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選手) 인권(人權)과 현실(現實)
지난 9월 23일 올림픽 파크텔에서 스포츠계의 변화가 보였다. 바로 ‘스포츠 인권보호 가이드 라인’ 공청회를 갖게 된 것이다. 국내 스포츠계의 한 단계 성장을 의미한다. 공청회 자료 첫머리에 이렇게 써 있었다.
‘세계 7위 스포츠 강국 대한민국 과연 스포츠인의 인권은 몇 위 일까요? 인권이 뭔지 모른 채 성적을 위해 달음질 쳤던 우리 선수, 지도자…’ 맞다. 스포츠 인으로서 부끄러운 것은 사실이다.
지도(指導)라는 미명하에 행해졌던 많은 폭행과 폭언들은 자라지도 못한 선수들, 이미 성장한 선수, 이젠 고목이 된 선수들에게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있을 수도 있고, 씻을 수 없는 과오와 기억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섬뜩하기만 하다. 추억도 기억도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공청회는 공교롭게 지난 9월 18일 배구 간판스타 국가대표 라이트 박철우(25·현대캐피탈)가 대표 팀 모 코치에게 폭행을 당한 후 가졌기에 대중들의 관심을 쏟기에 충분했다. 박용성 대한체육회장은 이번 사건에 대해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일일이 밝힐 수 없지만 폭력은 정당화할 수 없기 때문에 일벌백계(一罰百戒)의 자세로 처리한다고 한다.
내가 알고 있는 L 코치는 청소년 대표선수도 선발 된 바 있었는데 운동을 그만 두었다고 술회한다. 이유를 묻자 선수촌에서 빨래를 하기가 너무 싫었다고 한다. 한참 성장할 시기에 몸도 마음도 통제할 수 없는 그 시기에 선배들의 옷가지를 세탁하는 모습이 상상이 간다. 그래서 뛰쳐나왔다고 한다.
얼마나 참담한 일인가. 운동으로 한 번 입신을 해보겠다는 어린 꿈을 구습(舊習)으로 인해 무참히 짓밟혔으니 말이다. 15년이 지난 지금 그는 후회를 하는 것이다. 그래도 참고 했다면 하는 생각이 들었나보다.
일부 인기 종목 즉, 부모의 지원을 맘껏 받는 종목 외에 대부분의 엘리트 선수들은 지금의 현실을 벗어나고 싶어 운동을 한다. 그들의 꿈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신체적인 운동도 힘든데 적어도 마음만은 편해야 한다. 지도자들이 이젠 철저히 도와주어야 한다. 모두가 과거로부터 이어온 전통(傳統)이 아닌 악습(惡習)이 문제이다. 아니 문제의식조차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고요한 선수촌을 의심해야 한다.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엄석태 처럼 군림하고 있는 친구를 살펴봐야 한다. 지금도 선수들 앞에 군림하고 있는 전제적이고, 권위적인 지도자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일선 지도자들은 현실적으로 혈기 왕성한 친구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걱정이다. 아직은 스스로 자기관리를 할 수 없는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자기 해방감을 맛보고 싶어 일탈코자 하는 그들을 어떻게 다룰 수 있을지 부터 계획을 세워야 한다.
질풍노도(疾風怒濤)의 시기엔 아름다운 미사여구로 달래기엔 현실적으로 부족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수 전문 상담사 나 선수의 진로를 위한 전문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
아쉬운 것은 선수들의 인권(人權)을 보호하자는 공청회에 아직도 선수들이 자리를 채우기 위해 동원 된다는 현실이다. 이러한 웃지못할 해프닝이 생기는 일이 바로 대한민국 스포츠계의 현주소이다.
행사 시종일관(始終一貫) 운동 피로로 인해 졸고 있는 어린 선수들을 보자니 참 가슴이 아팠다. 어디에도 아직은 인권은 소원(疎遠)해 보였다■
김희수 칼럼니스트
<2009. 9. 29 중부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