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TA 선정 ’20세기의 선수’ 김수녕
(재)한민족한마음 전국체전범도민추진위 이사장 “김수녕”… ‘체전 홍보’ 내가 해야 할 일이라 생각돼 수락
“20세기 최고의 선수답게 전국체전도 훌륭히 치러야겠지요.”
올림픽에서 한국 양궁은 효자종목이다. 한국 양궁은 세계에서 가장 어렵다는 국가대표 선발전을 거친 뒤 거기서 뽑힌 대표선수들이 세계 무대에 출전한다. 국제양궁연맹(FITA)은 한국의 독주를 막으려고 경기 방식을 자주 변경했지만, 그럴 때마다 한국 선수들은 연맹을 무시하듯 금메달을 꽂았다.
한국 양궁은 지난 1988년 서울 올림픽부터 세계에 알리기 시작했다. 그 대표주자는 ‘신궁’ 김수녕(40·대한양궁협회 이사·(재)한민족한마음 전국체전범도민추진위원회 이사장)이다. 그는 1988 서울 올림픽 개인·단체전 석권을 시작으로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 개인 은메달과 단체 금메달을 따낸 한국 양궁의 슈퍼스타다. 바르셀로나 올림픽 이후 은퇴를 선언하고 결혼해 두 아이를 키우는 주부가 됐던 그였지만 1999년 다시 사대로 돌아와 2000년 시드니 대회 때 개인전 동메달과 단체전 금메달을 수확하는 등 올림픽에서만 전무후무한 금메달 4개를 목에 걸었다.
이를 입증하듯 김수녕은 ‘신궁’이란 칭호를 얻었고, 최근에는 국제양궁연맹이 선정한 ’20세기의 선수(Athletes of the Century)’ 수상자에 뽑히기도 했다. 현재 전국체전범도민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수녕을 지난 4일 만나봤다.
-우선 축하한다. 소감은.
“현역으로 뛴 지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좋은 선수로 기억해주고 큰 상까지 받게 돼 영광이다. 지금도 나를 기억해준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얼굴이 그대로다. 비결은 있나.
“비결은 없다(웃음). 그저 아이들 키우고,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왔을 뿐이다.”
-최근 전국체전범도민추진위원회 이사장이라는 중책을 맡았는데.
“지난해 경희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치고 행정 공부를 해왔고 지난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때 해설위원도 맡았다. 이런 가운데 제의가 들어왔다. 오는 10월 경기도에서 열리는 전국체전 홍보를 위해 함께 할 수 있냐는 것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면 하겠다’고 수락했다.”
-그럼 전국체전범도민추진위원회는 무엇을 하는가.
“전국체전범도민추진위원회는 말 그대로 전국체전 성공적 개최와 스포츠를 통한 국민 대화합을 위한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다. 즉, 전국체전을 통해 민족적 대화합을 이끌고 해외 및 북한 동포의 참여를 유도하는 일을 한다.”
-얼마전 미국을 방문했는데, 성과는 있었나.
“전국체전 성공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기 위해 LA와 뉴욕 등을 방문했다. 재미대한체육회 본국전국체전준비위원회 등과 업무협약을 했고, 뉴욕, LA, 샌디에이고 체육단체 및 한인회를 방문해 전국체전을 홍보하면서 고국을 방문해 줄 것을 요구했다.”
-방문 기간 에피소드는 있었는지.
“한국계 미국프로풋볼(NFL) 스타인 하인즈 워드를 만났다. 하인즈 워드 같은 선수는 미주 재외동포에게 엄청난 홍보 효과를 줄 수 있다. 아울러 하인즈 워드 측과 전국체전 축하 영상메시지를 제작하기로 협의했다.”
-앞으로 위원회는 어떠한 일을 하게 되는가.
“지난해까지 전국체전에는 15~18개 국가에서 해외동포들이 한국을 방문했다. 하지만 올해에는 20개 국가에서 해외동포 체육인들을 전국체전에 참가시킬 계획이다. 현재 미국을 비롯 유럽 국가, 아시아 국가 등에서 해외 동포 체육인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모색중이다.”
