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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제목
van Donkelaar 교수의 자전거 타기 (이지항 성균관대교수)
작성자
경기도체육회
작성일
2008/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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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 Donkelaar 교수의 자전거 타기

필자가 미국에서 대학원을 다닐 때 박사 과정 지도 교수는 Paul van Donkelaar라는 분이셨다.

필자와는 다섯 살 차이 밖에 나지 않는 젊은 초임 교수였지만 그분의 학문적 역량은 물론이고 그분이 생활하는 모습 까지도 필자는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그 분이 며칠 전 서울올림픽 2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 참석하시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셨기에 간만에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다.

인천 공항에서 숙소로 오는 길목에서 van Donkelaar 교수는 평일 대낮인데도 한강변에서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고 한국인들의 운동에 대한 열정에 커다란 놀라움을 표현했다.
숙소 바로 옆에 있는 올림픽 공원을 산책하면서 운동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고, 또 방문한 대학 운동장 마다 붐비는 학생들의 모습들을 보고 그 분은 한국인이 운동에 보이는 흥미와 열정에 내내 감탄하였다.

세계 어느 곳보다 운동 시설이 잘 갖추어진 도시에서 온 스포츠 전문가의 찬사에 본인도 좀 으쓱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별로 한 일은 없지만 그래도 나름 스포츠 관련 분야에 종사 하는 옛 제자가 보여줄 수 있는 한국의 모습에 대한 스승의 감탄은 어쨌건 기분 좋은 일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요즘의 근황도 주제에 올랐다.
세계 최저 수준의 유가로 인한 혜택을 톡톡하게 누리던 미국이 근래에 유가 인상과 더불어 큰 충격을 받고 있다는 소식은 그리 생소할 바 없었지만 그 여파로 인한 미국인들의 생활방식 변화는 흥미로웠다.

당장 지난 여름 자동차를 이용한 여행이 줄어들었으며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유행이란 말에는 고개가 끄떡여 졌다.

이어서 필자는 미국에서 전통적으로 인기 있는 큰 배기량의 픽업트럭들 조차 사람들이 회피하지 않는가를 물어보았다.
그러나 대답은 뜻밖이었다. 물론 판매량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사람들이 그에 대한 애정을 포기하는 대신 덜 사용하면서도 계속 간직하려는 모습을 보인다는 대답이었다.
물론 일부 지역 이야기이고 개인적인 관찰일 수도 있지만 매우 자연 보호에 민감한 모습을 보이는 그 지역 성향을 알고 있는 필자에게는 뜻밖의 대답이었다.

이어서 van Donkelaar 교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전거를 애용하기 시작했다는 말을 덧 붙였다. 필자는 마음이 조금 불편했다.
비싸지고 환경에 좋지 않다면 팔아치우고 새롭게 시작할 것이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좀 더 깊은 속내를 들여다보니 미국사람들이 아직도 자신들의 위기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것에 관한 불편함이 더 강한 것 같았다.
그리고 우리에 대해 생각했다. 유가가 오르자 급격하게 거리가 한가해지는가 싶더니 유가가 조금 내려간 요즘은 다시 차들로 거리는 북새통이다.

van Donkelaar 교수의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지적은 한국의 운동참가자들의 복장이다. 자전거를 타건 등산을 하건 달리기를 하건 모두 프로 선수들의 복장이라는 것이다.
이는 필자도 오래전부터 흥미롭게 생각해 오던 모습이다.

그런데 유가가 올라도 기름 먹는 하마 같은 차를 지키며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는 사람들과 유가 변화에 따라 거리의 차들이 밀물 썰물처럼 변화하고 또 정식(?) 복장을 차려 입고 운동에 열심인 우리의 모습이 비교가 된다.

무슨 까닭인지는 모르겠지만 괜한 심통이 난다.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왠지 우리의 모습이 더 좋아 보이지 않는다.

van Donkelaar 교수는 캐나다, 프랑스, 영국, 미국 등지에서 각각 수년씩 살아오면서 내내 자전거로 출퇴근을 해 왔다.

비와 안개로 유명한 영국에서도 습기와 더위가 살인적인 곳에서도 그야말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전거로 다니고 있으며 그의 가족들 역시 마찬가지이다(그 집 아이들은 서너 살 때까지 엄마, 아빠 자전거 수레에 실려 다녔다).

수십 년을 그 흔한 자전거 타기용 선글라스 하나 없이 그렇게 다니는 양반이 감탄하는 한강변의 사람들을 보는 내 마음이 왜 이토록 불편한 것인지 아는 분은 연락 주시기 바란다■

이지항 성균관대교수

<2008. 9. 30 중부일보>