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입히는 남자… 일(日) 최고 부자가 된 옷장수 ‘유니클로’ 야나이 회장도쿄=선우정 특파원 su@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기사 100자평(9) 입력 : 2009.09.19 03:03
“의류산업이 사양산업? 그럴 수도 있겠지, 도전없이 안주하는 회사엔…”
“9패 하더라도 1승 거두면 장사 성공… 전단지 하나까지 직접 손봅니다 옷 파는 기초니까”
양말·팬티·티셔츠·슬리퍼까지 일본 ‘국민 유니폼’ 신화 창조
패기로 똘똘 뭉친 그가 말하는 사양산업을 ‘알짜산업’ 만들기
▲ 유니클로 셔츠. 의도한 것은 아니다. 인터뷰 시간이 아침 8시라 정신없이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서니 와이셔츠와 양말이 ‘유니클로(UNIQLO)’ 제품이었다. 인근 기치조지(吉祥寺) 매장에서 와이셔츠는 1250엔, 양말은 3켤레에 1000엔 주고 산 것이다. 사실 나들이 갈 땐 티셔츠·반바지·팬티·슬리퍼까지 유니클로로 감싸는 일도 다반사다. 그런 모습을 보곤, 가족들이 “일본 사람 다 됐다”며 웃는다.
과거엔 일본 하면 워크맨을 연상했지만, 이젠 ‘일본=유니클로’가 일본 사람을 대표하는 이미지일 것이다.
일본의 21세기는 2000년 한 해 동안 무려 2600만벌이 팔려나간 유니클로의 ‘플리스(fleece·폴리에틸렌으로 만든 양털처럼 부드러운 섬유)’ 선풍에서 시작됐다. 21세기 첫 10년은 작년 한 해 2800만벌이 팔려나간 유니클로의 속옷 ‘히트테크(Heattech)’ 선풍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유니클로 특유의 부담없는 원색(原色)이 튀는 것을 꺼리는 일본인 성향에 꼭 들어맞는 것일까. 아기부터 노인까지, 유니클로는 실로 ‘국민 유니폼’이다.
지난달 26일 도쿄 구단키타(九段北)의 ‘패스트 리테일링(유니클로의 지주회사)’ 집무실에서 야나이 다다시(柳井正) 회장(겸 사장)을 만났다. 첫인사를 “지금 와이셔츠와 양말이 유니클로예요”라고 하자, 그냥 웃었다. 삼성 회장에게 “우리 집 TV가 삼성이에요”라고 말한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으리라.
미국 포브스지(誌)는 2009년 일본의 최고 부자로 그를 꼽았다. 재산 액수(대부분 보유주식) 61억달러. 닌텐도의 야마우치 히로시(45억달러), 모리 트러스트의 모리 아키라(42억달러), 소프트뱅크의 손 마사요시(39억달러) 등 일본의 쟁쟁한 부자들을 밀어냈지만, 그의 집무실은 평사원과 함께 사용하는 사무동 한쪽의 25㎡(7.5평) 남짓한 공간이었다. 회사 시가총액은 1조1710억엔(9월 9일 현재). 도쿄 증시에서 샤프(전자)·후지쓰(전자)·스미토모(住友)상사·스즈키(자동차) 등과 같은 반열이다. 그는 “바닥이 무너진 건물에서 시작한 옷장사 사장이 일본 최고 부자가 될 줄은 꿈도 못 꿨다”고 말했다.
▲ 야나이 다다시 회장 ‘패스트 리테일링’회장. /블룸버그
일본에선 의류산업을 ‘어패럴(apparel)산업’이라고 부른다.
1980년대 이미 급속한 쇠퇴 국면에 들어선 사양(斜陽)산업의 대표주자다.
특히 ‘패션성’이 약한 일본의 ‘베이직(기본형)’ 분야는 저임금 국가의 대두로 추락 속도가 훨씬 빨랐다. 고령화·저출산 현상으로 젊은 층이 날로 줄어드는 일본의 시장 환경도 어패럴 산업의 몰락 속도를 더욱 빠르게 했다.
유니클로는 바로 ‘어패럴+베이직’, 쇠퇴 요소를 두루 갖춘 브랜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기업이 어떻게? 유니클로가 특히 주목받는 이유다.
