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경쟁사회와 폭력, 이대로 둘 것인가?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에 보도되고 있듯이 최근의 우리 사회는 연일 폭력과의 전쟁이다. 성폭력, 학교 폭력, 주취 폭력, 가정 폭력 등 어떠한 이유에서라도 정당화될 수 없는 폭력이라는 사회적 병리현상은 우리 인간에게 내재된 본성과 치부를 보는 듯하여 매우 씁쓸하다.
근래 우리 사회가 경제성장이 우선시되고 비교우위의 차등화가 강화되면서 사회 전반에서 최적자 생존을 위한 무한 경쟁은 더욱 극심해져 이제는 그 정도를 넘어 사람들을 불행하게 하고 사회적으로 막대한 손실과 낭비를 초래해 국가 경쟁력의 동력원마저도 저하하는 상황에 처해있어 심히 우려된다.
우리의 경우, 부존자원이 없는 나라에서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룩하도록 한 동력원이 교육이었으며 그 교육열로 나라를 이끌어 온 견인차라는 평가는 아직 모든 한국인들에게 보증 수표처럼 통하며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한강의 기적’으로 까지 불리는 경제성장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성역처럼 인식돼 있어 그것을 가능케 한 경쟁 교육까지도 성역 대접을 받아 오고 있다.
그러나, 교육 현장에서의 학력 지상주의는 개인과 학교 간 경쟁을 심화시켰고 전인교육을 위한 교육프로그램 부재로 인성교육의 사각지대를 만들어 온 교육정책은 결과적으로 오늘날 학교폭력을 더욱 확대시킬 수밖에 없는 원인 제공과 그 배경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학교 폭력의 원인으로는 가정적, 학교 교육적, 사회적 요인 등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일차적으로는 개인이나 집단의 힘을 숭배하고 그 힘을 행사해 존재감을 부각시키려는 청소년기의 특성에서 나온 것으로서 한편으로는 지나친 통제와 입시 위주의 교육적 산물임에 틀림이 없다.
개인이나 조직이나 이처럼 경쟁이 심화하면 남을 믿지 않는 사회가 되고 사람들 사이의 유대관계는 당연히 무너질 것이며 사람들은 적대적 관계로 서로 경쟁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압박감 아래 주위 사람들은 모두가 경쟁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경쟁위주 교육정책 학교폭력 확대
따라서 상대를 배려하고 함께 기쁨과 고통을 나누기보다는 시기와 질투의 대상으로 변하고 심한 경우 남이 잘되는 것을 못 보고 오히려 고통을 받게 함으로써 자신의 만족과 피폐한 심성을 보상받으려는 폭력행위가 팽배해질 뿐이다. 그러한 행위가 청소년들의 교육현장인 학교에서 이뤄지고 있다.
21세기 무한경쟁의 글로벌시대에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인성은 꿈과 창의력과도 무관하지 않다.
내 감정을 조절해 다른 사람의 고통을 공감하고 나와 다른 생각과 처지를 받아들이려는 예의와 배려, 존중과 공경심은 남의 입장에서 보고 생각할 수 있는 도덕적 행위 규칙으로서 공자와 맹자가 설파한 인, 의, 예, 지, 신의 덕목을 통해 인간 본성을 회복하려는 교육적 본질로서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경쟁위주 교육정책 학교폭력 확대
중국의 고사에 “민가 가까이에 있는 우산의 나무를 전부 땔감으로 베어서 사용하니 나무가 하나도 남지 않았고, 그 산에 풀을 키웠더니 양치기가 풀을 다 베어 먹여 버려 결국은 민둥산이 되고 말았다”는 우산지목은 환경 여건에 따라 산의 모습도 바뀌니 사람도 마찬가지로 환경이 중요하다는 인성 교육의 교훈이다.
뱃속의 태교로부터 가정교육, 학교교육, 사회교육, 그리고 이제는 평생교육의 시대이다.
교육에서의 환경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학교폭력이 만연해 사회적 이슈가 되는 지금이야말로 미래의 국가 인재가 될 청소년들의 인성 교육을 위한 학교교육 프로그램 개발과 실효적인 실천 방안에 대해 모두가 고심할 때이다.
최근 예체능 교육을 강화하려는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어 다행이지만 학생을 위한 정책으로 조속히 정착되기를 기대한다.
<경기일보 2012. 6. 18>
김정행 용인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