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精進)
새벽 기도후 집 근처에 있는 덕동산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출근부는 없지만 어르신들부터 한 분 한 분 출석하셔서 운동을 하신다.
몸이 어제와는 달라지지 않았나 늘 검사를 하신다. 탑까지 오르고 걸으며, 다리도 기구에 실어 늘려 보신다. 어떤 분은 젊은 사람도 힘든 평행봉으로 근육을 단련하신다. “저 분은 언제부터 평행봉을 하셨을까?” 할 정도로 부러운 분도 있다.
몸을 유지하는 것은 참으로 힘이 든다. 나는 “과거에 100m를 11초에 주파 했었다.”고 말하면, 그 사실을 누구도 믿지 않는다. “그럼, 지금 한 번 뛰어봐!” “믿어줄께”하고 상대는 바로 응대한다.
바로 지금 할 수 있어야 그것이 바로 나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니지만 신체적 능력을 갖고 유지하기 위해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사람들의 한(恨)도 다르지 않다. 주위의 모멸감으로 인해 모처럼 시작한 식이요법과 운동.
피나는 노력으로 소기의 성과를 얻었지만 다시 원래의 몸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현상을 만든다. 관리부족이고 의지부족이라 쉽게 단정해 버리기엔 너무나 억울하다.
“대체 언제까지 내가 몸을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려야 하는가?” 라는 자괴감이 들기 때문이다.
장미란(25·고양시청) 선수의 부담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난달 고양에서 열린 ‘세계역도선수권대회’에서 그가 보인 투혼과 열정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뜨겁게 했다.
처음 인상경기에서 순위를 놓쳤지만 흔들리지 않는 뚝심으로 정상을 다시 차지하고 세계기록까지 세우는 기염을 토했다. 그의 도전 상대는 이젠 그 자신뿐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지금 이 순간 다음 대회를 위해 또다시 준비하고 있을 그의 외로운 싸움이 그려진다.
균형을 요구하는 경기의 심리적 불안은 더욱 클 것이다. ‘피겨여왕’ 김연아(19·고려대)가 견뎌야할 각성은 그만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쇼트 프로그램은 2분 40초 내에서 3종류의 점프, 스핀, 2종류의 스텝을 연결하여 표현해야 한다. 한 순간의 실수를 회복할 시간은 전혀 없다.
연습시간에 비하면 연기하는 시간은 찰나에 불과하다. 그가 지난 2007년 아쉬움을 남긴 도쿄에서 정상을 지킬 수 있어 다행이다. 이젠 그 역시 그의 상대는 자신밖에 없다.
목표가 있었을 때 정진(精進)하면 어느 순간 그 자리에 자기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유지하기 위해선 기쁨은 잠깐이다. 자기와의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마치 ‘깨달음’을 얻은 수행자의 삶이 되어야 한다.
물이 유연하여 어떤 형태로든 바뀔 수 있듯이 유연한 마음을 지녀야 한다. 그래야 어떤 상황이든 견딜 수 있다.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 또한 정상의 자리가 공허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방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팀을 우승의 반열에 올린 성남의 신태용 감독 또한 유연함이 필요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래서 장미란이 국내에서 올린 태극기, 도쿄에서 김연아가 일장기를 사이에 두고 가운데에 올린 태극기가 그렇게 아름다운 것이다.
정진은 1년 365일을 이렇게 유지하고 관리함을 말한다. 혹시 오늘 못한 일은 없을까. 오늘 소홀히 한 일은 없을까. 돌아봐야 한다.
하늘은 그러기를 원한다. 내가 소홀히 할 때를 기다려 정확히 소홀히 한 만큼 하늘대로, 인간대로의 아픔을 준다. 스스로 깨닫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돌려준다. 또 다른 한 해를 그렇게 또 기다리자■
김희수 칼럼니스트
<2009.12. 8 중부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