야나이 회장은 답했다. “지갑 속의 돈이란 ‘무엇을 사라’고 처음부터 결정된 것이 아니지요. 소비자는 늘 갈등해요. ‘레스토랑을 갈까, 옷을 살까.’ ‘휴대전화를 살까, 옷을 살까.’ ‘자동차를 살까, 옷을 살까.’ 이런 소비자에게 옷을 선택하게 만들려면 당연히 다른 산업보다 매력 있는 상품을 내놓아야죠. 맛있는 음식은 끝없이 나옵니다.
새 휴대전화, 새 자동차도 끝없이 나오지요. 근본적으로 옷 역시 진화하는 이런 모든 제품과 경 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양산업’이라고 하니까, 경영자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파이는 일정하다, 수요는 결정돼 있는 것이다. 이걸 어떻게 뺏어 먹을까’라고. 생각이 산업 내부에 머물러 있는 거예요. 확신과 도전 정신이 없는 겁니다. 그런 방식으론 매출도, 이익도 늘어나지 못해요. 사양산업이란, 안정에서 성숙을 거쳐 쇠퇴로 진입하는 것을 뜻하지요. 그 자체가 명쾌한 답을 던집니다. ‘지금까지 방식대론 안돼!’라는.”
인터뷰 요청 당시, 야나이 다다시(柳井正) 회장은 여름 휴가 중이었다. 그런데 “휴가가 끝나면 너무 바쁘니, 차라리 휴가 중에 만나자”는 연락을 받았다. 사실상 창업자인 그는 유니클로의 지주회사 ‘패스트 리테일링’의 대표이사 회장 겸, 사장 겸, 상품 본부장이다.
▲ 미국 뉴욕의 소호 거리에 위치한 유니클로 매장을 찾은 야나이 다다시‘패스트 리테일링’회장. /AP
―휴가 때도 일하시네요?
“휴가를 늘 3주 정도로 길게 잡아요. 두 주는 완전히 쉬고. 나머지 한 주는 이렇게 보냅니다. 절반은 일하고, 절반은 놀고. 예전부터 그랬지요.”
―두 주는 어디로 다녀오셨습니까?
“마우이섬(하와이·일본인들이 보편적으로 가장 즐겨가는 휴양지)에 가서 골프를 쳤습니다.”
―여행을 즐기시나요?
“아니, 휴가 때 마우이섬 가는 정도이지요.”
―하루 일과는?
“아침 5시30분에 일어나, 6시45분 집을 나오고, 7시에 회사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오후 4∼5시까지 일을 하지요. 길게 일하는 것이 싫습니다. ‘빨리 왔다가 빨리 가라’가 신조예요. 잔업하는 걸 아주 싫어합니다.”
―술·담배는?
“둘 다 전혀.”
―취미는?
“골프밖에 없어요.”(야나이 회장은 1년에 100번 플레이를 할 정도로 일본 재계의 대표적 골프광이다)
―밤 취미는?
“(웃음) 에너지가 모자라서. ‘낮일’만으로 지칩니다. 매일 회식·연회하는 분들을 보면, ‘참, 대단한 체력이네’ 하고 감탄합니다.”
▲ 2004년 국내에 진출한‘패스트 리테일링’의 대표 브랜드‘유니클로’매장 모습. /패스트 리테일링 제공
■”설마, 이런 회사 사장이”
―생활은 평범하군요.
“그냥 착실하게 살았습니다. 회사와 집을 오가면서. 휴일만 골프. 다른 사람과 전혀 다른 생활을 한 적도 없고.”
―그래도 무언가 달랐겠지요.
“미래에 어떻게 할 것인가를 줄곧 생각하는 것이 좀 달랐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지금 하는 일에 너무 꼭 붙잡혀 살지요.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것은 옛 방식대로 가는 것을 말합니다. 사양산업이든, 성장산업이든 그러면 안 되는 것이 비즈니스의 법칙입니다.”
―올해 일본의 최고 부자로 뽑히셨습니다(야나이 회장은 ‘패스트 리테일링’ 주식의 26.68%를 보유 중). 깜짝 놀랐어요. 제조업의 나라 일본에서, 어패럴 사장이 어떻게?
“그러게요, 나도 깜짝 놀랐습니다(웃음). 누구도 예상 못 한 일이 아니었을까요? 사양산업에서 최고 부자가 나올 줄은.”
인터뷰에 동석한 아오노 데루노부(靑野光展) 기업홍보팀장을 가리켰다.
