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성(喊聲)
함성 소리가 아직 귓전을 울린다. 언제 그렇게 ‘대한민국’을 외쳐보겠는가. 가슴 저리며 눈물이 핑도는 아찔한 순간들이 슬라이드처럼 흘러갔다. 4년마다 실력을 평가해보는 의미있는 작업이었다. 이번 대회는 이청용, 이정수라는 대어(大漁)를 얻은 의미있는 대회라고 이해하면 마음이 편할 것이다.
공이 올 것 같은 자리에 기다릴 수 있는 감각은 과거의 홍명보의 능력에 비견할만 했다. 물론 허정무 감독의 말처럼 찬스를 살리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다. 특히, 박주영의 전반전 프리킥과 박지성의 쇄도 후의 마무리, 후반 이청용 만회골 이후의 찬스, 박지성의 감각적인 패스에 이은 이동국의 슈팅은 아직도 뇌리를 스친다.
우루과이의 조직력은 실로 대단했다. 좀처럼 열릴 것 같지 않은 강한 수비벽은 예선 무실점을 증명하는 듯 했다. 전·후반에 보여준 수아레스의 쇄도와 감아쳐서 넣은 마지막 슈팅은 발등에서 감기는 순간 골인을 감지했을 정도로 눈이 부셨다.
현장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며 느끼는 것은 경기용 선수와 연습용 선수가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연극배우와 영화배우는 다르다는 사실과 비교할 수 있다. 진짜 실력을 판단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바로 경기다. 경기는 반복할 수 없는 순간적으로 지나가는 연극과 비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화와 드라마는 많은 실수 후 가장 좋은 화면을 캡쳐하지만 연극은 다르다. 순간적인 자신만의 연기력을 발산하기도 하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줘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낳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연기력’이고 ‘실력’이다.
실력을 키우기 위해선 무엇보다 큰 경험을 많이 해야 할 것이다. 월드컵 무대는 상상을 초월하는 무대이다. 4년에 한 번 올까말까 한 기회이고, 평생에 한 번 올까 말까한 기회다. 수 백 나라, 수 억 관중들이 나를 보고 있다고 생각했을 때의 긴장감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
궁금하면 경험해봐야 한다. 학교 대표로서 학교의 명예를 걸고 경기에 참가해봐라. 아니면 직장의 명예(名譽)와 사활(死活)을 걸고 아니면 연봉(年俸)을 걸고 뛰어봐라. 직장 동료들과 사장님 그리고 가족이 보는 앞에서 한 번 모든 걸 걸고 뛰어보면 “야! 쉽지 않다”하고 느낄 것이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입술은 마르고 심장은 두근 반 세근 반 뛰고 그게 ‘진짜 경기’이고 ‘삶의 연극’이다.
지금 남아공에서 눈물을 훔칠 그들도 다르지 않다. 많은 경기를 경험한 그들이지만 월드컵이라는 무대는 다른 무대이다. 잘하면 군대(軍隊)도 면제될 수 있고, 잘하면 ‘돈방석’에도 앉을 수 있는 인생의 절대적인 기회라고 여겼을 땐 긴장할 수 밖에 없다. 아마도 그 친구들도 다리가 후들후들하고 입술이 타들어 갔을 것이다.
국가를 부르며 서로 다름을 알 수 있었다. 상대선수들은 국가를 즐기며 부르고 있었다. 감독, 선수, 관중 모두가 국가를 느끼며 강하게 부르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선수는 심리적인 중압감인지 비장한 각오인지 모르지만 모두가 국가를 부르고 있지 않았다. 그것은 우연한 것이 아니다. 심리적인 여유가 그만큼 없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제는 그 여유를 찾아줘야 할 것이다. 큰 선수들과 많은 경험을 쌓게 해줘야 한다. 월드컵과 시청각 자료에 의해서만 겨우 볼 수 있는 큰 선수들을 직접 맞대응할 때 한없이 작아지는 것이 인간심리이다. 박지성, 이영표, 이청용의 여유는 그리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다시 ‘함성’으로 그들을 격려하고 또 다른 ‘함성’을 만들어보자■
김희수 경기비전진로교육연구소장
<2010. 6. 29. 중부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