골 결정력은 노력만으로는 발전에 한계가 있다.
물론 어느 종목이든 스포츠는 ‘천재’가 유리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나 특히 축구가 이러한 경향이 강하다. 아프리카와 남미의 현란한 개인기에 유럽은 시스템으로 겨우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야구는 게임수가 많은 관계로 ‘일상의 스포츠’이다. 야구 천재들이 훌륭한 경기력을 보여주기는 하나 장수하는 경우는 드물다.
야구는 스스로 변하고 관리(Well Organizing)하지 않으면 도태된다. 공부처럼 반복훈련만이 생존을 보장한다. 또한 적응의 스포츠이기에 정신적인 면이 깊이 영향을 미친다.
시스템과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야구와 축구는 보다 확연한 차이가 있다.
축구는 열린 문화이다. 동네 팀도 세계적인 클럽팀과 겨룰 수 있는 제도가 구축되어 있다. 프로리그는 승강제를 통해 공정한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
축구가 전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던 근본이유는 이 오픈 시스템과 ‘서민친화적인’요소 때문이다. 또한 축구는 정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제 3세계 정치지도자들이 축구에 열광하는 이유도, 축구가 갖고 있는 정치성과 내셔널리즘 때문이다.
반면에 야구는 고비용 구조와 폐쇄성으로 인해 세계화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국내리그의 성공을 이루었다. 시장주의와 엘리티시즘을 근간으로 하는 야구는 자본주의 논리에 가장 충실한 편이다.
게임 수가 많은 야구는 구조적으로 오픈 시스템을 취하기 힘들다. 야구와 축구는 각자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시켜 번영을 구가했다. 즉 자기정체성에 대해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었기에 생존할 수 있었다.
정치적으로는 축구의 오픈 시스템이 사회가치에도 영향을 미친 유럽은 ‘친서민정책’이 핵심가치로 자리잡고 있다.
기회평등과 분배, 증세는 유럽사민주의의 근간이다. 스웨덴, 독일, 프랑스, 핀란드, 노르웨이를 비롯한 유럽 국가는 전통적으로 좌파정부가 득세했다.
반면에 야구가 득세한 미국과 일본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쟁을 통한 효율성에 초점을 두었기에, 보수주의와 엘리티시즘이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그렇다면 상이한 색깔을 가진 야구와 축구가 동시에 인기있는 거의 유일한 국가인 대한민국은 어떤 색깔과 정체성을 가져야 하는가.
답은 이미 나와 있다. 헌법에 나와 있는 것처럼 좌와 우의 공존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로 규정되어 있다.
그럼에도 오늘날 우리 사회는 민주적 가치에만 함몰되어 공화(共和)적 가치는 폄훼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공화적 가치는 무엇인가. 어원과 기원을 따지기 전에, 한마디로 ‘공공선(公共善)’에 대한 가치규정이다.
무릇 국가는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개인과 더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조직의 이해관계를 절충해야 하는 역사적 운명이 있다.
세종시와 혁신도시가 효율성만을 따진다면 지방으로 올 이유가 없다. 그러나 공화적 관점에서 본다면 균형발전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이다. 현 정부는 이 나라가 ‘민주’그리고 ‘공화국’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전용배 동명대학교 체육학과 교수
<2009. 11 . 13 경인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