“저 친구 면접을 할 때 우리 빌딩은 야마구치(山口)현 우베(宇部)시란 곳에 있었습니다. 한국 분들은 거의 모르는 동네일 거예요. 다 허물어져 가는 ‘펜슬빌딩(좁은 땅에 지어 연필처럼 얇은 일본 특유의 건물을 뜻하는 일본식 조어)’이었어요. 바닥은 무너져 있었고. 그런 곳에서 채용한 사람이에요. 저 친구, ‘설마 그런 곳 사장이 일본 최고 부자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고 말해요. 당연하지요. 나도 꿈도 못 꿨으니까.”
▲ 유니클로의 캐시미어 터틀넥스웨터 야나이 회장은 “이 부분은 꼭 기사에 써줬으면 좋겠다”며 말을 이었다.
“‘사양산업이니까 안 돼’라고, 자신이 하는 일이면서도 그 일을 비하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아니에요. 어떤 장사든 새로운 산업을 만들겠다는 미래의 희망을 가지면 다 잘됩니다.
한국도, 일본도 사실 아무것도 없는 나라였어요. 일본은 2차 대전, 한국은 한국전쟁의 폐허만 있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교육이 구석까지 퍼져 나가 인재가 많고, 소비자에게 돈도 있어요. 중산층도 있고. 미국과도 가깝고. 게다가 성장센터인 아시아에 있고. 누구나 글로벌 기업을 일으킬 수 있는 환경이지요. 방글라데시에서 사업하는 분들과 비교해 보세요. 혜택받은 곳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것입니다. 우베시에서 태어난 나도 성공했습니다. 자신의 일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희망을 가지고 하면 착착 성공할 수 있어요.”
■’나 홀로 승리’의 비결
유니클로는 아주 특이한 기업이다. 경제위기가 시작된 작년 10월 이후에도 성장세를 이어갔다. 하강하던 일본 경제 상황과 정반대 그래프를 그린 것이다. 위기 위식이 최고조에 달했던 작년 11월에는 매출액이 무려 32%(전년 11월 대비)가 늘었다.
―일본 언론은 유니클로를 보고, ‘히토리가치(一人勝ち·단 한명의 승자)’라고 합니다.
“아니, 전 그런 표현은 틀렸다고 말합니다. 일단 ‘가치(勝ち·승리)’가 아닙니다. 매출이 작년의 2배가 됐다든가, 아니면 30% 성장, 50% 성장이 계속 이어진다면, ‘승리’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우리도 연간 평균으로 볼 때 (매출 성장세가) 10%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소 뜨는 정도이지요. 상대적으로 다른 기업이 너무 (경영 실적이) 나빠서 눈에 띄는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가라앉는데 홀로 뜨니까 좋아 보이는 것이지요. ‘승리’라고 할 수 없습니다.”
―불황엔 가격이 낮은 제품이 역시 잘 팔리지요. 유니클로도 저렴한 제품입니다. 하지만 저렴하기 때문에 ‘뜬’ 것은 아니지요. 수많은 염가 의류업체가 침몰했습니다. 유니클로는 무엇이 달랐습니까?
“불황이든, 호황이든 똑같습니다. 소비자의 수요가 현실로 나타났을 때는 이미 늦은 것입니다. ‘현재화(顯在化·분명히 눈에 보이는 형태로 표현하는 것)’란 말이 있지요. 잠재(潛在)수요를 현실로 내보이는 것이지요. 손님이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가를 여러 각도에서 생각합니다. 우리가 먼저 손님에게 ‘혹시 이런 것을 요구하시지 않나요? 우리가 제공해 보겠습니다’ 하고 제안하는 것이지요. 손님이 광고를 보거나, 매장에서 ‘그래, 내가 필요한 것이 이런 것이었어’라고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우린 여기에 충실했지요.”
―2000년 2600만장이 팔려나간 ‘플리스(fleece)’ 선풍이 좋은 예인 듯합니다. 그때도 일본 경제는 불황이었지요.
“플리스란 상품은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소비자들 대부분이 들어본 적이 없었을 뿐이지요. 등산을 하는 사람, 윈터스포츠를 하는 사람들 일부가 아는 상품이었어요. 이것을 겨울용 ‘후단기(普段着·평상시에 입는 옷을 뜻하는 일본말)’로 만들어 대대적으로 판매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지요. 다른 사람들은 플리스라면 등산 전문점이나 아웃도어 전문점에서만 판매하는 것, 플리스를 패션 매장에서 파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달랐지요. (기존에) 플리스를 사는 수요 역시 등산 수요보다 ‘후단기’ 수요 쪽이 컸습니다. 플리스의 ‘가치’가 알려진 것과 달랐던 것이지요. 우린 진짜 가치를 제공했고, 그러니까 팔린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이노베이션’이지요.”
