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영 경기도체육회 사무처장
“전국체전 10연패, 안 보이는 곳의 노력 덕분”
㈜낫소 CEO로 재직하던 시절 ‘빨간 고무장갑’이라는 닉네임으로 통했던 이태영 경기도체육회 사무처장은 이번 ‘제92회 전국체전’을 치르면서 ‘초콜렛 아저씨’라는 새 별명을 얻게 됐다. 도내 31개 시·군 곳곳을 돌아다니며, 선수들에게 일일이 초콜릿을 나눠주다 보니 선수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불리게 된 별명.
체전기간 동안 전달한 초콜릿만 1천여 개가 넘는다고 하니 그러한 별명이 생길 법도 하다.
초콜릿 전달을 위해 이 처장이 체전기간 동안 주행한 거리는 자그마치 3천km. 말이 3천km지 체전기간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서울·부산 간 거리를 매일 같이 왕복한 셈이다.
CEO시절에 얻었던 ‘빨간 고무장갑’이라는 별명도 매일같이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직접 화장실을 청소하면서 얻은 별명이라고 하니 그의 ‘성품’과 ‘경영 철학’을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제92회 전국체육대회’가 끝난 뒤 체육회 집무실에서 이 처장을 만났다.
이 처장은 인터뷰 내내 10연패를 이끈 공로를 ‘안 보이는 곳에서 고생한 식구들’ 에게 돌렸다. 날카로운 듯하면서도 서글서글하고 푸근한 인상의 ‘초콜릿 아저씨’ 이태영 사무처장. 그는 ‘직접 현장을 누비며 굳은 일을 도맡는 솔선수범형 리더’이자 ‘공로를 아랫사람들에게 돌릴 줄 아는 그런 사람’이었다.
다음은 이태영 사무처장과의 일문일답.
– 경기도체육회 사무처장으로 부임한 지 10개월이 넘었다. 그동안의 성과를 꼽는다면
가장 큰 성과로는 도 체육회 본청과 시·군 체육회, 가맹단체 간의 긴밀한 협조가 가능해졌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사실, 지난 1월12일 취임 당시만 하더라도 각 기관, 부처 간 업무협조가 잘 이뤄지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 기관과 부처 간 ‘한마음체육대회’ 등을 통해 구성원들끼리 서로 직접 만나 소통할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구성원들끼리 서로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됐고 잘 이뤄지지 못했던 업무 협조도 상당 부분 원활해졌다. 얼굴도 모른 채 공문을 통해서만 접해 본 직원들 사이보다는 직접 만나 땀을 흘리고 술잔을 기울여 본 직원들 간의 업무 협조가 더 잘 이뤄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 아닌가.
두번째 성과로는 경기도 체육의 발전에 이바지한 ‘체육회 원로’들의 사무실 마련을 꼽고 싶다. 선배들에게 예의와 존중을 갖추고 또 그 경험과 노하우를 듣고 배우는 것이야말로 후배들의 사명이라 굳게 믿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시간 날 때마다 선배들의 사무실을 들러 충고와 조언을 들으려 노력하고 있다.
– 아쉬운 점도 있을 텐데
체육 관련 예산이 갈수록 줄고 있는 것이 참 안타깝다. 실제 지난 2009년 200억원에 달했던 예산이 지난해 170억원, 올해 130억원으로 줄었다. 사실 스포츠 분야에 있어 ‘재원’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비인기 종목 등에 대한 투자가 이뤄지지 않으면 체육의 발전도 기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최근 예산이 문화 방면에 편중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 아쉬운 면이 많다. 예산이 좀 더 균형 있게 분배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부족한 재원은 수시로 확보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끊임없이 예산을 마련해 나갈 계획이다.
– 이번 전국체육대회에서 역대 최고 성적으로 ‘종합우승 10연패’를 달성하게 된 요인은 무엇이라 보는가
경기도가 워낙 많은 메달을 휩쓸다 보니 ‘10연패’를 지극히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10연패’는 결코 그냥 이뤄진 것이 아니다. 예산 부족으로 30%가량의 시·군 체육회 팀이 없어진 상황 속에서도 역대 최고 성적으로 10연패를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은 선수와 감독, 체육회 관계자들이 ‘혼연일체’로 노력했기 때문이다. 특히 성공적인 체전을 위해 자발적으로 사무실을 개방하는 등 노력을 아끼지 않은 시·군 체육회 관계자들과 ‘안보이는 곳’에서 구슬땀을 흘려준 직원들에게 깊은 감사를 전하고 싶다.
-메달 수에 비해 기록달성은 저조했다는 지적도 있는데
기록면에서는 분명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기록 향상 부문은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다. 우리 체육인 전체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풀어가야 할 과제다.
국내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 만으로는 국민들에게 ‘어필’하기 어려운 시대인 만큼 ‘글로벌 스타’를 양성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기적인 성과에 치중하기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등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는 우수 선수를 발굴, 육성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다 보니 ‘유소년 체육’ 분야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우수 선수들에 대한 장학금 혜택 부분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 전국체전이 국민들의 관심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지적도 많은데.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선수들이 많아지다 보면, 전국체육대회의 국민 참여 부분도 자연히 해결되리라고 본다. 박지성이나 김연아, 장미란 같은 선수를 만날 수 있는 전국체육대회라면 자연스레 관심이 가지 않겠는가.
볼거리가 많은 전국체육대회를 만들어가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단순히 체육 경기 관람의 차원을 넘어 각종 문화행사와 먹거리 등이 어우러진 ‘종합축제의 장’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관, 언론 등의 적극적인 협조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본다.
-기업의 CEO로서 법정관리 대상이었던 회사를 정상궤도로 올려놓은 것으로 유명하다. 기업과 체육회 운영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꼽자면
얼마 전 회식자리에서 ‘회 중에 가장 맛있는 회는 다금바리 회고 가장 멋지고 훌륭한 회는 경기도 체육회’라는 한 직원의 건배사를 들은 기억이 난다. 전율이 올 정도로 깊은 감동이 느껴졌다. 기업과 체육회 운영이 똑같을 수는 없겠지만, 기본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직원들이 자기가 속해 있는 조직에 얼마만큼 자부심과 열정을 갖고 있느냐’가 그 조직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굳게 믿는다. 자신이 일하는 곳이 ‘가장 멋지고 훌륭하다’는 직원이 있는 회사가 어찌 발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낫소 대표로 재직하던 시절이나 체육회에서 일하는 지금이나, 그저 ‘직원들이 자부심을 느끼고 일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어나가자’는 마음으로 노력하고 있다. 법정관리에 들어간 ㈜낫소의 대표로 부임하자마자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화장실 변기청소를 시작한 것이나, 체전기간 동안 3천km 주행하며 초콜릿을 전달한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다.
-인생의 좌우명과 그 외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순리대로 살자’는 좌우명을 항상 되새기며 살고자 노력하고 있다. 체육회 사무처장으로서 ‘순리’는 앞에 나서는 것이라기보다는 직접 발로 뛰며 고생하는 직원과 선수들을 격려하고, 체육인들이 하나로 뭉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라 믿고 있다.
처장으로 부임하자마자 직원들에게 ‘처장님이 바쁘셔서’와 ‘규정상 안됩니다’라는 말을 금지하는 대신 ‘나중에라도 연락드리겠습니다’이라고 답할 것을 당부했다. 체육인들의 다양한 의견과 건의를 적극적으로 경청할 것을 약속한다.
체육인들도 경기도 체육회의 문턱이 높다고 외면하지 말고, 직접 문을 두드려 적극 활용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경기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