-국제양궁연맹 스포츠 행정가의 꿈도 있다고 들었는데.
“스위스 로잔의 국제양궁연맹에서 인턴 사원으로 일할 계획은 있다. 주위에서 국제기구 경험을 권했고, 연맹에서도 오라고 제안을 받았다. 현재 여유롭지는 않겠지만 상황에 따라 움직일 생각이다.”
-왜 행정가를 택했는지.
“이제는 한국을 떠나 국제 양궁 발전을 위해 일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한국은 양궁 만큼은 세계 최강이다. 그렇다면 실질적으로 국제적 위상도 높아야 하지 않겠는가. 국내 선수들에게 해외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도록 먼저 일해 보고 싶다.”
-한국 양궁 왜 이렇게 잘하나.
“양궁 선수들은 올림픽보다 국가대표 선발전이 더 어렵다고 말한다. 이런 이유가 양궁을 잘하는 비결이 아닐까 싶다. 협회는 양궁 국가대표를 충분한 검증을 거쳐 선수들을 선발하고, 선수들은 오로지 자신의 실력으로만 평가받는다.”
-앞으로 한국 양궁은 어떨까.
“앞으로도 한국 양궁은 강할 것이다. 전체적으로 선수들 기량이 좋고, 무엇보다 공정한 선발전을 치르면서 선수들이 갖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신궁’이란 별명을 얻었는데, 만족하는지.
“‘신궁’은 모든 선수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닌가. 그 시기에 내가 잘했을 뿐이다. 지금의 후배들도 ‘신궁’소리를 들을 만하다.”
-지난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때 해설을 맡았는데, 힘들지 않았나.
“내 목소리가 조금은 졸립지 않았나(웃음). 항상 음성이 높고 낮음이 없어 시청자들이 조금 지루했을 것 같다. 그러나 나름대로 객관성있게 해설했다. 잘 봐달라.”
-강연 요청도 들어왔다는데.
“2000년 시드니올림픽 후 가끔 강연 요청이 왔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얘기가 있겠구나’하고 거절하지 않았다. 근데 베이징 올림픽 해설 이후 빈도가 늘었다.”
-강연시 주로 무엇을 강조하는가.
“주로 기업체, 학교, 병원에서 강의가 들어왔다. 주제는 조금씩 다르지만 ‘마인드 컨트롤’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다. 아무래도 기업체 등에서 원하는 것은 멘털 게임 측면이 강한 양궁의 특성상 위기관리, 집중력에 대한 한마디를 듣고 싶을 것이다.”
-올림픽 때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시드니 올림픽 때다. 7년간 은퇴 후 다시 태극마크를 달았는데 당시 김남순, 윤미진과 단체전 금메달을 합작한 기억이 난다. 특히 개인전 예선에서 이탈리아의 나탈리아에 발레바에게 밀렸는데, 마지막 남은 10발에 최선을 다해 좋은 결과를 냈다.”
-양궁 선수와 해설자, 어떤 위치가 더 긴장되는지.
“차라리 선수 때가 더 낫다. 막상 양궁 해설자로 선수들을 볼 때 더 긴장되고 떨리더라(웃음).”
-아이를 양궁선수로 키울 생각은 없나.
“본인이 원한다면 시키겠다. 그러나 운동 신경이 없는 것 같다. 나는 아이들을 자율적으로 키울 생각이다. 스스로가 혼자 학습할 수 있는 습관을 길러주기 위해서다.”
-본인이 생각하는 양궁은 어떤 것인지.
“양궁은 어릴 때부터 배우면 집중력에 큰 도움이 된다. 최근에는 다양한 곳에서 양궁을 할 수 있는데, 기회가 된다면 양궁을 통해 자신을 수련하는 것도 좋다.”
-양궁 꿈나무들에게 한마디 해준다면.
“나는 항상 꿈나무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 ‘시위를 떠난 화살에 미련을 두지 않는다’라고 말이다. 일생을 살면서 어려운 시기는 오게 마련이다. 그러나 거기에 집착하는 것보다 긍정적인 생각으로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는게 낫지 않을까.”(경인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