■히로시마→긴자→세계로
―4년 전 도쿄에 왔을 때 긴자(銀座)에 유니클로 매장이 있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유니클로 이미지(저가 의류)와 긴자 이미지(명품 거리)는 어울리지 않았거든요.
“기업은 시대와 성장에 맞춰 변화해야지요. 우리 기업은 원래 제 아버지가 양복 정장을 팔던 기성품점에서 출발했어요. 여기서 남성 캐주얼을 조금씩 팔기 시작했지요. 이것이 캐주얼 전문점으로 변했고, 캐주얼 체인점으로 진화한 것입니다. 처음엔 주로 교외(郊外) 로드사이드(대로변)에서 싼 캐주얼을 파는, 그런 평범한 체인점이었어요. 그러다 ‘로드사이드에서만이 아니라 도심에서도 팔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하라주쿠(原宿·주로 10~20대가 몰리는 도쿄 쇼핑가)에 매장을 만들어 진출했지요. 플리스 선풍은 하라주쿠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어, 유니클로도 되네.’ 이런 확신이 생긴 뒤 긴자에 도전했지요.”
―도쿄 긴자는 상징적인 곳입니다. 긴자에서 성공하면 세계 어디서든 성공할 수 있다는.
“에르메스·구찌·아르마니 등 유럽 브랜드들은 모두 긴자의 가장 좋은 지점에 가장 큰 점포를 냅니다. 우리 회사가 어떤 회사이고, 어떤 것을 파는가를 가장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는 곳이지요. 긴자에 진출한 것은 하라주쿠의 성공 직후에 ‘해외에서도 해보자’는 생각이 들 때였습니다. 갑자기 해외로 가면 될 리가 없으니까 세계적 브랜드가 모인 긴자에서 먼저 해보자는 생각이었지요. 긴자에 들어가면서 유니클로가 비로소 일본의 ‘내셔널 브랜드’로서 위치가 확립된 것입니다. 그것이 제1기이지요. 제2기는 해외 진출입니다.”
―긴자에 진출한다고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요. 로드사이드 패션이 긴자에서도 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일본 소비자에게 세상의 옷이란 두 종류밖에 없었지요. 값비싼 브랜드 의류와 값싼 노(no)브랜드 의류. 값싼 브랜드 의류, 결국 싸고 좋은 옷을 제공하지 못하면 도심에서 성공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판매만이 아니라) 기획에서 제조·생산까지 스스로 하는 체제를 시작했어요. 유니클로 1호점을 히로시마(廣島)에서 만든 것은 1984년. 1990년쯤 중국에 생산기지를 만들면서 ‘SPA(speciality store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대형 의류 제조 소매업)’ 체제가 확립됐습니다. 이 체제로 지금까지 19년 동안 ‘싼 것=나쁜 것’ 이미지를 불식시켜 나갔지요. 그러다 보니 교외 로드사이드 점포가 일본 1등이 됐습니다.”
―긴자와 하라주쿠에서 벌이는 H&M(스웨덴의 SPA)과의 경쟁이 화제를 일으킵니다. 거대한 경쟁자가 나타났는데요.
“다른 사람들은 H&M이 오면 내 매출을 빼앗길 거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경쟁이야말로 수요를 환기시키는 중요한 동력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비교할 수 있는 곳에서 경쟁이 일어나면 유니클로도 팔리고, H&M도 팔리지요. 우리 업계는 이런 원칙을 잊고 있습니다.”
■전단지 제작까지 참여
―개인적으로 유니클로 매장엔 꼭 원하는 것, 필요한 것이 있어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번 계절엔 어떤 물건이 나왔나’ 궁금해서 가면 제가 생각하지 못한 제가 원하는 것, 필요한 것을 발견하게 되지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면 기쁘군요. 전문가란 그래야지요. 손님에 관해 손님 이상으로 많이 알아야 합니다. 손님 이상으로 느껴야 하고. 손님과 비슷한 정도의 지식으로, 손님이 요구하는 구체적인 무언가를 제공하려고 하면 전문가가 아니지요. 손님들에겐 이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런 것이 좋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상행위의 전체 조합을 꾸미는 것이 전문가입니다.”
―일본 제품의 문제점은 물건은 좋지만 불황만 되면 팔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금 일본 경제가 처한 어려움도 그렇지요. 마케팅 기술이 모자라다고 할까.
“물론 제조 기술만으론 팔리지 않아요. 고도의 제조기술을 가져도 우선 제품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고, 손님에게 도움을 주는 물건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기 플리스 천이 있어도, 천 자체는 사는 사람 입장에선 의미가 없지요. 그저 따뜻한 천이지요. 이것을 재킷으로 만들어 겨울에 입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 마케팅 기술의 문제가 아니지요. ‘손님에게 무슨 물건이 좋은가’라는 생각은 결국 마케팅하는 사람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경영자, 장사를 하는 머천트(merchant·상인) 자신이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일본엔 원래 직인(職人) 기질의 사람들이 많지요. 직인 기질보다 상인 기질이 더 필요합니다. 이런 물건을 혹시 이렇게 팔아보면 어떨까, 이런 방식으로 광고를 해서 이렇게 팔면 팔리지 않을까 하는 상상력과 실행력을 가진 토털 프로듀서가 필요한 것이지요.”
―’토털 프로듀서’를 위한 구체적인 방식은?
“우리 회사는 기획, 생산, 마케팅, 머천다이징, 판매, 이런 각 분야의 사람들이 원테이블 미팅을 통해 결정하지요. 하나의 ‘크로스 펑크션’ 공간에서 시장에서 팔리는 것, 우리가 팔고 싶은 것, 팔기 위해 요망되는 것을 늘 함께 이야기하면서 상품을 만들지요.”
―회장님도 직접 참가하십니까?
“그렇습니다. 참가할 수 있으면 참가합니다.”
―제품 전단지를 만드는 것까지 관여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경영자로서 그런 구체적인 관여가 필요할까요?
“필요합니다. 전단지는 신문에 끼워 매주 배달되지만 전체 프로세스 가운데 유니클로를 소비자에게 맨 처음 알리는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부서 담당자가 만들면 담당자의 ‘사정’에 따라 전단지를 만들어요. 자기 부서의 상품, ‘우리가 만든 것인데 팔리지 않으니 이번 기회에 팔고 싶다’는 부서 사정이 전단지에 투영됩니다. 그런 사정에서 자유로운 입장이 경영자이니까요. 유니클로 전체 입장에서 팔고 싶은 물건, 유니클로 전체의 의도를 전단지에 반영할 수 있지요.”
―그러니 ‘원맨(one man)기업’이란 소리를 듣습니다.
“좋은 의미의 원맨기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회장, 사장이 아무리 열심히 해도 물건은 팔리지 않아요. 직원들이 열심히 할 때 팔리는 것이 상품이지요. 물론 제가 ‘원맨’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물건이 시장에서 팔리는 것은 제가 원맨이기 때문이 아니라 직원이 열심히 일하는 회사 물건이니까 팔리는 것이지요. 직원 전체가 참가하는 회사이지요. 다만 누군가 중심에 서 있지 않으면 안 되니까 있을 뿐이지요.”
―이제 환갑(1949년 2월 7일 생)을 넘기셨는데, 후계자를 생각하실 때가 아닌가 합니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원맨 기업’은 ‘원맨’이 사라지는 순간, 흔들리는 경우가 많지요. 어떤 후계자를 육성하고 계십니까?
“65세까지는 지금 하고 있는 현실적 경영, 일상적 집행을 그만두려고 합니다. 결국 후계자는 지금 제가 일상에서 하는 집행이 가능한 사람이어야겠지요. 그런 후계자를 육성하는 것이 지금 제 임무 중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론 한 사람이 끌고 가는 체제는 안 될 것입니다. 여러 팀을 만들고, 팀을 끌고 가는 리더를 육성해야겠지요.”
■1승9패로 충분하다
―제2기는 해외 진출이라고 하셨습니다. 왜 해외에 진출해야 합니까. 그리고 지금까지 성적은?
“한국도 마찬가지이지요. 일본은 고령화, 소자화(少子化·저출산)가 진행되면서 인구가 점점 줄고 있습니다. 국내뿐만이 아니라 해외로 진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지요. 삼성, LG도 한국 국내 매출보다 해외 매출이 압도적으로 많지요. 소매업은 (문화가 다른 곳에서 성공하기 힘든) 가장 지역 밀착형인 업태이긴 합니다. 그래도 해외로 가는 길밖에 없지요. 서울 명동의 유니클로는 성공적입니다. 물론 흑자를 내고 있지요. 명동 매장보다 더 큰 한국을 대표할 만한 유니클로를 만들고 싶어요. 중국 상하이의 유니클로도 흑자를 내고 있습니다.”
―어떤 해외 기업을 벤치마킹하셨습니까?
“갭(GAP·미국의 SPA)도 벤치마킹했고, 예전엔 미국의 리미티드브랜즈(Limitedbrands), 영국의 막스&스펜서, 넥스트, 동남아시아의 지오다노 등.”
―갭이나 H&M과 비교할 때, 유니클로의 특징은?
“우리는 베이직(기본형)이지요. 고품질에 패션성은 있지만, 베이직한 옷들을 판매하는 업태입니다. H&M은 ‘패션’을 파는 업태, 갭은 ‘아메리칸 라이프 스타일’을 파는 업태이지요. 각자 손님이 요구하는 분야가 다릅니다.”
―고령화 말씀을 하셨는데, 노인 고객을 잡기 위한 전략은?
“전혀 없어요. 나도 고령자입니다만. (자신의 옷을 가리키면서) 이런 셔츠, 이런 바지, 이런 재킷을 입고 있는데, ‘그건 고령자용’이라고 하면 다시는 입고 싶지 않아요. ‘고령자 전략’이란 탁상공론이지요.”
―2003년에 ‘1승 9패’란 책을 내셨습니다. 1승은 무엇이며, 9패는 무엇입니까?
“사업, 장사를 하는 사람들 중에 곧잘 ‘연전연승하고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10전10승. 이런 건 있을 수가 없지요. 만약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성공의 기준이 낮은 사람이겠지요. 대부분 장사하는 사람들은 이기는 순간은 알아도, 지는 순간을 잘 모릅니다. 새로운 것을 안 하기 때문이지요. 장사란 새로운 수요를 창출해서 비즈니스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가가치이고, 장사의 사회적 공헌이지요. 진짜 장사에서 성공하려면 10번 중에 한 번만 승리해도 됩니다. 뒤집어 말해, 9번 실패해도 계속 도전하라는 얘기이지요. 1승 9패라도 새로운 도전을 계속해서 최종적으로 손님의 요구에 맞는 업태, 상품, 매장을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유니클로의 실패는?
“우리도 많은 실패를 했습니다. 하지만 아홉 번을 지는 과정에서 회사가 무너지면 안 되지요. 역시 기업이란 성장을 하는 가운데 이익을 올리는 유기체입니다. 실패를 실패로 거듭하면 무너집니다. 실패를 다음 성공의 열쇠로 삼아야 연명할 수 있지요. 지금까지 연명하는 것을 보면, 우리가 실패를 그렇게 받아들였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실패가 치명적인 실패로 연결되지 않은 것이겠지요.”
―유니클로의 1승은?
“소비자들이 ‘생활 속에 유니클로가 없으면 안 되겠구나’ 하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 그런 소비자 인식이 가장 큰 성공입니다.”
■목표 ‘2020년 세계 1위’
―’2010년 매출액 1조엔, 2020년 세계 1위’가 경영 목표입니다. 2020년은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2010년은 내년입니다. 가능합니까? (패스트 리테일링의 2008 회계연도 매출액은 5684억엔, 세계 6위다.)
“어딘가 M&A(인수·합병)을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역시 우리는 상장기업이니까, 어떤 의미에서 회사를 시장에서 팔고 있는 것이지요. 반대로 우리가 M&A를 당할 수도 있는 것이고. 이번 회기(패스트 리테일링의 회계연도는 8월 말까지)에 매출액 약 7000억엔, 다음 회기에 8000억엔 정도까지 간다고 하면, 2000억엔 규모의 기업을 매수하는 것으로 1조엔 규모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구체적인 계획은?
“상장기업이니까 말하면 안 되지요. 내부자 거래가 되니까.”
―의류 이외에 사업을 다른 영역으로 확대할 계획은.
“없습니다. 우리는 역시 어패럴로 소비자들의 기대를 받는 기업이니까요. 사업의 종류를 늘리는 것보다, 사업의 영역을 지금부터 글로벌로 확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게 우리 사명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